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8. 알 수 없는 인생

by 작심몽실

드디어 개업을 했다.

조금 더 멋진 말솜씨로 개업을 알리고 싶었지만 준비하는데 너무 많은 힘을 쏟아서일까?

'개업을 했다.'라는 말 외에 그럴듯한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면 이제 정말 T가 되었나?

'인생 제2막 시작, 또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라고 그럴싸해 보인다고 생각하고 썼지만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느끼함 때문에 쓰자마자 Del키를 마구마구 눌렀다. 그리고 한참 동안 글을 잇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이 현실들이 꿈만 같아서일까?

꿈속처럼 황홀하다는 의미보다 어떻게 인생이 이렇게 흘러서 오게 되었나 신기할 따름이다.

가수 이문세의 노래' 알 수 없는 인생'이 요즘처럼 가슴을 울리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개업을 하고 가족과 지인들이 다녀갔다.

응원의 말, 격려의 말, 부럽다는 말 뒤로 쉽게 꺼내지 못하고 말 끝을 흐리지만 아쉬움이 담뿍 담긴 공통적인 말이 하나 있다. '그 아까운 교직...' 그들이 어떤 마음에서 하는 말인 줄 알기에 그 마음씀이 감사하다.

하지만 당사자는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물론 경제적인 면에서는 쉽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지금 힘들다고 이전 직장을 그리워한 거나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더 잘할 텐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은 분명했다.


교직 밖으로 나오니 그동안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던가를 깨닫고, 나의 무지에 놀라고 있다. 그런 무지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살면서 한 우물을 판다는 일이 존중받아야 할 대단한 업인 것은 맞지만, 다른 일을 도전해 보고 새로운 기회들로 마주한다는 것도 칭찬받고 인정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과 인연, 기회를 마주할 수 있는 기쁨을 누려보는 것도 재미있는 인생이라 생각한다.




우습지만 속된 말로 사람에게는 '지랄 총량이 법칙'이 있다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평생 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인데 허튼 말은 아닌 것 같다. 종종 반항과 말대꾸를 하곤 했지만 큰 일탈이나 탈선 없이 수말스럽게 컸던 어린 나였는데, 그랬던 내가 경제권을 가지기 시작한 청년기부터 자꾸만 일탈을 꿈꾸고, '버텨야 한다, 모두 다 그렇게 산다.'라는 말로 10여 년을 참다 마흔을 넘어 뒤늦게 인생 최대 반항을 하게 된 것 같다.


가끔 늦은 방황이 부담스러워 조금 더 일찍 지랄을 떨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돌고 돌아 도착한 지금이기에 느끼는 바도, 감사하는 바도 남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뒤늦은 방황인 만큼 두 배, 세 배 농축된 경험과 지혜를 가진 묵직하고 신중한 방황이 되리라 자신한다. 무엇보다도 지금이라도 방황이 가능하도록 아주 건강하다는 점과 나의 선택에 대해 적극적으로 책임질 각오가 충만한 어른이라는 점이 '나이'라는 빠른 속도 앞에 함부로 휘둘리지 않도록 해주어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개업을 한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만약 이 글이 소설이었다면 이쯤 해서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마무리 지을 수 있을 텐데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기대했던 대로 굴러가지 않고,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배가 되어 걱정이 줄지 않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될 거라는 확신과 희망을 품고 산다. 그리고 고민하며 적극적으로 답을 찾는 모습에서 나 자신의 쓸모를 발견하는 재미를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불혹의 백수 부부였던 우리가 드디어 창업까지 도달했다. 어찌 됐든 우리의 첫 번째 도전을 이룬 샘이다. 우리는 1, 2년 전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고 도통 앞으로 나가지 않고 남들보다 뒤처지거나 정체된 것만 같았는데 뒤돌아보니 한참 동안 부지런히 걸어온 발자국이 보인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한참이지만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면 목표를 두고 계속 가면 될 일이다.


그럼 이제 우리는 또 어디로 가볼까. 무엇을 도전해 볼까?


또 다른 재미있는 고민의 시간을 가질 때인 듯하다.

keyword
이전 17화17. 어쩌긴 뭘 어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