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런던 여행
오늘은 런던을 떠나는 날이다. 시끌시끌하던 런던 호텔의 사이렌 소리도 그리워질 참이다.
연인과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왜 코 끝이 싸하면서 뭉클해지는 걸까?
런던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쉬웠던 것인지, 아이와의 휴가가 끝나감이 섭섭했던 것인지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는다.
내 기분을 달래주려는지 오늘 런던 날씨는 아주 맑음이시다.
런던에 사는 디자이너 지인 케빈이 알려준 명소이자 쇼핑몰 Coal Drops Yard에 먼저 들리기로 했다.
역시 여행의 마무리는 그럴듯한 쇼핑이지.
묘한 우울감을 달래주는데 약간의 치료제가 됨은 확실하다.
감각적인 옷 매장, 레스토랑, 빈티지 매장도 있으니
독특한 건물과 함께 들려보기 좋은 쇼핑 장소로 추천한다.
아이는 여행하면서 계속 향수, 핸드크림에 관심을 보여주었다. 향수 가게가 보일 때마다 맡아보고 좋아라 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났다.
콜 드랍스 쇼핑몰에 이솝 (AESOP)이 있었는데, 제품 가격은 한국보다 저렴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원래 살 생각이 없었는데, 직원 분이 워낙 친근하게 서비스를 해주셔서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다양한 향의 젤과 핸드크림, 오일을 종류 별로 손에 발라주시고 따뜻한 스팀타월로 마사지하고 향을 맡게 해 주시는데 그냥 나올 수가 없었다.
딸아이도 모처럼 케어를 받는 기분이 꽤 좋은 모양이다.
향 좋은 화장품 서비스를 받는
여자의 마음은 비슷한가 싶다.
마지막 날까지 가보고 싶은 곳들이 꽤 많았지만 신중하게 고민한 결과, 런던스러운 추억을 박제시켜 줄 카페 더 울슬리(The Wolseley)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그 근처에 있는 왕립미술관 먼저 들린 뒤, 여행을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고풍스러운 카페에 갈 생각을 하니 설레었다.
울슬리는 그 명성만큼 클래식한 느낌이 압도적이었다.
천장이 높고 거울이 많고, 묵직한 분위기에 맞게 각 잡힌 유니폼을 입은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가 시킨 음료는 바닐라 셰이크, 놓칠 수 없는 치즈 케이크 (Baked Vanilla Cheesecake)
나는 에그 베네딕트, 베리가 들어간 칵테일.
딸아이는 걸쭉한 셰이크를 몇 분 안에 휙 마시고 나더니, 기분이 살랑살랑 가벼워져 보였다.
빛나던 5월 런던의 추억은 마음속에서 훨훨 춤을 추고 있다.
나의 정신없던 젊은 시절에 스친 런던 위로 아이와 쌓은 시간들이 차분하게 겹쳐졌다.
아직은 어리숙한 초등학교 아이를 달래고 얼르면서 다녀야 하는 여행이지만,
이제 한숨 돌리면서 카페도 들리고, 샴페인도 마시고 공원에 널브러져 누워도 보고..
더 좋다.
감사할 따름이다.
비행기로 들어가는 아이 뒷모습을 보니 여행이 끝나가고 있음이 실감이 났다.
떠나는 날이 있으면 다시 돌아올 날이 있겠지.
아이의 머릿속에 남는 런던에서의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시간이 지나고 무심하게라도 나와 왔던 기억은 날까?
여행을 마감하는 엄마의 상상은 날개를 펼쳤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