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의 연애관

나는 아직 멀었을지도

by 박냥이

내가 흔들릴 때마다 잡아주셨던 고마운 이모가 있다. 다들 그렇듯 '엄마 친구'를 줄여서 이모라고 부른다. 쓸데없이 인간관계에 상처를 받고 헤맬 때마다 이모는 엄마랑 함께 무너지는 내 마음을 받쳐주셨다.

그렇기에 이모 말이라면 크게 대꾸도 못하고 항상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면도 어쩔 수 없이 있다.

나에겐 한없이 고맙고, 은혜로운 이모라서 엄마의 걱정스러운 잔소리에는 매번 지지 않고 대꾸하다가도, 이모의 조언 같은 것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만 할 뿐. 혈연이 아닌 것이 어쩌면 참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모가 지금의 남편을 만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모의 연애관에 대해 들었을 때도 그저 수긍만 열심히 했더랬다. 이모는 남자를 볼 때 3가지를 봤다고 한다.

첫째는,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할 것

둘째는, 마음이 따듯할 것

셋째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래도 첫 번째 두 번째 사실이 가장 기억에 남았기 때문에 꽤 오래전 들은 이야기라서 세 번째까지는 슬프게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겉으로만 봐도 이모는 벤츠를 타고 다니시고, 나한테 씀씀이도 크시고, 부족함이 없어 보이기에 그런 이모가 결혼은 참 잘했구나 생각한다. 물론 겉모습뿐만 아니라, 집 안을 들여다보아도 참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가지고 계신다. 기회가 되면 세 번째를 다시 물어보고 싶지만... 어쩌면 지금의 내 남친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까 봐 조금 꺼리게 된다. 엄마가 그리 탐탁지 않아하는 지금의 남친은, 이모가 얘기해주신, 첫 번째 조건에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간략히 얘기하자면 이모의 남편, 아저씨는 특정학과를 나와서 그 분야의 사업체를 운영 중이시다. 반면 나의 남자 친구는, 대략적으로 전공과는 한참 거리가 먼 일에 종사를 하고 있다.

아마, 그 분야에 대해서 좀 배우고 '알고 뛰어드는 것'이 더 미래가 있는 사람이라고 이모는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한편, 당연히 전공에서 이어진 진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대학시절 그렇게 시험을 치고, '배웠음에도' 매번 새로 찾아보고 공부해나가며 직장생활을 해오긴 했었다.

그렇기에, 굳이 변명해보자면, 비록 전공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그 분야에 오래도록 종사하거나 흥미가 있어서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면, 전공을 한 것만큼의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특히 나처럼 대학생 때 그리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사실 어쩌면 이모가 말했던 순서는 위와 다를 수도 있다. 어쩌면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 먼저였을 수도.

사람을 사귀어보면, 사실 마음이 따듯한 것을 내쪽에서 그리 잘 못 느끼겠는 사람도 있더라.

아마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힘겨움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은 요구하는 것도 꽤 많았고, 작은 표현들에 인색했던 기억이 있다. 불과 몇 개월 만났던 그가 생일 선물로 무엇을 줬는지조차 기억 안 나지만, 그와의 이별을 내심 준비하고 있었던 나는, 받고 내빼는 성격은 못되었기에 비슷한 가격대의 화장품을 마치 '급하게 되갚듯이' 선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별을 고했다.

그에게서 '따듯함'이란 감정은 못 느꼈다. 여태껏 이성을 사귀면서 항상 무슨 일을 할 때 주체적인 입장에 서곤 했었는데, 그는 거의 상대가 따라와 주길 바라는 듯했다. 그에 이끌려서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그의 친구 가게에 가거나, 억지로 따라간 중고차 매장에서 매서운 바람을 맞으면서 벌벌 떨기도 했다. 게다가 그가 직장 내 다른 여자와 단둘이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했다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서 무심한 듯 듣는 일도 많았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라면 따지고 들었을 문제였지만, 그 시절의 그는 나에게 마냥 편안한 존재가 아니었기에, 그냥 애써 쿨한 척 그렇게 행동했었던 것 같다.

그가, 헤어짐을 고하는 내게 했던 말은, '주위 결혼한 친구들도 다 100퍼센트 맞아서 사는 경우는 없고, 다 서로 맞춰가는 거라고 하는데, 같이 노력해보자'라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매번 그를 만날 때마다 갖은 스트레스를 받고, 10만 원 치 메이크업을 사귄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굳이 받고 그와의 데이트를 나가야 했던 그런 나는 점차 지쳐갔고, 그에게 한보도 맞춰갈 생각이 없어져버렸던 것이다.

이 시절에도 불과 몇 개월 사귄 그가, 나와의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이모는 말씀하셨어서, 이별할 때 결혼 얘기를 하는 그를 보며 '역시 이모 말이 맞다'라고 다시금 생각했다.


