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어, 김형석 : Ac+E III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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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저 결혼해요!
원래 나이가 들면 잠도 많이 없어진다고들 하던데, 도대체 왜 나는 점점 잠이 많아지고 피곤해 지기만 하는 건지, 그리고 이게 좋은 징후인지 혹은 나쁜 것인지 알길조차 없지만, 어쨌든 두꺼워지는 눈꺼풀을 이내 참지 못하고 스르르 잠이 들기 시작한 어느 늦은 밤, 후배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다.
에고... 그렇구나!
축하해~!
다소 안쓰러운 마음에 위로 반, 축하 반의 마음으로 말을 건넸다. 그가 꽤 오랜 시간 동안 고백해 왔던 그녀로부터 얼마나 많이 모질고 거친 거절로 가슴 아파해왔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롭게 찾아온 인연과 새로운 출발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아니에요, 형!
그 친구가 승낙했어요!
잠이 화들짝 깨 흐리멍텅해져 가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시간이 휘리릭 지난 탓에 충분히 서로의 안부나 일상을 자주 이야기하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당연히 새로운 사람을 만났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후배를 단호히 거절했던 그녀가 연인이라 해도 깜짝 놀랄 텐데, 결혼을 승낙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 이 결정이 그녀의 일시적 감정변화로부터 나온 우발적 결정일까 봐 걱정되기까지 했다.
후배는 그녀의 매몰찬 거절에도 그녀가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꾸준히 그녀에게 호의를 거듭 베풀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도 잘 먹히지 않자, 후배는 손 편지를 쓰기 시작해서 전달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받지도 않았던 그녀의 손에 무작정 편지를 쥐어주고 도망 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을까, 후배가 기대한 드라마틱한 그녀 태도의 변화가 없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마지막 장문의 편지를 건넸는데, 그로부터 며칠째 아무런 연락이 없자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접기로 했다고 한다.
진심이
느껴졌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오후, 후배는 회사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꺼내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의 장문의 문자 한 통을 받게 되었는데, 그동안 후배가 전달한 편지를 포함해 마지막 편지까지 천천히 모두 읽은 그녀는 서툴지만 진심을 담은 그의 단어 하나하나에서 진심이 느껴졌다고 했고, 둘은 한 달의 찐한 연애 끝에 인생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흐뭇함을 입가에 가득 머금은 채 전화를 끊은 나는, 마치 먼 옛날 동화 속 해피엔딩에서나 나올 법한 즐겁고 신나는 후배의 이야기에 오늘 소개할 노래가 듣고 싶어 졌는데, 바로 오늘 소개할 조규찬 작사/김형석 작곡/편곡의 김형석 앨범에 조트리오가 함께 피처링한 백서른한번째 숨은 명곡인 '몰랐어'이다.
자타공인 K-Pop 최고
작곡가, 프로듀서 김형석.
1990년~2000년의 K-Pop 중흥기를 이끌었던, 그에게 항상 붙여지는 '최고', '레전드'와 같은 수식어가 일상화되어 버린 대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김형석.
그는 흔히 이 시기에 활동한 또 다른 레전드 작곡가들인 '유재하, 신재홍, 심상원'과 함께 '한양대 작곡가 4인방'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당시 선배였던 '유재하'의 노래와 음악을 듣고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아 클래식에서 대중음악으로의 전향을 결심하게 된다.
그는 졸업 후 1989년,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K-Pop 발라드의 명곡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레전드 가수 '인순이'의 9집 앨범에 실린 '이별 여행'의 작사/작곡가로 K-Pop에 데뷔하게 된다. 참고로 이 앨범에는 그가 만든 재즈/블루스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또 다른 명곡 '샹들리제' 또한 실려있다.
이후, 그는 1989년 김광석 1집과 1991년 2집에 실린 '너에게', '사랑이라는 이유로' 등을 작곡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1992년 김건모 1집에 실린 '첫인상'이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하면서 스타 작곡가로 자기매김을 하기 시작한다.
그가 훌륭한 보컬리스트라고 평가하긴 힘들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잔잔하고도 담담한 음색이 꽤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1991년 동아기획에서 만든 우리 노래전시회 4집에 자신이 직접 부른 자작곡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를 발표하며 K-Pop 가수로서의 데뷔도 하게 된다.
그는 1997년 자신이 전체 프로듀싱을 맡고 객원 보컬과 함께하는 프로젝트 앨범인 Ac+E 1집을 발매하게 되는데, 이는 Acoustic + Electronic을 줄인 말로 2002년까지 총 3개의 앨범이 발매되었다.
