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6. 입속의 가시일까, 귓속의 가시일까?

by 작심몽실


개업을 앞두고 남편은 인테리어와 기기설치 및 계약 등으로, 나는 카페 메뉴와 운영 시스템 숙지 그리고 재료 및 비품구입이라는 역할분담으로 바쁜 날들은 보내며 취침시간과 기상시간 모두 새벽이 되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부족한 수면은 당연히 피로와 예민함을 불러왔다.

힘들 때는 부정적인 말보다 서로 응원과 위로의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우리 부부지만 독에 물이 차듯 스멀스멀 짜증과 화의 게이지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결혼 준비할 때도 단 한번 싸우지 않았는데 창업을 하면서 남편에게 처음 내보이는 모습도 많았고 반대로 늘 다정하고 차분하던 남편도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테무에서 물건 하나를 샀는데 그걸 본 남편은
"그건 으뜸이 장난감인가요?"라는 농담을 했다.
누가 보나 허접한 물건이었기에 나 또한 웃음이 빵 터졌던 날이었다.

또 다른 날이었다.
가게를 시작한다고 해서 램프의 요정 지니가 '서프라이즈!'라며 알아서 준비해 주는 것은 아닐 테니 빨대, 컵, 냅킨 등 모든 것이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카페투어를 다니면서 빨대 길이, 컵사이즈하나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하며 밤새 고른 비품들이 어쩜 그리 상상이하인지... 이틀을 고민해서 주문한 컵 온스는 생각보다 크고, 빨대는 짧고, 홀더는 얇고... 늘어지는 다크서클만큼 스트레스 게이지도 쑤욱 올라가고 있었다. 남편 또한 하나하나 말은 안 했지만 한정된 예산 내에서 가게를 차리려니 본인이 여러 몫을 해내야 하는 일이 많아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었고 피로가 누적되어 갔다.

그러던 중 쿠팡에서 저울 하나가 배송되었다. 같은 가격이면 더 나은 것이 있다고 말하고팠을까?
남편이 물었다.
"이거 충전식은 없었어요?"
그 질문이 뭐라고... 그 말 한마디에 안전장치가 풀렸다. 딸깍!
"나도 몰라요! 그럼 자기가 사던가!!!!!"
그 이후는 다들 예상하듯 한판 싸움...

싸우지 말자, 상처 주지 말자 다짐했지만, 그 일 이후로도 몇 번의 Round가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내의 노고는 모른 채 다른 선택은 없었냐고 묻는 남편의 입이 잘못일까. 바쁜 일정 속, 수많은 선택의 폭에서 신경 가시가 돋아 있던 내 귀가 문제일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어느 하나의 탓은 아니라는 지극히 성인다운 결론을 내렸지만 수일이 지나 담담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지금도 서럽다. 고심해서 고른 아내의 노고를 몰라주는 남편이 야속했다. 남편은 그럴 테지. 자신이 뭐라고 했다고 온갖 짜증은 남편에게만 부릴까 하고...

앞선 글에 썼듯 주말부부를 끝냈던 2023년도가 가장 많이 싸웠다고 생각했는데 창업을 준비하면서 이제 3월밖에 되지 않은 2025년이 벌써 기록을 경신한 것 같다.

아마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종종 싸울 것으로 예상된다. 개업 전까지 준비해야 할 일은 많이 남았고, 이후에도 계속 조율해야 할 일 투성이니까...

그런데 잦은 다툼으로 노하우가 생겼는지 의미 없는 싸움은 지양하자는 긍정적인 목표가 하나 생기기 시작했다.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고 시작한 일인데 다툼의 원인이 둘 사이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이 싸울 만큼 의미 있는 일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싸움의 목적이 서로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두 이견의 중간지점을 찾는데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쉽진 않다는 것이다. 왜 불꽃이 붙은 화는 부지불식간에 모든 걸 태우고 난 뒤 비로소 재가 되었을 때라야 보일까.

개업은 코앞에 다가오는데 내딛는 걸음걸음이 더디다. 앞으로 함께 나아가야 할 파트너와의 갈등은 더욱 발목을 무겁게 잡는다. '이렇게 해서 우리 개업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밀려온다.


예상은 했지만 쉽지 않구나.

휴...

keyword
이전 15화15. 퇴사 1주년, 빛이 보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