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언니가 둘째를 임신했다.
우리의 나이차는 손하나만으론 부족할 정도지만, 언니와 함께 학업을 병행했고, 그동안 많은 추억도 쌓았다.
방학 중 외국 여행, 운동 강습... 시험기간이 끝나면 졸린 몸을 이끌고 다른 동기들과 카페에서 한참 수다를 떨기도 했다. 형부가 된 오빠랑 소개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빠에 대한 얘기도 나누었고, 비록 졸업하고 타지에 있었으나 나랑 언니는 연락을 종종 이어갔다.
언니라기보다는 때로는 친구 같기도 했다. 그래도 언니는 언니라고 어른스러운 면이 나보다 많았다.
코로나가 막 시작하던 무렵 언니는 결혼을 하고, 집을 구하고 아기를 낳았다.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없던 나는 언니가 내심 부러웠다.
얼마 전에 언니가 원하던 둘째의 임신소식을 전했다.
축하하고 곧 얼굴 보자 하고 나서 또 언니가 부러웠다.
그저께 만난 다른 언니는, 내 소개를 통해 동갑내기 오빠와 결혼하고 살림을 꾸렸다. 그 언니는 친구들의 임신소식을 들어도 별생각이 들지 않는다 했다.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오빠에 비해 언니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그리 원하고 있진 않았다.
20대 초반 때는, (필자는 이제 서른) 28살에 궁합도 안 본다는 4살 차이 32살 오빠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애기는 최소 2명은 낳고 싶다는 꿈을 꾸었더랬다. 이제 살아보니, 가방끈이 조금 길어서 그런지 겨우 26살에 졸업을 하고 정신없이 일하며 살다 보니 곧 서른이라, 그 꿈의 나이 때의 결혼은 지나갔다.
이상하게 학창 시절에는 또래 여자들과의 궁합도 그리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좀 더 일찍 학교를 들어가서 원래라면 닭띠들과 다녀야 했는데 원숭이띠들과 학교를 다녔다는 미신적인 일도, 어쩌면 한 몫하질 않았나 싶다.
같은 학년의 또래 여자들이 관심 있는 일들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손윗뻘의 사람들과 더 어울렸고, 편입을 하고 나서는 막내의 위치에서 다시 입학을 해서 항상 어울리며 웃고 떠드는 이들은 나보다 4, 5살 이상 많은 사람들이었다. 나이차가 조금 있었기에 항상 행동이 조심스럽기도 했고, 공감 못하는 일도 조금 있긴 했지만, 그들 중 일부는 학창 시절 동안, 마치 평생의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비록 그들과 10살 미만의 나이차임에도, 그 삶의 속도는 조금 다른가 본지, 친구 같던 그들 중 일부는 결혼을 했고, 집을 구했고 임신을 하거나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벌써 내 꿈대로라면, 28살, 2년 전에 이뤄져야 했을 일들이 가까운 이들에 의해 실현되는 것을 보면...
나는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잊고 있던 그들과의 나이차를 생각하며, 그런 조금의 절망들마저 덜어내버리려 한다.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춰서 가자.
그 누구와도 비교하면서 조바심 내지 말자.
그들을 무작정 따라잡고 싶어서 또는, 그들과 비슷해지고 싶어서 급하게 하려다 탈 나는 것보다 낫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