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제일 좋아했던 공간, 서점

도서관이 불편한 이유 外

by 박냥이

엊그제 도서관에서 대출했던 도서 4권 그대로를 한 장도 펼쳐보지 않고 그대로 반납시켰다. 허허.. 사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마도 한때 서점을 좋아했던 것도, 책을 읽는 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책을 '사고 소유하는 것'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겠다. 가뜩이나 좁은 방, 한 면은 천장까지 높은 책꽂이에 항상 책이 가득했다. 불과 몇 년 전, 그 방이 엄마방이 되면서 남동생과 엄마의 '작전'으로 그 책들은, 아버지가 주로 머무시는 시골의 창고로 다 옮겨졌다. 물론 아마 그 시절에 나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서 집 안에서 무슨 작전이 수행되든 크게 신경 쓰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 번 읽고 또는 한 번도 안 읽힌 많은 책들이 꽤 깨끗한 상태에서 아마 다시는 사람의 손길이 닿기 힘든, 그런 창고로 강제 이송되어버린 것이다. 이후로 함부로 책을 사지는 않는다. 일단, 장르를 대략 말해보면 일반상식, 소설, 역사, 여행 책들은 거의 한 번만 읽고 묵혀버리게 되고, 심지어 스님들의 좋은 말씀이 적힌 책들도 사놓고도 안 펼쳐보는 것이 더 많다.

게다가 지금은 백수이고, 백수이기 이전에도 내게 책 말고도 사야 할 것은 많았고, 퇴근 후에는 항상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빠져 살았기 때문에, 책을 사는 것은 불필요한 행위였다. 오히려 이미 (우리 집에서 제일 부지런한 두 사람을 통해) 치워진 공간을 다시 채우는 조금의 눈치도 보아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거의 항상 대출기간인 14일 이내에 안 읽거나 못 읽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한마디로 '자발적으로 책을 읽는 끈기'가 아마 이전에는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확실히 없다'.

책에만 온전히 집중한 적은 최근에는 손에 꼽는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의 책들이다.

그래도 고교 시절에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현재까지 정독은 5번 정도, 마지막 정독한지는 꽤 시간이 흘렀다)을 밤새 읽기도 하고, 조금 야하다고 생각했던 '사립학교 아이들(?)'이란 소설책도 잠을 잊고 읽고, 이전에는 소설 손자병법(정비석 저)을 한창 읽었더랬다.

그밖에 '김삿갓', '아르센 뤼팽 전집'(반면 셜록홈스는 안 읽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등을 읽었던 아마 중학생 시절이었을 그때엔, 하교하고 나서 시내의 서점에 가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김삿갓, 아르센 뤼팽 이런 류의 소설들은, 주인공들의 매력이 꽤 있고, 남녀'관계'에 대한 묘사도 많이 나와서 아마 더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듯하다. '관계'란 것은, 성적인 행위보다는 주로 이성에 대한 호감이나 사랑의 심리묘사에 관한 것이었던 것 같다. 사실, 대학시절 전에는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책을 통해 대리만족을 한 부분도 있겠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을 떠올려보니, 사실은 그리 잘 떠오르진 않아서 출근한 동생의 방에서 이 글을 쓰는 지금, 거의 내가 산 책들이 꽂혀있는 바로 옆의 책꽂이를 슬며시 훑어보았다. 그 와중에 손자병법과,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시리즈 중 7권, 아르센 뤼팽의 고백 편이 보인 것이다.(이 집에 20년 넘게 살면서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방을 몇 번 바꿔서 사용했기에, 집안에 보이는 책꽂이에는 거의 내가 산 책들이 꽂혀있다)

그래... 사실 이제 서른인 내가 중학교 시절일 때만 해도, 학교에 있던 작은 도서관에 점심시간마다 많은 친구들이 오고 갔고, 그 시절 동안 아마 평생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었더랬다.(아침형 인간, 지구별 여행자 등등) 그때엔 (돌이켜보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는 점인데) 스마트폰도 없었고, 어쩌면 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좋은 때였던 거 같기도 하다. 특히 가뜩이나 멀티태스킹을 즐기고 평소에 정신이 산만한 편인 나로서는,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사물함에 처박아두지 않는 이상 공부에 꽤나 방해가 되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대학생 시절에도 아이패드를 가지고 공부하는 그런 방식이 나에게는 맞지 않는 듯했고(비록 아이패드는 그 이후에 직장 다니면서 구매했지만) 항상 '종이의 질감'을 중요시 여겼다. 그 덕에 방대한 강의자료를 뽑는다고 인쇄비가 엄청 들긴 했었다.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그 시절만 해도(대략 2015~2017년도) 강의실에는 종이로 된 강의자료를 가지고 오는 동기들이 더 많았다.

