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와 레고들

유년시절의 추억

by 박냥이

마트. 할아버지 댁과 우리 집을 오고 가는 길, 고속도로가 들어서기 전 국도로 다니던 시절에, 항상 거쳐가는 마트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철부지 나와 동생의 '레고사재기'도 함께 한다.

돈 버는 것이 무엇인지,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생각지 못하던 시절, 마트에 들어갈 때마다 자기 몸보다 더 큰 레고 박스를 하나씩 들고 나오니, 그 시절 엄마 아빠가 보기에 오죽 부담이었을까.

덕분에 문이과가 나뉘었던 시절, 누나는 이과에 간 것도 레고놀이의 영향일까.

여튼, 레고사재기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엄마 아빠를 괴롭혔고, 반대로 동생과 나를 행복하게 해 줬다.

우리는, 설명서대로 조립하고 만드는 것보다, 역할놀이에 맞게 조잡하고 희한하게 생긴 집을 만들고 놀았다.

어느 레이싱 레고를 샀을 때, 사람모형의 레고들에 하나하나씩, '빨강이', '노랑이', '파랑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고, 군복을 입은 순진한 눈의 레고 사람은, '누나 대장', 선글라스를 낀 레고 사람은, '동생 대장'으로 불렸다.

집 같은 것을 지을 때면 거의 모든 모양의 레고 조각조각들이, 그동안 레고를 하도 사모은 탓에 부족하지 않게 있었다.

한 번은, 여느 때처럼 마트에 들어갔는데 동생과 나는 약속한 듯이 레고 진열대로 향했고, 항상 그렇듯 커다란 레고 박스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마트 어디에도 부모님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당황한 우리는 '설마'하면서 레고를 도로 가져다 놓고, 주차되어 있는 아버지 차로 돌아왔고, 앞 좌석에 앉아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았다.

이후 한참 시간이 지나서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시절의 그 일이 나름 충격이었는지 기억에 남아서,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니들이 레고를 얼마나 사재끼는 지... 돈도 없는데 참말로 힘들었다'라고 하시더라... 하하하...

그 시절, 철부지였던 나와 동생은 그럼에도 마트를 안 들리면 한없이 아쉬워했고, 심지어 나는 조수석에 앉아 멀어져 가는 마트를 뒤로 하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더랬다.

레고사재기와 레고놀이는, 나이가 듦에 따라 그에 대한 흥미가 점차 시들시들해져서 집에 널브러져 있던 레고들도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추었다. 부모님의 걱정도 한시름 덜어진 셈이다. 이후에 또 각종 말썽을 안 부리고 산 것은 아니지만... 하하하. 그래도 우리가 가지고 싶었던 (아마 몇십~백만 원 치의) 레고를 원 없이 사주시고 갖고 놀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효도해야겠다고 다짐만... 해본다...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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