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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Oct 23. 2022

서른살 동안의 수련

  내가 이과를 간 이유는 단순히 '수학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 였다. 장해서 전교의 1/3의 목표는 '의사', 곧 '의대'였다. 걔중 나는 뚱딴지처럼 게임회사인 '넥슨'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진학을 꿈꿨었다. 허나 수능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고 나는 지방의 모 공대에 들어갔다. 단순히 대학교가 고교 때의 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1학년부터 방황을 하다가, 우연히 같은 과 친구의 약대 편입시험 준비얘기를 듣고 나도 따라 약대를 준비했다. 공대를 졸업하고 그대로 쭉 나아가면 혹시 모를 성별에 따른 불이익이 있을거라 지레 걱정이 일기도 했었다. 그렇게 (부모님의 반대에도) 고집스레 또다른 입시를 시작했다.

항상 뭘하든 시작은 거창했지만 시험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그나마 운이 따라주어 겨우 약대에 들어갔다.

 

  몇 년 후 약사가 되어서 나온 세상은 생각보다 녹록치않았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많은 것들을 새로이 배우고 익혀야했다.

다행히 첫 직장의 상사들이 참 좋은분들이셔서 마음 편하게 다녔다.

그래도 세상일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는지 난데없이 그 약국은 폐업 위기에 처했다.

이후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작년 중순, 욕심을 부려 일주일을 내리 일하던 중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결론은, '요새 암취급도 안해준다지만 정작 걸린 당사자들은 한없이 서럽다는' 갑상선암.

  코로나가 한창인 시절, 타지 병원의 간호통합병동에 홀로 누워, 많은 스쳐간 인연들을 떠올렸다.

가장 많이 되뇌었던 이름은 1년 동안 약국에서 마주했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이름이었다.

렇게 떠올랐던 이름들은 한없이 초라한, 수술 후 모습의 나에게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미 그들 곁을 떠나온 나를 한층 더 쓸쓸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쩌면 그 어르신들의 이름을 하나씩 떠올린 일은, 내게 있어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일터로부터 멀어 것 다시금 체감하는 동시에 어쩌면 앞으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나혼자 작별을 고하는 과정일지도 몰랐다.


  갑상선암 수술 이후로 평생 씬지로이드와 함께 하게 되었고, 수술 이전에 잘 보이려고 끙끙 앓던 수많은 인간관계에 대해 부질없음을 느꼈다.

어두컴컴한 병실 침대에서 홀로 고통에 밤을 지새는 순간에는 오롯이 나 혼자였다. 그동안 내가 잘보이려고 애썼던 그 누구도 곁에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을 마냥 좋아하고 나 좋을대로 생각해버리는 그런 어린 마음이 쉽게 없어지진 않았다.

  그래도 이전과 달라진 점은 혼자 있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글쓰기, 바느질, 뜨개질, 등산 같은 혼자 하기에 정말 좋은 취미도 생겼다.

그리고 타인에 대해 과하게 기대하는 일도 관두었다. 나는 특히 나자신이 베푼 호의가 항상 비슷한 호의로 돌아올 걸 기대해온건지도 모른다. 또한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거진 나와 비슷할거라 생각했었다.

  일터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로 저마다의 사고방식들이 각기 제멋대로(개인의 입맛대로) 임을 체감하기도 했지만, '내가 좋은 것이 곧 상대방도 좋은 것이 아닐까'라는 고집스러운 마음은 쉽게 변하진 않았다.


  현재 어느 큰 회사에 들어와서 일원으로 일한지 어느덧 한달여째. 본디 성격이 그렇게 싹싹하지 못한 탓인지 약국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과 이래저래 부딪치면서 일해나가는 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도 내심 세운 나만의 규칙이 있다면,

  첫째는 남뒷담화를 되도록하지 않는 것이고 또 어느 곳의 주인공보다는 배경으로 지내고 싶다.

  둘째는 타인의 잘못에 대해 (어에서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물고늘어짐' 또는 '타인을 비난하는 일'을 피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현시점에서 어떠한 상황을 진두지휘할 지위는 되지 못하므로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게는 하지못할 터, 그나마 '피해보기'라도 하는 것이다. 즉, '누가누가 그랬대요'라는 소문을 전파하는 1인의 기능을 지양하는 것이다. 뭐, 이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사람은 본디 자신이 이미 알고 있고 혹시라도 알려져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불이익이 생기는 일이 아니면 퍼뜨려버리는 습성이 있는 것도 같다.

그래도 막상 직장에서 '누가 그랬는지'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은 자주 있어서 뭐 체념하고 '누가 그랬다' 대답하는 경우라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이러면서도 누군가 잘 모르는 이를 질책할 때에 쓸데없이 날이 서기도 하니, 어느 상황에서나 자신의 마음컨트롤이 가장 힘든거 같다.