첫 번째 앨범은 그가 이제껏 작곡한 노래들을 새롭게 편곡한 리메이크 앨범이라면, 두 번째 앨범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OST의 형태, 그리고 오늘 소개할 숨은 명곡이 수록되어 있는 세 번째 앨범에서는 당시 많은 신인가수와 함께 호흡을 맞춘 새로운 곡들을 주로 발표했다.
오늘 소개할 백서른한번째 숨은 명곡은 2002년에 발매된 김형석 프로젝트 앨범인 Ac+E III에 수록되어 있는 조규찬 작사, 김형석 작곡/편곡, 조트리오가 노래한 '몰랐어'라는 노래이다.
사실 이 곡은 지난 숨은 명곡 열여섯 번째에서 소개한 '모델'이 수록되어 있는 조트리오 1집에 수록되어 있는 노래를 재수록한 곡이지만, 일부 뒷부분의 색소폰 솔로를 줄인 버전으로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다.
https://brunch.co.kr/@bynue/67
김형석, 그리고 Ac+E 프로젝트 앨범과 조트리오와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굉장히 깊은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Ac+E 1집에 수록된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조트리오가 리메이크해 크게 히트하였고, 이전까지는 단지 이 앨범과 노래를 위한 조규만, 조규천, 조규찬 삼 형제의 형식적 이름이었다면, 이를 계기로 '조트리오'라는 공식적인 그룹을 결정하고 본격적 활동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부분 신인가수들이 함께한 Ac+E 3집에서의 그들의 노래 수록은 Ac+E의 시작과 끝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큰 의미가 있다.
변치 않는 남자의 사랑은 언젠가
여인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는 믿음이
나하고는 상관없던걸
대부분 이런 류의 해피앤딩 노래는 경쾌하고 발랄한 보사노바나 포크적 느낌이 강한 경우가 꽤 많은데, 이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펑키하고 도시적 퓨전 느낌의 빠르고 세련된 시티팝의 진수를 보여 준다.
특히 너무나도 현실적이기에 말 한마디 하나하나가 가슴속으로 푹푹 들어오는 이야기를 담은 조규찬의 멋진 가사 또한 이 노래를 즐기게 되는 커다란 동기를 가져다주는데, 마치 그게 내 이야기처럼 혹은 얼마 전 후배의 이야기를 대신 말해 주는 듯 느껴지기까지 한다.
특히나 시티팝에서 많이 사용되는 멋진 Brass의 쓰임새는 단순한 흥겨움을 넘어 김형석이 왜 훌륭한 편곡자이기도 한지 증명해 주는데, '말해 뭐 해' 조트리오만의 범접할 수 없는 코러스와 화음이 곁들여져 마치 하나의 찐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 듣는 내내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특히 중간 간주나 마지막에 현란한 솔로 연주로 귀를 즐겁게 해주는 색소폰, 사람의 목소리가 가장 천상의 악기라고도 이야기할 만큼 다채로운 스캣 솔로 등을 하나하나 음악적으로 짚어보며 감상하는 것도 꽤 재미나다.
우리는 후배가 전해 준 것과 같은 동화 속 러브스토리에 흥분하고 또 열광하게 되긴 하지만, 실제 맞닥뜨린 세상 속 현실은 참 매정하기 그지없다.
'세상은 왜 이리 나에게만 가혹할까?'
하지만, 세상을 향한 나의 굳은 믿음은 언젠가 그 힘을 발휘한다는 걸, 그리고 어쩌면 상식이 정하는 대로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얼마 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뒤흔들었던 사건의 마지막을 보면서 가슴 저리게 다시 느끼게 되었다.
이제야 진정한
대한민국 봄의 따뜻함이 느껴지네!
작사 : 조규찬
작곡 : 김형석
편곡 : 김형석
노래 : 조트리오
강한 부정은 긍정이란 성립될 수 없는 등식을 내걸고서
차갑게 날 대하는 너임에도 되려 난 설레기만 했었지
싫다는 말의 의미를 왜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느냐고
꽃을 앞세운 열 번에 프로포즈를 다시 넌 거절했지
몰랐어 난 몰랐던 거야 몰랐어
변치 않는 남자의 사랑은 언젠가 여인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는 믿음이 나하고는 상관없던걸
밤새 마신 술에 머리가 부서질 듯 아파옴을 느끼고 있어
내가 그렇게 모자란 사람이었나 한숨은 더 깊어가고
전화가 왔길래 받았어 그런데 지금 난 내 귀를 못 믿겠어
밤새 꽃을 보며 날 사랑함을 깨달았단 너의 얘기
몰랐어 난 몰랐던 거야 몰랐어
변치 않는 남자의 사랑은 언젠간 여인의 마음을
돌리고 만다는 믿음이 바로 내 얘기라는 걸
그 오랜 희비의 엇갈림들도 이제는 더 달콤하게 느껴져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