비슷하게 전자책 이런 것도 사실 나에겐 그다지 취향이 아니었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린다고 종이질감 필름을 붙이기도 했지만, 전자책으로써 활용해본 적은 없다.(애플 특유의 프로그램의 복잡함도 한 몫한 듯) 물론 온갖 전자기기를 좋아함에도 이북리더기 같은 것은 크게 안 끌린다. 이상하게도 책을 잘 읽지 않는 지금에도,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한다. 내가 전자책을 읽는 경우는 손에 꼽는데, 그 책이 전자책으로만 이용이 가능하거나, 아니면 장거리 여행을 하거나 할 때 굳이 책을 읽는다면 종이책은 짐이 되므로, 핸드폰으로 가볍게 볼 책을 사는 경우뿐이다.

게다가 거의 모든 책들은 한 번 읽고는 안보는 경우가 많아서 역시나 책을 빌려서 보는 게 내게는 더 맞다고 생각한다. 굳이 여러 권 책을 구입해서 여기저기 선물한 책도 한 권 두권있었는데, 그 책의 저자분이 나중에 '풀소유의 그분'이란 것을 알고는 씁쓸해했던 적이 있다. 뭐... 그래도 그분을 꽤 많이 좋아했어서, 내 주위의 거의 모든 이들이 내가 그분의 책에 빠져 사는 것을 알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이야... 풀소유의 그분의 책을 그리 좋아했던 것이 어쩌면 삶에서 부끄러운 일중의 하나가 되어버렸지만... 그냥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 이제는.

다른 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서, 대학교 시절 좋아하던 은사님이 추천해준 도서 중 하나가, 무라카미 하루키(이름이 맞는지 모르겠다)의 '달리기를 하는 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제목도 정확하진 않다)였는데, 그전에 하루키의 소설을 몇 읽고 지레 겁을 먹었지만 다행히도 에세이였기에 상대적으로 쉽게 잘 읽을 수 있었다. 기회만 되면 나도 마라톤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네...(뚱뚱한 몸에 뛰는 것은 무리겠지)

여담으로 MBTI가 한창 유행인데, 굳이 내 MBTI에 대해 써보자면 INFP이다. 뭐, 잡다한 특성들은 뒤로하고, 이 유형은 공상을 많이 하고, MBTI 연봉 순위에선 하위권(아마 꼴지?)라는 듯하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ENFP로 나왔지만, 각종 질병과 수술을 거치면서 인생이 많이 힘들었는지 E(외향형)에서 I(내향형)으로 바뀌었더라.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검사해봐도 INFP라 해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게다가 같은 유형의 아는 오빠 얘기에 의하면, 이 유형은 공부도 잘 못한다더라.(그러는 오빠나 나나 그래도 어떻게 시험을 쳐서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천운인가)

공부를 잘 못하지만, 약간의 운은 따라 주는 것도 같다. 가령이면 시험은 망쳐도 면접운이 있다거나.

여튼 사람의 성격이 꼭 16가지 내에서 규정지어지진 않는다 생각한다. 굳이 MBTI를 세분화해서 나는 E 50%, I 50%... 이런 식으로 각 항목의 퍼센트까지 따지자면 저마다의 성격들은 다 제각각일 것이다. 완전 똑같은 성격은 당연히 없다고 생각한다.(그럼에도 공감대를 느끼고 싶어서 ENFP였을 때는 관련 카페에 가입하기도 했었다) 여튼 역시 INFP는 잡다한 생각이 많은지, 내 글에는 어쩌면 굳이 제목을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제목을 써봐야 이렇게 삼천포가 새는 경우가 다반사이므로.(그냥 '무제'라고 쓸까...)

그렇다고 그 제목에 매여서만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아마 F 말고 T인 유형은 주제를 벗어나지 않을 수도...

그래도 (기왕 주제를 써놨으니) 다시 서점 얘기로 돌아가서. 예전에 나의 미래 주거지를 꿈꿨을 때, 근처에 서점과 시장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을 정도로, 서점은 내 삶에 필수적인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책으로부터, 서점으로부터 점차 멀어져 갔다. 퇴근을 하고 오면 밤늦은 시간까지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인스타그램의 돋보기에서 '모르고 살아도 될 정보'들을, 마치 '억지로 음식을 먹는 것처럼', 머릿속에 욱여넣었다.

얼마의 전자파가 뿜어져 나올 핸드폰 속의 활자들 중, 나에게 큰 힘이 되거나, 감동을 준 활자는 없었던 것 같다. 일련의 영상들도 보고 나면 금방 잊혀지고, 계속해서 더 멋지고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듯했다. 이러다 눈의 피로가 한계치에 이르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복잡한 머리로 잠을 청해야 했다.