이모와 엄마는, 어른이 되면 항상 무슨 일에 대한 '이유'를 탐구하게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보다 밥벌이가 시원찮은 지금의 남친이, 왜 나랑 사귀는 것인지 때때로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말들도 하시곤 했다. 이럴 때는 나만의 스킬이 있는데,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해버리는 것'이다.

엄마 주위의 아줌마들은, 종종 내게 '가만히 있으면 좋은데 시집갈건데'라고 말하시기도 했다.

아니, 나의 출렁이는 살들이 안보이시나? 혼자서 혀를 끌끌 차도 이들의 오지랖을 이길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여인(이모와 엄마)과 싸우기도 싫다.

직업? 가뜩이나 두 번의 수술로 일도 쉬고 있는 마당에... 게다가 번듯한 직장의 사람을 굳이 맞선 같은 것을 하면서까지 만나고 싶지는 않다.

물론 내가 대기업의 재벌도 아니지만, 최근에 본 드라마에 비유해보면, 거기 나오는 재벌가의 딸내미가 굳이 '진정한 사랑'을 찾으려고 아버지의 온갖 맞선 제의에도 다 기겁하며 도망치는데, 나도 무심코 '쟤는 배가 불러서 저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래... 나도 그녀와 생각이 일정 부분 일치했던 것이다. 그녀처럼 '잘생기고 진정한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마음이 통하고 편안한 사람'을 원하는 것은 확실했다.

이점에서 특별나게 잘난 직업은 고려할 부분이 아니었다.

지금의 남친은 둘도 없이 친하고 편하다. 직업이야... 뭐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다.


소개팅 얘기를 덧붙여보면, 지금껏 약 20번 정도 소개팅을 주선해왔는데, 이것도 무려 4~5년 전의 일이다.

이제는, 인맥도 없을뿐더러 소개팅 주선을 굳이 하진 않는다. 한마디로 주위에 '사랑을 전도'하고 다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매일 피폐한 표정으로 절망적인 말과 표정이 주특기였던 동기 오빠를 굳이 이끌어내서 아는 언니와 소개팅을 하게 해서, 결혼까지 하게 만든 적도 있으니... 둘째가라 하면 서러울 사랑의 전도사(사랑이 최고예요, 연애하세요 여러분~) 짓거리를 하고 다녔더랬다. 그렇지만 엄마 말마따나, '그렇게 약지 못한' 나는, 주위에서 하도 따져쌓는 '남자의 키, 직업', '여자의 외모와 직업'이런 것들에 일일이 신경을 쓰기가 너무 귀찮아져 버렸다. 만약 지금의 내가 타인에게 이상형에 대해 묻는다 해도 다 건성으로 물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어버렸다.

어차피 다, '공무원'에 '사자 직업'에 '키는 175'는 되어야 하고, 여자는 '예쁘고' 이왕 직업도 '좋은' 사람을 바랄 거잖아... 그냥, 너 알아서 찾아서 연애해라.

실제로 직장에 들어가 보아도 주위의 솔로인 사람들 중 일부는 기가 막히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서,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상책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굳이 '피곤하게' 소개팅을 주선해줄 필요가 없다)

나이가 하나 둘 들수록, 사람들이 요구하는 자잘한 것들이 많아진다. 거기에는 특정 종교도 있고...

그래서 이제는 소개팅을 시켜주고 싶어도 못 시켜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주선 자체가 '엄청 골치 아프고 쓰잘데기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거의 이십 대 후반인 지인들 중 몇은, 자신이 까다로운 것을 그래도 조금 알고 있는지, 지인들을 통한 소개팅은 지레 포기한 듯, 어플을 이용한 소개팅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안전이 갑작스럽게 걱정되기도 하지만, 뭐 어떤가. 자신의 사랑을 찾는 그들을 여전히 응원한다.

파이팅해서 인연을 만나길. 혹시 모르니 저마다의 호신술도 좀 배워놓고.


물론 내가 아직 이모나 엄마 같은 성숙한 시선으로 사람을 보지 못하는 면도 있을 것이다.

'결혼해보면~ 애 낳고 살아보면~' 그제야 깨닫고, '어른들 말 들어서 나쁠 게 없다'는... 레퍼토리...

그래도 그 시절의 엄마와 이모가 그랬듯, '지금의' 내가 좋은 게 좋은 거 같다.

음... 직업? 과연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다 행복하고, 정신이 온전할까?(당장 주위의, 사회에서 좋다는 직업군의 사람 중에서도, 각종 폭행, 폭력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의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나는 그저 같이 오징어 마냥 축 늘어져서 넷플릭스나 보면서 과자나 와자작 씹어대는 그런 삶이 오히려 더 편하다. 남친은 그저 내 음료수의 돌리는 뚜껑 따는 일만 도와줘도 고맙다. (필자는 악력(?)이 약하다)

가끔씩 단톡 같은 데서 자신이 어디에서 일하고 이런 것을 자랑하듯이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음... 그저 활자일 뿐이다. 활자일 뿐... '그에 대해 어떠한 판단도 보류한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다만, 당신이랑은 별로 마주치고 싶지는 않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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