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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Jun 25. 2023

회사사람들이랑 거리를 두기

아직 어린아이의 괜한 오지랖

  지금은 서른 정도의 나이. 솔직히 만 나이가 실행되고 나서 더 혼란스러워 내 나이를 네이버에 쳐보지 않고서는 헷갈린다. 대략 서른 하나, 둘이니 서른 초반이겠다.

고교 시절부터 내가 잘 못하던 것은, '남에 대한 관심을 끊기'였던 것 같다. 솔직히 남이 어떻게 되든 무시하고 내 할 일만 하면 되는데, '괜한 오지랖'이 넓다.

굳이 엠비티아이 핑계를  대자면 인프피라서 그럴까. 2년 전에는 엔프피였다. 그런데 10년 전인 고교 시절에는 뭐였는진 모르겠다.

  고교 시절에 인간관계에 데인 이후로, (솔직히 데였다고 썼지만 지금 와서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긴 하다.) 이런 습관을 잘 못 버려서 대학교 시절에도 대부분의 인간에게 지나치게 친절했다.

그렇다고 내게 돌아오는 것은 없었지만, 내심 '베푼 만큼 언젠간 다른 사람에게 다른 일로써라도 돌아오겠지'하는 생각은 했다. 왜, 어른들이 '복을 짓는다'라는 말도 하시니까.

  지금 와서 따지고 보면, 내가 소개를 해줘서 잘 사는 둘 중 여자 쪽 지인은 오히려 웃기게도 나와는 소원해졌다. 또한, 그녀의 남편이 된 남자 지인도 똑같이 불편해졌다. 오히려 소개를 안 해 주었으면

그 둘 각각과 나의 관계는 지금 더 나았을 거 같다. 그냥 그 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조금이라도 호의적인 인간이거나 내가 조금이라도 호의적인 인간들에 대해서 '그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애써 내는 것이 아닐까. 이런 버릇 때문에 최근에도 굳이 두 명의 사람을 이어줬다. 그냥 예전의 결과가 그 모양이었으니 이제는 소개가 잘 되든 못 되든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고, 내가 애써 이어준 결과랄지라도 그냥 무시하고 '그래, 알콩달콩 잘 살아라.'하고 관심을 끊어버리게 된다.

  '인간에 대한 기대가 하나도 없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 실망했던 것도 내심 그들이 나의 공로를 기억하고 고마워하길 바라는 기대 따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 사람이 싫어질 때도 있다. 특히 회사에는 내가 원래 너무나도 싫어하는 인간상이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고인 물이랄까. 썩은 고인 물인 그녀는 리더랍시고 감정적인 판단과 편애를 일삼는다.

이런 인간 밑에서 나도 똑같이 이상해지는 게 제일 싫기에, 조만간 나갈 생각이다. 그냥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그런 더러운 마인드가 내게 스며드는 게 싫다.

  이 글을 쓰면서, 재밌게 본 드라마인, '나의 해방일지'를 옆에 틀어 놓았다.(집중력 있게 써 내려가는 글은 아니고, 요즈음 마음이 힘들어서 맞춤법이 틀리거나 오타가 있을 수 있다.)

나 또한 해방되고 싶다. 그냥 더럽게 형평성 없는 처사가 난무하는 그 공간에 출근하는 것이 싫다.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는 게 자연에서는 당연한 일인데, 이런 야생의 짐승 같은 마음을 회사의 공적인 일에 주제 없이 표현하는 그녀가 싫다. 그녀의 세상이 과연 영원할까. 뭐, 그녀를 저주하거나 복수를 하길 바라기보다는 그저, 남을 괴롭게 하는 그녀의 말과 행동의 결과가 언젠간 그녀의 삶에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만다.


  회사에서 비교적 평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는 그나마 친분을 꽤 유지하고 있지만, 역시나 회사라는 공간은 내 발등에'만' 불이 안 떨어지면 괜찮고 남이사 어찌 되건 솔직히 상관없는 곳이니까,

너무 정을 주진 않으려 한다. 내가 했던 말이 또 어디 가서 이상하게 와전되어 회자되기 십상인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물어버리는 게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좋게만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의지했던 이는, 또 남 앞에서는 '걔는 어떻게 될 거 같은데(내가 전해 들었을 때는, 대강 더 힘들어질 거라는 말)'라는 말을 너무도 쉬이 할 뿐이었다.

역시 남은 남이다, 회사 사람들에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쉬운 게 아니라서, 이런 페이스를 유지하던 이는 그 누구와도 별반 친해지지 못한 채 퇴사하였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게 속 편한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가족, 연인 외의 많은 관계를 두어서 별 이득이 될만한 것도 없다 생각한다.


  상사들을 보면 무엇 같은 기분을 숨기는 것 또한 사회생활의 기술이라 하지만, 그나마 이직이 자유로운 이 분야에서 배짱을 부려보자면 '저 인간은 내가 어찌 돼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인간인데, 내가 뭐 하러?'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잦다. 그리고 그렇게 나 자신을 갉아먹는 게 싫어서, 그냥 아부를 안 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이다. '쟤는 쟤고, 나는 나다'

  지금 당장 내가 중대 질병에 걸려서 어찌 되든 간에 또는 그녀가 그리 되든 간에 서로 안부하나 물어볼 사이도 아닌데, 굳이?

그냥 내 앞에서, '인간이길 포기한 인간'으로 보인 사람은 그게 끝이다. 나도 더 이상 그 사람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글로 쓰면 쉽지만 실천하면서 살긴 힘들다. 적당히 아부를 해야 인생이 편하다고 하는 말이 있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서, 안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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