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한 달 살기
헬싱키 시내 Marski 호텔에서의 1주일을 마치고, 이제 핀란드에서 3주 동안 지낼 "헬싱키 우리 집"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오후에 도착해 짐을 풀고 밖을 보니 저녁 9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곳은 핀란드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예전 동료의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사용하시는 사무실이다.
집 위치는 시내와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큰길에서 한 블록 안쪽으로 들어와 있어서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내가 바랬던 전형적인 아늑한 분위기의 핀란드 집이었다.
사무실이라기보다는 넓고 편안한 빌라 같은 느낌이다.
난 이런 아파트 스타일이 참~ 마음에 들었다.
집은 일반 핀란드 아파트 건물 3층이었고, 창밖 주변으로 6층 정도의 주거용 아파트들이 보인다.
아파트 앞으로 두터운 눈길과 한동안 움직이지 않은 듯한 눈 덮인 차들이 한가롭게 늘어서 있었다.
핀란드 동료의 아버지는 핀란드 Jyväskylä (유비스칼라)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님이셨다.
우리가 지낼 이 공간은 교수님의 1인 사무실로, 워크숍이나 외부 손님과 미팅에 사용하고 계셨다.
몇 년 전에 은퇴하셨지만, 기업 대상으로 상담심리 컨설팅 등 개인 프로젝트를 하신다고 들었다.
아이와 둘이 지내는 것을 배려해서 간이침대를 방에 준비해 주셨고,
필요한 침대 시트, 이불 커버, 목용용 수건들도 가득 가져다주셨다.
아래 사진은 집을 빌려주신 핀란드 회사 동료의 아버지와 그의 어머니이다.
정말 따뜻하고 친절해 보이는 분들이었다.
처음 만난 우리에게 교수님은 마치 산타 할아버지같이 푸근하게 웃어주셨고, 덕분에 우리는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집에 적응할 수 있었다.
어쩜 저렇게 선한 얼굴일까.
보기만 해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네.
배려심 많은 핀란드 친구와 그 부모님 덕분에,
우리 모녀에게 아늑하게 집처럼 지낼 곳이 생겼다.
감사하고 행복했단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바뀐 환경에 어색한 잠자리였지만, 워낙 조용해서 꿀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 8시, 눈을 뜨니 창 밖으로 푸른빛이 가득했다.
드디어 핀란드 우리 집에서 첫 아침이다.
단 둘이 보낼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라 편안하게 느껴졌다.
어제저녁 집 앞 체인점 마트에서 사 온 싱싱한 블루베리, 아이가 직접 고른 크루아상,
돼지고기 햄, 계란 프라이, 유기농 우유로 성의껏 아이의 아침 메뉴를 준비했다.
한식보다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 딸은 맛있게 잘도 먹는다.
호텔과 달리 직접 굽고,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게 알콩달콩 재미있었다.
핀란드 한 달 살기를 계획하면서, 아이는 매일 오전 조금씩 공부하기로 약속했었다.
마음에 드는 과학, 수학, 사회 문제집을 직접 골라서 몇 페이지씩만 풀기로 했다.
방학 내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나(엄마)의 불안함을 읽었는지,
아이가 흔쾌히 스스로 숙제를 해보겠다고 해서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아침에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 문제집을 펼쳐두고 집중하는 아이를 보니
기특하고 귀엽다.
숙제 시간은 1시간을 넘기지 않기로 하고,
하루 분량을 다 끝낸 후에는 남은 시간 내내 관광객으로 온전히 즐기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약속은 큰 무리 없이 4주간 잘 지켜진 것 같다. :-)
헬싱키 시내와 그 주변 지역들을 넓게 돌아다니려면 트램이나 지하철을 타는 것이 편리하다. 특히 눈이 많이 오고 추운 겨울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필수!
매일 타는 것이 아니라 4-5일 집중해서 돌아다닐 경우에는 매번 티켓을 사는 것보다 단기간 정액권을 사면 이동에 유리하다.
트램, 버스, 기차를 모두 탈 수 있는 트래블 카드는 R Kioski에서 살 수 있다.
시내 거리, 기차역, 공항에서 R Kioski (핀란드 편의점 느낌)가 꽤 많으니, 필요할 때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오늘이 토요일, 앞으로 5일간 사용할 것을 생각해서 아이와 내 것 각각 하나씩 5 Day 카드를 구입했다.
솔직히. 혼자 다닐 때와 달리 아이와 함께 이동하려니
모든 걸 미리 알고 막힘없이 척척 데리고 다녀야 할 것 같은 부담이 밀려온다.
여행의 자유로움보다도 보호자의 의무감이 어깨에 더덕더덕 붙는 기분...
진정, 진정해
괜찮아!
나의 긴장감은 R-Kiosk에서 묶음으로 파는 길쭉하고 진한 Fazer 파쩨르 핀란드 초콜릿으로 달래 보았다.
자 이제 카드는 준비했고, 구글맵을 켜서 원하는 곳을 찾아본다. (헬싱키에서는 구글 맵이 편리합니다!)
핀란드 극장에서 아이와 영화 보기
한 해의 마지막 날, 12월 31일에는 뭔가 특별한 행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바깥은 아침부터 영하 20도. 눈발은 새벽부터 날리고 있었다.
쓰기에 넉넉한 데이 티켓도 있겠다. 바로 지하철 타고 두 정거장 가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목적지는 #finkinno Tennispalatsi
돌비 사운드가 빵빵하게 나오는 특별관에서 #티모시살라메 가 나오는 #웡카 를 볼 예정이다.
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무장으로 하고, 밖으로 나섰다.
추위는 알고 있어도
정말 힘들어...
다행히 도착한 극장 안은 따뜻하고 아늑했다.
휙 둘러보니 우리를 포함해 10명 이내의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있다.
커다란 상영관을 통째로 빌린 것 같았다.
두 사람 영화 관람하는데 6만 원 이상 내야 했지만,
엄청나게 큰 스크린과 쩌렁쩌렁 울리는 음향, 푹신하고 큰 의자가 그만한 가치를 다 해주고 있다.
자 이제 영화 볼 시간!
커다란 팝콘을 안고 커다란 의자에 몸을 맡겼다. 옆에서 본 아이는 매우 행복한 표정 그 자체였다.
다. 행. 이. 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 #티모시살라메 가 매우 잘생겼다고 같이 감탄하면서 공감대를 만들어갔다.
꽁꽁 싸매고 눈길을 걷고, 둘이 키득키득 수다 떨면서 영화를 보는 추억은 매우 특별했다.
다음 편에는 헬싱키에서 지낼 때 알면 좋은 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