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 W : 2집 - 2005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왜 무슨 일 있어?
한참 동안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아냐 요즘 일이 많아
피곤해서 그래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숨 막히는 정적의 흐름을 도저히 참을 수 없던 나는 의례히 습관처럼 대답했다. 아주 미세한 그녀의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한 것도 같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못 들은 척 햇살이 쏟아내려 지는 창문 밖 도시의 풍경만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우리 서로는 말이 없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이별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10명 중 9명은,
이별의 순간을 직감
결혼 정보회사 듀오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혼남녀 미혼남녀 98.7%는 이별 전 사랑이 끝나감을 직감했고, 98.4%의 응답자는 직감한 대로 이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연인에 대한 나의 애정이 식었다 느낀 순간'에 대한 질문에 남성 응답자 12.9%는 '연락 혹은 만남을 해야 해서 할 때'를 1위로 꼽았고 '데이트 날 만남이 피곤하고, 집으로 빨리 들어가고 싶을 때'와 '친구들과의 만남이 더 즐겁고 편할 때'가 각 10.4%로 뒤를 이었으며, '앞으로의 인생 계획에 집중해야 함을 느낄 때' 9.0%, '권태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노력하고 싶지는 않을 때' 8.4% 순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경우는 '보고 싶다는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를 때'를 1위로 꼽았고 '권태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노력하고 싶지는 않을 때' 11.7%, '연락 혹은 만남을 해야 해서 할 때' 9.7%가 뒤를 이었으며, '상대와 함께하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을 때'와 '밥 먹는 모습이 너무 현실적으로 보일 때'가 각 8.4%로 연인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고 대답했다.
모든 설문의 문항 하나하나가 마치 꼭꼭 숨겨왔던 지난 내 연애 역사의 한 치부를 들킨 것처럼, 격하게 공감이 되는 내용들인데, 특히 개인적으로는 '데이트 날 만남이 피곤하고, 집으로 빨리 들어가고 싶을 때'를 자주 느끼기 시작할 때부터가 내겐 가장 큰 이별 직감의 순간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언제나 무지성 이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외치게 된다.
아~! 나를 진짜 편하게 해주는
그런 여자 어디 없나???
오늘 소개할 백스무번째 숨은 명곡은 2005년 발표된 W 2집 Where the Story Ends에 수록된 W 작사/작곡/편곡의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라는 노래이다.
https://brunch.co.kr/@bynue/171
그룹 W는 지난 숨은 명곡 백아홉번째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룹 KONA의 배영준을 중심으로 한재원, 김상훈이 KONA 5집에서 함께 했던 강한 음악적 유대감을 바탕이 된, 2000년 결성한 일렉트로니카 그룹으로 원래는 이번 숨은 명곡이 수록된 그들의 2집 앨범 제목과도 같은 'Where the Story Ends'가 그들의 그룹 이름이었지만, 이를 짧게 줄인 'W'로 바꾸어 사용하게 된다.
K-Pop을 대표하는
일렉트로니카 그룹
이들은 '진정한 우리만의 음악을 해보자!'라는 신념으로 2001년 그들의 첫 번째 앨범인 1집 안내섬광(眼內閃光)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앨범의 높은 실험성과 음악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다만 이 앨범은 그들의 한발 내딛게 될 K-Pop 일렉트로니카로의 여정이 시작된 결과물로 그들이 쌓아왔던 음악적 잠재성은 2집에 폭발하게 되어 대중성과 음악성 모두를 잡은 일렉트로니카 명반 중의 명반으로 손꼽히게 된다.
2008년에는 OST 작업을 통해 함께 작업하게 되었던 보컬 Whale을 영입하여 'W&Whale'이라는 그룹으로 활동하며 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상을 받았고, 2012년부터는 영화 국가대표의 OST로도 유명한 러브홀릭의 'Butterfly'의 보컬 장은아와 함께 'W&JAS'이라는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다시 그룹 'W'로 돌아와 'Desire', 2017년에는 'I Am'을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 소개할 숨은 명곡은 그 제목도 재미난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라는 노래인데, 이 노래의 모티브가 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일본 단편 애니메이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유튜브 검색 등으로 찾을 수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이를 감상하는 걸 강력 추천한다.
실제 고양이를 키우는 많은 집사들 사이에선 레전드 애니메이션으로 정평이 나있는 굉장히 유명한 5분짜리 짧은 영화인데 '이 영상을 보면 고양이를 키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는 명언이 나돌 정도로 한 때 한참을 유행했던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숨 가쁘게 살아가는 우리 내 일상 하나하나를 고양이의 시선으로 묘사된 입꼬리가 슬쩍 올라갈 미소를 만드는 재미난 가사와 푸근한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본 애니메이션의 이름난 '덕후'이자 대부분의 가사를 쓴다고 알려진 리더 '배영준'의 그럴듯한 상상력에 나도 모를 큰 공감과 박수를 보내게 된다.
눈치 없이 너를
조를 수 없었네
심플하지만 조금은 몽환적으로도 느껴지는 일렉기타의 연주가 시작되고 이윽고 독특한 보컬 음색을 지닌 W의 '김상훈'의 노래가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멤버 '김상훈'이 들려주는 노래는 흔히 대중적으로 정의되는 훌륭한 보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만이 가지고 있는 적당히 비음 섞인 탁성이 주는 매력은 중독성 있는 또 다른 '유니크'함을 전달해 주기에 다시 뒤를 돌아보고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느덧 함께하기 시작한 드럼과 베이스를 따라 노래의 가사를 듣고 있다 보면, 자신의 밥도 까맣게 까먹은, 마치 전쟁을 치른 듯 밤새 일에 치여 지친 주인을 눈치 없이 조르지 않는, 힘들지만 그가 천천히 만들어가는 그의 꿈과 그 열정을 가슴깊이 응원하는 작고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떠오른다.
그리고 무슨 동화 속 마법의 한 장면과도 같이, 노래가 서서히 끝나갈 즈음이면 수십 년 전 무덤덤한 표정과 건조한 말투로 '아냐 요즘 일이 많아 피곤해서 그래'라고 말하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희미하기만 했던 그녀의 얼굴이 하나둘씩 선명해질 때쯤,
문득 그녀가 내게 건넨 마지막 말이 기억났다.
나는 너를 믿을께,
나는 널 기다릴께
왜 그때는 몰랐을까....
이 노래는 참 나쁜 노래다.
작사 : W
작곡 : W
편곡 : W
노래 : W
이 맘 때쯤 너는 항상 조금씩 말이 없어지네
날 위한 생선 한 조각도 너는 잊어버린 걸까?
밤새 펜촉 긁는 소리 좁은 방 온통 어지러운
스크린 톤 차마 눈치 없이 너를 조를 수 없었네
비 내리는 아침 어느새 가득 웅크린 채 잠든 너의 곁에 가만히 난 누웠네
반짝 빛나던 네 손끝에 흘러가는 꿈 한 자락
나는 너를 믿을께 나는 널 기다릴께
차가운 전화벨 소리 도대체 무슨 얘긴걸까?
천천히 아주 오랫동안 너는 울고만 있었네
비 내리는 아침 어느새 가득 웅크린 채 잠든 너의 곁에 가만히 난 누웠네
반짝 빛나던 네 손끝에 흘러가는 꿈 한 자락
나는 너를 믿을께 나는 널 기다릴께 이대로
높게 귀를 세우고 동그란 나의 눈으로
변함없이 착하게 나는 널 기다릴게 이제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