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연하게, 과자는 덜 달게
이런다고 몸에 좋은 것은 아니지만
'뭘 그렇게 많이 먹어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순간 멍해졌다. 케이크? 아니, 요새는 안 먹는 편이잖아..... 그럼 집밥인데... 그중에 특히 '밥'(Carbohydrate)을 많이 먹는가?
이후에도 이 얘기를 들은, 엄마가 종종 의사 선생님을 흉내 내며 놀리곤 했지만, '내가 뭘 많이 먹는지'는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는 편이라서 '특별하게 많이 먹는 음식'을 꼽는 게 힘들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빵, 떡, 밀가루'에는 환장을 한다는 것이었다. 오일장에 나가면 사지는 않더라도 항상 떡집에 놓인 형형색색의 떡들에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빵'은 그나마 마주 칠일이 적다. 오일장에서 우리가 주로 도는 코스에는 (떡집은 세 개) 빵집은 하나뿐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이 최근에 있었다. 3월,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은 나에게 몇몇의 지인들이 보내준 케이크 기프티콘. 작년까지만 해도 정직하게 케이크로 바꿔먹었을 테지만, 올해는 그 가격만큼 빵으로 바꿨다. 치킨 샌드위치, 크랜베리 참치 샌드위치, 식빵, 호밀빵 등등... 27,000~29,000원의 케이크 가격 '이상'으로 맞춰야 했기에 빵을 꽤나 많이 담아야 했다.
이걸 사서 다 먹을 수나 있으려나 싶었지만, 우리집엔 나 외에도 3명의 식구가 더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빵을 한 보따리 주문한 그날에, 시골에 가 계시던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어머니랑 동행하지 않으시면 식사를 변변찮게 드시고 와서 항상 본가에 돌아오시면 '폭주'하시게 되는 아버지께서는, 아니나 다를까 집에 들어오자마자 식탁의자 위에 있는 빵가게의 큰 쇼핑백 안, 제일 윗부분에 있던 호밀빵을 꺼내와 열심히 드시기 시작했다. '그 빵'들은 아마 3일을 버티지못하고 모두 소진되었다. 배달을 시켜서 그런지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했었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기쁘게도(?) 케이크 쿠폰은 하나 더 남았었고, 몇 개월 뒤에 써도 괜찮았지만, '이참에'라고 가족들 몇몇이 '오케이 사인'을 날렸다. 멀리 차를 끌고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늘 차에 싣고 다니는 마트 장바구니를 들고 빵가게에 들어갔다. 그렇게 사 온 빵들은 불과 이틀 사이에 대부분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동안 집에서 푹 쉬고 계시던 '아버지 버프(buff)'가 꽤 컸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2위는 나다.
아버지는 조금씩 남은 밤식빵과 모닝빵을, 저녁에 자신만의 공간에 비축해두었다가, 아침식사가 차려지기 전의 시간 동안 모두 해치웠다.
가족들 중 과반수가 이렇게 빵에 환장하는 사람들이라, 웬만해서는 마트에 가도 빵들이 진열된 빵집이 있는 공간에 불가피하지 않은 이상(바로 입구가 빵집이면 시선만은 피할 수 없다) 지나가지 않으려 하고, 내 돈 주고는 안 사 먹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편이다.(제과점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요새는 종종, 마트의 배송시스템을 이용하는데, 대강 설명하자면 하루 중 특정시간대에 4만 원 이상의 물건들을 배달시킬 수 있는 서비스이다. 월요일에는 아침 8시가 되기 전에 주문했으나, 당일배송은 모두 마감된 상태였다.(아마 이 지역의 유일한 마트라서 그런 듯하다) 필요한 물건들을 몇 개 담고 금액이 애매하게 모자라면, '과자'라고 당연한 듯 검색한다. '너무 단 것 말고...' 고르다 고른 것은 황토색의 오레오다.
즐겨먹는 과자는, '롯데샌드 파인애플맛'이지만, 어쩔 때는 꽤 달달하게 느껴져서, 그보다 덜 단 것을 찾다 보니, 아 그리고 배송 가능한 상품이 아니라서 황토색 오레오를 주문했다.
오레오 골든(황토색 오레오), 덜 단맛은 까만색이다.기존의 '새까만 오레오'는 너무~나 달기 때문에, 조금 버겁다.
그러고 나서 어제 오후, 일이 있어 갔던 다른 마트에서, 내 눈에 띄는 과자를 보았다.
기존의, 새파란색의 오레오박스가 아닌,
'하늘색의 오레오박스'.
'저것은 무엇인가. 설마?'