이제는 서점에 가는 일이 잘 없다. 물론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내의 대형서점에 가는 것이 마냥 피곤한 일이 되어버렸다. 지하 2층 규모의 그 서점에는, 어떤 면에서는 책 보다 문구류들과 전자제품들이 더 많은 듯하고, 환기가 잘 안 되는지 지하 2층에는 각종 디퓨저들의 자극적인 냄새가 코를 찌르기에... 도저히 '오래 느긋하게' 있을 공간이 못된다고 느껴진다. 서울에서도 비슷한 서점에 간 적이 있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그나마 조금 덜했지만, 지금은 인산인해인 사람들 속에서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라서... 도저히 예전의 그런 '쉼'의 느낌을 서점에서 느낄 수 없었다. 사실, 내가 중학교 시절 다니던 서점에는 그럴듯한 의자나 책상도 없었고, 조명도 밝은 일반 조명이었고, 굳이 책을 읽으려면 딱딱하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서 볼 수밖에 없었어도...

이제는 사라진 그 서점의 그 느낌, 그 시절 나의 여러 생각들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서점은 이제는 없는 것 같았다. 어디를 가든, 아마 눈의 피로도를 덜어준다는 전구색(?)의 조명에, 좁은 책상에, 온갖 문구류에 책 외의 것들이 잔뜩 쌓여있고... 대부분 서점들은 지하로 밀려나버려서 공기마저 탁한 경우가 많다.

뭐, 그래도 내가 그만큼 책을 좋아한다면 이런 자질구레한 '환경에 대한 변명'들은 하지 않고, 오로지 책 읽기에만 집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버겁다. 그냥 읽고 싶으면 읽으면 되지. 특히 학창 시절에는 각종 논술을 준비하고 어휘력을 키워야 한다는 핑계로 이해되지 않는 신문 사설까지 스크랩하고 읽었더랬다. 지금은... 책을 잘 안 읽으니, 뭔가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어린 시절의 그런 외부의 강요에 대한 압박감이 아직 남은 것인지. 구태여 독서모임까지 나가서 억지로 읽어보려 하기도 했다.

흠... 그런 모임들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쓴 적 있고, 지금은 길게 쓰고 싶진 않은데 간략하게 써보면, 그저 낯선 사람일 뿐인 그들에게, 독서하고 내가 느낀 생각들과 나의 삶의 일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과연 유익하기만 한 행위일까'란 의문도 한편에 있다.

사람이 악의를 품으면 무슨 짓을 못하고, (아마 그들 중 일부도 같이 생각했을) '내 삶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만큼 귀하게 취급 할리도 없으며, 그저 자신의 인생에서 더 중요하거나 더 친한 이들을 만나면 주전부리로 씹어대지나 않을지.

아, 물론 이것은 한 '부정적'하는 나만의 생각일 뿐이다.(가까운 지인들은 내가 꽤나 부정적인 구석이 많다는 것을 안다, 반면 거리감이 있는 지인들은 내가 한없이 긍정적인 사람인 줄로만 안다)

뭐, 독서모임만큼 강제로 책을 읽게 할 수 있는 그런 좋은 것도 또 없지. 다만, 독서 또는 모임에 대한 사람들의 우선순위가 그만큼 높지는 않은지, 내가 모임장을 했을 경우에나 모임원으로 참여했을 경우에나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그들을 기다리면서 헛걸음을 했던 적이 꽤 있어서, 정말 독서에 대한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랑은 굳이 함께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의지가 없어도 어떻게든 키워보려고 했던 나처럼, 최소한 그런 (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라도 가진 이들이랑 만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책이랑 멀어져도, 선물 받은 책이 책상 위에서 몇 날 며칠 방치되어 있어도, 모임을 통해 독서습관을 길러보겠다는 마음은 점차 식어가는 중이다. 그냥... 정 할거 없을 때, 전자기기 삼매경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쉬엄쉬엄 읽어나가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 같다. 물론, 더 이상 특정 시험에 대한 의무감으로 책을 읽는 일은 없고, 그런 일은 웬만하면 없을 예정이다. 어렸을 때도... 독서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지, 아기들 성적 올리려고 좋은 대학 가게 하려고 억지로 읽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 아기가 없어서 욕심이 없어서 하는 허황된 생각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책을 읽는 것을 강요당하진 않았다.(굳이 독서가 좋다고 여기저기 떠들어대는 그런 매체들에 의해 생긴 압박감이라면 압박감이랄까)

굳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이라면, 아버지도 내가 '쌓기' 이전부터 거실의 한 면을 책장과 책으로 가득 쌓으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