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 신촌블루스 2집 - 1989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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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Blues의 레전드!
가끔은 내 짧디 짧은 어휘력과 형용력에 무릎 꿇고 좌절할 때가 있는데, 그룹 '신촌 블루스'를 저런 평범한 단어 몇 개의 조합으로 밖에 소개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해 오늘은 진정 한탄과 한숨만 나올 뿐이다.
그렇다면 신촌 블루스에 대해 어떤 미사여구가 더 필요할까? 궁색한 변명일지 몰라도, 난 그저 레전드라는 말밖에 그들을 표현할 자신이 없다.
1980년대 Blues의 불모지와 같았던 K-Pop에 보석같이 등장하여 그 기틀과 기둥을 세운 신촌 블루스는 그룹의 리더였던 엄인호가 살던 동네가 젊음과 자유로움의 상징 신촌이었고, 엄인호가 인수하여 그들의 음악적 모태가 된 아지트, '레드 제플린' 또한 신촌에 위치해 있었기에 '신촌 블루스'라고 정해졌다고 한다.
엄인호, 이정선, 김현식, 한영애, 정서용...
1986년 결성된 신촌블루스는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레전드 아티스트 5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밴드라고 하기보다는 일종의 공동체의 느낌이 강했던 이들은 1988년 첫 번째 앨범이자 K-Pop 명반으로 항상 회자되는 '신촌 Blues'를 발매하게 되는데 엄인호, 이정선, 박인수, 한영애, 정서용이 참여했다.
이 앨범에는 한국 Blues계의 잊혀지지 않을 명곡, 박인수의 봄비, 한영애의 '그대 없는 거리', '바람인가' 등이 담겨있고, 블루스라는 당시 대중적 성향과 맞지 않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수십만 장이 팔리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게 된다.
1집의 흥행과 더불어 1989년 신촌블루스는 한영애가 빠진 자리를 김현식이 채운 2집을 발표하게 되는데, 보다 다양한 음악적 융합을 추구했던 프로젝트 그룹 성격이 강했던 밴드였기에, 산울림의 김창완, 레전드 발라드 프로듀서 이영훈, 봄여름가을겨울 등이 마치 객원 멤버와도 같이 작사/작곡/편곡/노래 등 각자의 역할로 참여하게 된다.
아니, 이 조합이
있을 수 있는 거야?
예전엔 신촌 블루스 1집, 2집을 두고 어느 앨범이 더 훌륭하냐라는 말도 안 되는 논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신촌 블루스 2집에 많은 애정과 표를 던지기도 했는데, 우선 김현식의 미친듯한 보컬이, 엄인호, 이정선 등 오랜 블루스 지기들과 절묘하게 음악적으로 잘 어우러진 함께한 마지막 앨범이기도 하고, 펑크, 재즈 등 보다 다양한 음악적 융합이 시도된 걸작 중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참고로, 이 앨범 이후로 신촌 블루스를 지탱하던 양대 산맥이었던 이정선이 음악적 견해차이로 공식 탈퇴하게 되어, 3집부터는 엄인호 원맨 밴드의 성향이 커져가게 되고, 김현식 마저 건강 문제로 그 찬란했던 시기의 목소리를 점차 잃어가게 된다.
아.. 그리운 김현식의 골목길은
언제 들어도 감동이다!
참고로 신촌 블루스의 '골목길'은 1982년 '장끼들'이 부른 버전이 원곡이며, 이후 윤미선, 방미 등의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오늘 소개할 쉰네 번째 숨은 명곡은 신촌 블루스 2집에 실린, 김종진 작사/작곡/편곡에 봄여름가을겨울이 노래한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이라는 노래다.
워낙 명반인 앨범이다 보니 많은 곡들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만, 대중적으로는 김현식의 '골목길'이 높은 메가 히트를 기록했기에 상대적으로 이 앨범에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가 실려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을 듯하고, 신촌 블루스의 태생적 특징인 프로젝트성 그룹임을 감안했을 때, 이들과의 어울림이 만들어 낸 걸작도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차분한 퍼커션을 시작으로 진행되는 노래는, 슬로우 템포의 보사노바의 리듬과 함께 일렉피아노가 은은하게 중심을 잡아주고, 어쿠스틱 기타의 부드러운 선율이 이내 귓가에 스며든다.
이 노래는 1989년 봄여름가을겨울 1집 CD판에 보너스 트랙으로 다시 실리기도 했는데, 전설적인 재즈 음유시인인 Michael Franks가 떠올려지는 분위기에 김종진 특유의 굵고 거칠지만 감성적인 음색이 더해져 듣는 내내 편안하고 이색적인 감미로움에 즐겁기만 하다.
그리고 노래 후반부에 들려오는 김종진의 멋진 기타 솔로와 이를 그대로 입으로 따라 부르는 그의 노래는 이 노래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는데, 30여 년 전 만들어낸 작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세련됨에 감탄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요즘 같은 계절에
듣기 좋은, 위험한 음악!
끝날 것 같지 않던, 세상 무덥던 여름도 지나가고, 갑자기 선선해진 날씨의 변화에 이젠 가을의 문턱에 어느새 다다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잊혀진 기억이나 추억들이 사뭇 많이 떠오르게 되는 일명 '가을병'에 걸리기도 하는데, 이 노래를 듣다 보면, 마치 못된 바이러스가 침입한 것과도 같이 내 맘이 전이되어 금세 센치해지기도 한다.
혹시 스쳐간 지난날 속에 그 누군가가 문득 떠올라진다면, 형체를 알 수 없는 희미한 기억의 조각 하나하나 라 할지라도 그때의 모습을 되뇌어 보자. 그리고 어느 영화 속 주인공과도 같이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주어진다면 어떨지... 우리가 함께할 미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떨지 상상해 보자.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
그 모습이 완성되지 못한, 뚜렷하지 않은 '아련함'이고 부질없는 신기루 같은 환상이면 어떤가..
어쩌면 이 계절이 우리에게 주는 작은 선물과도 같은 행복일 테니...
작사 : 김종진
작곡 : 김종진
편곡 : 김종진
노래 : 봄여름가을겨울
해질 무렵 창가에 앉아 스쳐간 지난날을 생각해
떠오르는 그대 모습에 무거운 한숨만 흐르네
서지 않는 시간 속에서 잊혀질 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쓸쓸히 거리를 나서면
바람 불어 지친 거리에 행여 그대 찾을까
외로이 발걸음을 옮기네
해질 무렵 창가에 앉아 잊혀진 그대 모습 그리네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 그것을 사랑하는 내 님께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