예상대로, 그것은 오레오의 '덜 단맛'이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진파란색에서 하늘색'이니 내심 조금 기대한 보람이 있었다.
이미 다른 과자를 이마트에서 구입한 상태였지만, '그것'은 또 뭔가 다를 거 같아서 바로 쇼핑카트에 담았다. 옆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잔소리도 가볍게 흘려들었다.
아마 나와 비슷하게, '억수로 단 것'을 못 먹는(아니 먹을 수는 있는데 뭔가 꺼리는 것도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엄청 단 것을 먹고 나면 갈증이 몰려오기도 한다. 거기다 '속이 아린다'라고 해야 할까, 여튼 속도 불편하다.
그래서 나처럼 여느 카페의 프라페나 스무디도 좀 부담스러운 분들이 아마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덜 달게 해 주세요'라고 요청하지만, 이후 카페에서 오랜 기간 일하던 지인과의 이야기를 통해,
'그 덜 달게'의 기준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연하게, 덜 달게 이렇게 말하는 거 잘 모르겠다, 심지어 자신은 커피를 먹으면 안 되는데 연하게 해 달라 해서, (그 연하게의 정도가) 성에 안찼는지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반성해보기도 했다.
그래... 나도 꽤 한몫하는 '연하게, 덜 달게 파'인데...
뭔가, 기존의 레시피대로 제조되어 나온 음료의 맛보다는 '약간 밍밍한 상태'가 더 좋달까...
그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선, (카페의 정확한 레시피는 잘 모르지만 가끔씩 몇 샷이 들어가는지 물어본다) 1샷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반샷으로, 너무 진하다 느껴지는 곳에서는 반샷에 물 많이, 2샷이 들어가는 경우 반샷~1샷으로 부탁드리는 편이고,
'단'음료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밖에서는 잘 안 사 먹으려 노력 중이기도 하고 뒤늦게 깨달은 '덜 달게'란 말의 애매함 때문에도 잘 안 먹게 된다. 그렇다고 '녹차라떼 파우더 1/2만 넣어주세요'하기엔... 그게 녹차 파우더인지, 녹차'라떼'파우더인지도 잘 모르고... 우유도 얼마나 어떤 우유가 들어가는 지도... 복잡하게 생각되어서...
그냥 패스.
게다가 덜 달고 연한 것을 즐겨먹는다고 날씬한 것도 아니니...
생각해보면, 평소 성격도 우유부단하고 확실한 면이 없는 것도 음식을 이런 것들만 먹어서인가...
라면을 끓일 때도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라고 얼토당토않게 끓이는 편이고... (끓여달라 하는 경우에 당사자인 남동생이나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할까, 한 대 쥐어박고 싶진 않을까...)
그저 중간이 좋은 걸까... 인간관계에서도 너무 튀거나 반대로 너무 조용하거나 하지 않고, 적당히 나서고 적당히 숨는 편이다. 운동도 극단적으로 하는 경우가 잘 없고...
무엇에 대한 싫고 좋은 것에 대한 확실한 판단도 적은 것 같고...(몇몇 사람을 차단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오레오 덜 단맛'은 참 맛있더라~ 너무 달아서 입속의 수분이 다 마르는 것보다 적당히 자극적인 꽤 행복한 맛이어서 이 글을 쓰는 와중에 한 봉지를 순삭해버렸다.
P.S. 글을 쓰면서 어학사전을 켜 두고, 단어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검색해보기도 하는데, 위에서 내가 쓴 단어인 '버프'나 '순삭'이라는 말은 거의 게임에서 유래한 것 같다.
참조로 써보자면, (출처-네이버 국어사전)
*버프:
RPG에서 캐릭터의 스펙을 향상시켜주는 마법류를 통칭하는 말이다. 버프(buff)의 사전적 의미는 열광자, 팬이며 마법으로 열광자나 팬처럼 캐릭터를 지지해준다는 의미로 MMORPG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버프] 떨어져갑니다. 리필해주세요.
(이런 예문도 있는 게 참 신기하다, 내가 쓴 '아버지 버프'는 (빵을 해치우는 부분에서=게임 중 사냥을 하는 부분에서) 스펙을 향상해준다와 비슷한 느낌)
*순삭:
명사 ‘순간 삭제’ 또는 ‘순식간에 삭제’를 줄여 이르는 말로, 어떤 것이 매우 빠르게 사라지는 일. 게임에서 손쓸 새 없이 캐릭터가 빠르게 죽을 때 쓰던 말에서 유래하였다.
(솔직히 '순삭'은 게임 유래인지 잘 몰랐다. 내 경우에는 '음식을 순식간에 해치울 때' 더 많이 쓰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