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정도 약 10퍼센트 투병생활과 90퍼센트의 행복하고 잉여로운 백수생활을 넉넉하게 채워주고 있는 취미가 있는데, 뜨개질과 글쓰기와 등산이다.
등산은 하루 이틀에 몇 번씩 계속하곤 하는 뜨개질이나 글쓰기보다는 빈도가 낮아서 완전한 취미생활이라고 하긴 좀 그렇긴 해도, 문득 세 가지의 공통점이 생각나서 적어본다.
먼저 세 가지 모두, 꽤 지루한 면이 있음에도, 그 지루함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오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세 가지 모두 초반부터 너무 서둘러서 하려다 보면 중간에 지쳐버리기 십상이다.
몇 달 전에 사둔 겨울용 뜨개실들을 아직까지 소진하고 못하고 있는 점은, 괜히 욕심부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글을 쓸 때도 당장의 소재나 글감이 넘쳐나는 것 같아도, 막상 몇 줄 써내려 가다 보면 안 써지는, 몇몇 제목들은 발행되지 못하고, '저장'된 상태로 남는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려 하면 세 가지 모두 그저 하기 싫고 귀찮은 일이 되어버린다. 만약 판매를 목적으로 뜨개질을 해왔다면, 취미로서의 편안함이 상실되어 버릴 것 같다. 그저 하고 싶을 때 하나하나씩 만든 모자들, 목도리들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마찬가지로 글을 써야 해서 써야 한다면 참 고역일 것 같다. 자연이 그리워서 스스로 산을 오를 때보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등산하던 시절이 좀 더 힘들기도 했다.
한편'필'(feel) 받으면 며칠간 방치해둔 뜨개질도 속도가 붙고, 글도 마구마구 비록 노련한 기교는 없지만, 막 써내려 가게 되고, 등산도 풀내음에 더욱 취해 더 상쾌하고 맑은 상태로 하게 되며, 다리와 발, 심장에 느껴지는 힘들고 숨차 오르는 자극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세 가지의 취미 외의 모든 일이 그렇듯 무리하게 하나만 하다 보면 탈이 나기도 한다.
대바늘을 이용한 뜨개질과, 주로 핸드폰이나 키보드 타이핑으로 써내려 가는 글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손목이나 손가락 관절들이 아파오고, 등산도 너무 과격하게 즐기다 보면 없던 고관절과 무릎 통증도 생긴다.
이들을 적당히 하는 경우에 당연히 장점도 있다. 뜨개질을 통해 백수처지에 어머니께 특별히 해드릴 것도 없는 중에, 모자라도 만들어서 선물할 수 있고, 글쓰기를 통해 잡다한 생각거리를 조금 풀어내어 해소할 수 있으며, 등산을 통해서는 몸과 정신을 단련할 수 있다.
세 가지 취미는 요즈음 내 삶을 꽉 채워주고 있다. 하나 더 생각나는 공통점이 있다면, 대부분 혼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편한 부분이 많다. 이전에는 하루에 약속이 없으면 하루를 헛사는 것 같고 불안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혼자 있는 게 참 편하다. 약속이 없는 게 더 좋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타인을 만나서 교류한다. 물론 타인의 범위에 늘상 같이 있는 가족들은 들지 않는다.
그래, 가족과의 시간. 어머니가 한참 내게 요구하시던 것이었다. 10시간여의 근무를 끝내고도 타지역으로 나가서 각종 모임을 하고 밤 11시나 되어서야 귀가하곤 했다.
집에 돌아오면 당장 씻을 힘도 없어서 한참 누워서 쉬다가 겨우 씻고는 했다. '좀 일찍 들어와서 가족들이랑 얘기도 좀 하고 그래'라는 어머니의 말에 '그럼 다 때려치워란 말이냐'하고 섣부르게 화를 낸 적도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가족이었으나, 그 시절에는 가족 외의 남들이 그렇게나 중요했다. 매번 가까운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하자고, 남에게 잘 보이려 하는 것보다 가족들의 편에서 그들을 방어하자고 다짐하지만, 쉽지는 않다. 내심 가족들은 다 이해해줄 거라 생각하는 게 아닐까. 가족들도 서운한 점이 분명 있을 텐데. 단지 가깝다는 이유로 좀 더 내가 잘나 보일 편을 들어달라고 종용하는 것은 아닐까.
어머니를 위해 천천히 모자를 떠가면서 생각해본다. 물론 내가 편안히 앉아서 티브이를 보며 뜨개질을 하는 동안도, 어머니는 쉴 새 없이 부엌에서 움직이시며 우리를 위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