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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어쩌긴 뭘 어째!

by 작심몽실

우리 엄마는 걱정을 달고 사시는 분이다.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아들 둘을 둔 옛이야기 속 어머니처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걱정거리를 찾아내신다. 그런 걱정이 때로는 일에 신중함을 기한다는 이점도 있지만 때로는 시작하기도 전에 김 빠지게 만들거나 두려움 많은 내 성격과 맞물려 애초에 포기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엄마가 걱정하는 부분들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음에도 주먹만 했던 걱정은 어느새 온 힘을 다해 밀어도 꿈쩍 않는 눈덩이가 되어 '안 해, 못 해.'라고 포기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지금 와서 엄마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걱정과 나의 소심함 그리고 하나 덧붙이면 아빠의 엄격함으로 얼마나 많은 기회와 경험을 놓치고 살았던가, 왜 나는 좀 더 대범하지 못했을까라는 후회가 없지 않다. 가능성보다는 불가능을, 일의 성공보다는 안되었을 경우를 먼저 생각하다 보면 지레 겁을 먹고 어차피 안될 것이라는 짐작으로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내가 교직을 그만두고 카페를 한다고 하니 말씀은 아끼지만 엄마가 얼마나 걱정 속에서 끙끙 앓고 계실지 눈에 선하다. 칠십 평생을 걱정으로 살아오신 엄마이기에 그런 습성을 자의로, 타의로 멈추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도 아직 마흔.... 서넛밖에 먹지 않은 내가 변하기로 마음먹었다. 예전처럼 엄마의 걱정 따라 흘러가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붙잡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의식적으로 긍정 마인드를 가동했던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그 사실이 마음을 흔들릴 새 없게 만들어 주었다. 따박따박 월급을 주던 곳을 그만두고, 남편과 카페를 차린다. 그리고 그것으로 우리는 밥벌이를 해야 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라는 걱정은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가끔 가족을 비롯해 가까운 지인들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 경기와 이미 포화상태인 카페 매장을 보며 우리 대신 온갖 부정적 상황에 대한 시물레이션을 돌려준다. 예전 같으면 그들과 함께 한숨지으며 '어찌 까잉, 어찌 까잉....'라고 맞장구치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단 한마디를 할 뿐이다. '해야죠!' 이 말 이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카페창업을 준비하면서 만났던 어느 대표님이 계신다. 카페 두 개를 운영하시면서 또 다른 일로 밤낮없이, 주말 없이 열심히 달리는 그를 보며 물었다.

"대표님은 안 힘드세요?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하세요?"

그의 대답은 단순했다. "해야죠. 제가 선택했는데."

그리고 그는 개업준비로 바빠 피곤에 절어 있는 나를 위로했다.

"앞으로 더 피곤해지실 겁니다. 오늘 배울 게 많아요. 다 해내셔야 해요."

그 다운 위로였다. 그때는 그가 극 T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대화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 개업을 코앞에 둔 지금 그와 비슷한 말이 내 입에서 나오고 있다.

"어쩌긴 뭘 어째? 해야지! 해내야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야 할 일이다. 걱정할 시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내야 할지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고 득이라는 것을 이제 안다.




과거의 나는 '어떡하지...'라는 고민의 늪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안전한 현재로 돌아와 안도했지만 도전해보지 못한 내가 원망스럽고 후회가 남는다. 지금은 솔직히 전보다 상황이 좋아졌다고 할 수 없다. 우선 안정적인 직업이 없고, 통장은 비었고, 빚은 졌고, 어느 것 하나 나아진 것 없고 기세 좋게 움직였더니 오히려 모든 면에서 많이 후퇴해 버린 듯하다. 그런데 지금이 더 당당하고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선택했고, 선택한 삶에 대해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책임도 원망도 모두 나의 것이라는 것.

그래서 하기 싫어, 못해, 안 해라는 말보다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전보다 세상은 더 넓었고, 무수히 많은 기회가 보였고, 그래서 삶이 다채롭다 느껴지는 요즘이다. 예전에는 내 삶에 책임진다는 말이 두려웠다.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머리와 몸을 지배했다.


그게 뭐라고... 책임지면 되는 일이다. 두려울 필요가 있을까? 남들에게 피해 가는 일이 아니라면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지임이 분명하다.


카페 개업 준비 단 몇 주만에 극 T가 되었다.

이래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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