  셋째는 어떤 한 사람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하는 판단자체를 버리고(무판단) 어떤 이의 말과 행동에 대해 감정적으로 느끼지 않는(무감정) 내면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어떤 사람들에겐 참 쉬운 일이겠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사람이라 스스로 애써 과도한 생각을 억누르고 감정을 떨쳐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업무의 특성상 냉철하고 빠른 판단력이 요구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의식적으로 무감정의 상태를 가동시키면 한결 가뿐해질 때도 있다. 또, 업무상 마주치는 많은 이들에 대해 불필요한 감정소모(짜증, 화, 실망감 등)를 없앨 수 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 과다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두서없는 감정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가끔, 잠시 방심한 사이 열려진 마음이 누군가에게 불필요하게 상처받았을 때는 운전을 하면서 창문을 닫고 크게 소리를 질러보기도 한다.


  어쨌든 사람은 다 똑같다. 이상적인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친한 이모는, '00아, 사람 위에 사람없고 사람 밑에 사람없다'라고 늘 말씀하신다. 결국 몸의 어느 한부분이라도 고장나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이 인간이다.

내가 중병에 걸려 누워있는다면 곁에 남아서 날 지켜줄 이들은 손에 꼽는다.

그런데 굳이 타인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 타인은 내가 상황이 불리해지면 언제든 등을 돌려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솔직히 질병과 난생처음의 전신마취 수술을 두어차례 겪고나서 사람이 이리 냉소적이 되었다. 뭐, 이미 이렇게 바뀌어버린 것을 어쩔까. 그래도 타인을 적대시하진 않으려 한다.

'여름철에 너무 가까이하면 추운 에어컨'처럼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덕분에 인생은 좀 심심해지긴 했지만 옛날에는 틈만 나면 요동쳤던 감정들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한 말과 행동을 애써 자아내지 않다보니, 마음이 좀더 편하고 말과 행동이 이전보다는 자연스러워진 듯하다. 그래도 마음 한 편에는 여전히, '남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집착은 남아있는 것 같다.


  실제 성격이 고집스럽고 성질이 고약한 면도 있어서, 일을 할 때에는 '성질을 죽이자'라고 되뇔 때도 있다. 때아니게 오래전부터 삶의 좌우명은 '겸손'이었다. 고교시절부터 근십년간 좌우명일만큼 평소에 생활하는 중에는 쉽사리 간과하게 되어버리는 마음이다.

특히 타인으로부터 질책이나 비판을 받을 때 겸손의 미덕은 쉽사리 발휘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순간에는 마음속에서 잔뜩 울분이 일어버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겸손했어야 했는데' 후회하는 일을 반복한다.


  직업적인 면에서는, 약사로서 특별히 다른 이들에 비해 자만하지 않으려 한다.

약사라고 하면 누구는, '돈많이 버는 직업'이라고, '보기에 있어보인다'라 얘기를 한다.(제일 싫어하는 말이, '1등 신붓감'이란 소리인데 솔직히 구역질날만큼 듣기 싫은 말이다, 내가 누구의 1등 신부가 되기 위해 악바리처럼 공부해서 약사가 된 건 아니니까..)


  여느 친목 모임 같은 곳에서 사람을 만나면 자기자신을 소개할 때 흔히 직업부터 내세우는 모습을 흔히 본다.

그렇지만 나는 솔직히 자신의 직업을 가장 먼저, '자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내세는 사람들은 오히려 불편하다.(특히, 소위 말하는 '사'자  직업인 사람들)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인생은 단지 '그것만이 전부'로 느껴진다.


  나자신을 무너뜨려가면서까지 타인의 생각이나 말을 포용하려 하진 않는다. 나자신은 나자신이 지켜야하지, 누구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이제 서른살에 겨우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되었달까.

물론 아직은 이 모든 것이 상당히 어설프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아 태어난 이후의 삶에 고통만 가득하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당장 일터에 나가 주위를 둘러보면 안 힘든 사람은 없다. 퇴근 시간을 몇 분, 몇 시간 앞두고 새삼스레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어느 곳에서든, '여기가 지옥이다' 생각하면 끝이 없고 그렇다고 너무 긍정적이려고 해도 힘드니, 적당히 부정적이다가도 끝없는 심연에 빠져들 때엔 잠시 생각을 비워내고 무념의 상태에서 일을 해본다.


  결론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글쓰기는 꽉 막히고 온갖 규칙이 가득 찬 시간들에서 벗어나, 나를 숨통 트이게 해준다. 생각이 많은 성격이니 글로 풀어내면 참 시원할 때도 많다. 여태껏 써왔던 글의 특성은 '이목을 끌만한 글'보다는 '두서없는 의식의 흐름'이었다. 이 글도 왠지 같은 느낌으로 쓰여질 듯하다.

아무렴 어떠랴. 이 있어보이거나 화려한 글을 쓸 생각은 없다. 글 속에서는 불편하게 걸치고 사는 여러 가면 모두 내려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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