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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Jul 28. 2022

오랜만의 술자리

평일 약속은 힘들어~

  나란 인간은, 약속을 잡아놓고 당일이 되면 내심 약속이 취소되어버려서 나 혼자 있기를 원하기도 하는 변덕스러운 사람이다. 그래서 뜬금없이 '맥주가 마시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개설한 술 모임은..

당일이 되니 여전히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런 인간도 어느 모임의 모임장이라는 이유로.. 

오랜만의 술자리에 참석을 했더랬다. 솔직히 말하면 모이는 사람들을 그간 몇 번 밖에 보지 못했었지만, 왠지 성향이 잘 맞는 사람들인 거 같았기 때문이다.

음.. 뭐랄까. 다들 '기'가 그렇게 세지 않은 느낌이었달까...

여튼, 나란 인간은 '기'가 너무 강한 사람 옆에 있으면 금세 피곤해져 버린다.

  

  모임장이라고, 항상 '유잼 인간'인 것은 아니라, 특히 나는 원래 천성이 진중하고 '노잼'인터라..

억지로 분위기를 잡으려 하진 않고 그저 대화가 끊이지 않게 노력을 하다 중도에 포기를 했다.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도 참 힘든 일이다. 예전이라면 내가 지쳐버리고 나서도 계속 어떤 대화를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을 했었겠지만.. 그러면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그런 사실을 인정을 하고 솔직히 밝히고 참석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굳이 내가 주제를 정하지 않아도 다들 '성인'이니.. 약간의 침묵이 끼긴 해도 어떻게든 대화는 이어져나갔다.

단순히 그 약간의 침묵마저 없애버리려고 안간힘을 쓸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뭐, 그래도 선호하는 사람의 '분위기'가 맞아서 모임에 나간 이유도 크다.


  '술'과 '밤'이 있기에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 라는 항간의 말도 있듯이..

역시 '술'이 들어가니 다소곳하던 그녀는 어느새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었고(물론 생각 없이 차를 끌고 가서 술을 마시지 못한 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마저 동성인 내가 보기에도 매력이 철철 흘러넘쳤기에..

뭔가 '술'이란 것이, 지나치면 독이지만 적당히 취기가 오르는 중의 분위기는 역시나, 참 낭만적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술자리를 자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뭔가 20대 시절과는 같으면서도 다른 풋풋함과 설레임도 은근히 끼여있었달까..

아, 물론 나의 이야기는 아니고 나를 제외한 그녀와 어떤 이를 지켜보는, 나만의 공상일 수도 있다.


  뭐, 나도 '솔로'였다면. 어떻게든 더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 자신이 오랜 기간 사귀어 온 연인에 대해 신의를, 한순간의 불꽃에 쉽게 져버리는 성격이 아니라서..

남자들에게는 적당한 선을 긋고 오히려 옆자리에 앉은 여자분에게 신경을 쓰고,

그녀의 기분에 맞장구를 쳐주려고 했다.

내심 그녀가 만약 모임 내의 누군가라도 만날 가능성이 있다면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뭐, 내가 응원한다고 뭐라도 되겠냐만은.. (차라리 모른 체 가만히 있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마음껏 자신을 놓고 무방비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그녀의 솔직함과 털털한 모습이 참, 매력적이면서 부럽기도 했다. 아직 서른이지만, 그렇게 타인에 대한 나의 방어막을 쉽사리 무너뜨리는 경우는 잘 없다. 언제나 나에게는 나도 모르게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나 자신의 이성까지 잃어가면서 가깝지 않은 타인에게 쉽게 신의를 주지 못해서 그런지..

여튼 복잡하게 쓰려면 끝도 없는 그런 애매모호한 자기애가, 그렇게 (나의 기준에서는)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나의 빈틈을 드려내려 하지 않는다.

  사실, 사람의 모습에서 어떠한 빈틈을 보는 것이 은근히 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계기임에도 말이다.(특히 나에게는.)


  예를 들면, 1부터 10까지 노련함에 실수 없는 모습으로 무장한 사람보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잘한 실수도 하는 적당한 인간미를 가진 사람이 내게는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막상 나 자신은 그런 것을 더 좋아하면서, 스스로에겐 그런 빈틈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다시 모임 얘기로 돌아가서.

사실 나는 사람들을 다스릴 만한 리더십이나 형평성 이런 감각은 다소 떨어진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과연 어떤 모임의 모임장을 잘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그럼에도 그냥 그런 것들에 신경을 끄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모임을 운영하다 보면

그런 방향이랑 맞지 않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떠나가고

또 맞는 사람이 몇이라도 있다면 그들과 함께,

어떻게든 흘러가지 않을까.

뭐, 그런 나만의 방식이 누군가의 질타를 받게 돼도 크게 개의치 않을 것 같다.

'일단,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내 돈 내고 만든 모임이니까.'

마음에 안 들면 그 사람도 자신의 재화를 소비해서 스스로 모임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한 달에 만원 정도 아까워서, 그저 남을 비난만 할 것인가.)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져 와서 급하게 마무리 지어 보자면,

뭐 인생의 찰나 같은 순간이었더래도 어제 모임은 꽤 괜찮았고,

너무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특히 평일인만큼) 잘 즐겼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종종 있었으면 싶지만,

함께 했던 이들의 생각도 또 다를 테니

뭐, 역시 되는 대로~


 (회사에서도 자잘한 것들 일일이 신경 쓸 게 많은데 스트레스 풀고 쉬러 나가는 모임에서야 과하게 집착할 필요야 없다. 가는 사람 붙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자, 몇 번의 소소한 모임의 모임장을 했던 동안 내가 항상 유념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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