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숨은 K-Pop 명곡 II, 백서른둘

눈사람, 정지찬 : 1집 One Man - 2006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왜 나는 안되는 건데요?


한참동안 말이 없던 그녀는 몇번이나 망설이다가 무슨 영화 속에서 나올 법한, 애절함과 원망스러움이 가득 묻어있는 말을 내게 건넸다.


갑작스레 '훅' 들어온 그녀의 질문에 당혹감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사실 난 이런 상황이 언젠가는 내게 올것이라 지레 짐작하고는 있었다. 그녀는 몇번이고 내게 그 누구라도 알 수 밖에 없는 이성적 호의와 관심을 표현해 왔지만, 난 애써 모른척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싫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좋지도 않았다.


나이가 나보다 많이 어려서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언제나 해맑은 그녀의 에너지가 좋았고 그냥 좋은 오빠 동생으로 지내고 싶었다.


우린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
미안해.

비겁했지만, 그렇다고 꼭 틀리다고도 말할 수 없는 이유를 댔고 그녀는 애써 따져 묻지 않았다. 아마 예상했던 대답이라 생각했을 지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후 마치 '그 정도의 나이 차이'는 나의 가식과 변명일 뿐이라고 복수 하듯, 우리 함께 어울리던 내 친한 친구와 사귀게 되었다.


난 이성에게 고백을 해본 경험이 많지 않다.


예전에 몇번 다른 포스팅에 언급하기도 했지만, 첫 고백에 대한 다소 쓰라린 상처로 인해 거절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돌이켜 보면 대부분의 내 연애의 시발점은 모두 상대방의 호의나 고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뭐 엄청 매력적이라거나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상처받고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은 내 이기적인 마음과 모자란 용기를 감추고 싶었을 뿐이다.



어떻게 마음을 받아야 할 지
그 방법을 잊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마음이 점점 확실해져 가는 걸 느낄 때,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은 도데체 어떤 건지, 그리고 이게 맞는 건지,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받아야 하는 건지, 모든게 흐리멍텅하고 또 우유부단해져 결국 그 끈을 놓치게 되고 만다.


'혼자가 편한거야'라며 나 자신을 위로하고 또 정신 승리해 보지만, 그 커다란 사랑이 내겐 너무 과분했단 걸 깨닿게 될 때, 그 때의 거만하고 졸렬했던 내 자신을 비웃을 수 밖게 없게 된다.


그리고 이젠 내 곁에서 사라진 그녀를 다시 찾을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내 바보스러운 얼굴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내 현실과 내 나이와 같은 핑계꺼리를 하나 둘씩 찾게 되면서...


오늘 소개할 백서른두번째 K-Pop 숨은 명곡은 2006년 발표된 앨범 One Man에 수록된 '눈사람'이라는 노래로 이미 숨은 명곡 시리즈의 여섯번째(자화상의 어쩌란 말인지), 서른여섯번째(HUE의 힘내요)에서 소개한 정지찬이 작사/작곡/편곡/노래 모두를 소화했다.


IE001801991_STD.jpg
IE001801988_STD.jpg
Y_UZBjBQXn7aPex8xFfwHYBCEaMLiICZFf_CfVsIkVaI2lkkhWvWs9GJ4hGjYpoz1mzWuWKOty-quuPxsTx8mkifr2TCK_JzpsJhm_BoI5355ct8bEZjJvDDTBx0ySPFn4kAuDS9hG0WuIL0Ejt4Fw.png
IE001322483_STD.jpg
정지찬의 활동 모습 사진


https://brunch.co.kr/@bynue/22


https://brunch.co.kr/@bynue/93


정지찬은 앞서 소개했던 자화상의 해체 이 후 HUE라는 예명으로 솔로앨범을 발표한 뒤, 이소라, 이승환과 같은 Top 가수들의 프로듀서와 작곡가로 참여하였고 2006년 자신의 이름으로 발매하는 첫번째 앨범인 'One Man'을 선보이게 된다.


141035_1_f.jpg
141035_1_b.jpg
정지찬 1집 'One Man'의 앨범 표지


참고로 One Man라는 앨범명은 아마 K-Pop 레전드 앨범이자 최초로 모든 노래의 작사/작곡/편곡/연주/노래를 시도했던 김수철의 'One Man Band' 앨범 이름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은데, 이 앨범에서 정지찬도 모든 노래를 혼자 만들고 연주했고 또 노래하는 열정을 쏟아 냈다.


정지찬은 이 앨범 이후 2007년 김현철, 심현보, 이한철과 함께 4인조 프로젝트 그룹인 '주식회사'를 결성해 활동했고 2008년에는 EBS TV ‘세계테마기행 - 뮤지션 정지찬이 만난 러시아, 9천288km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에 직접 큐레이터로 참여하며 함께했던 여행에 관련된 음악을 새로운 싱글앨범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같은 유재하 음악가요제 대상 출신이자 12살 차이가 나는 후배 박원과 함께 '원모어 찬스'라는 듀오로 그의 음악 인생 중 대중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팀 내의 음악적 갈등을 겪고 아쉽게도 2015년 해체, 지금까지 여전히 훌륭한 프로듀서로 많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87815_1_f.jpg
1900x1900-000000-80-0-0.jpg
724304_1_f.jpg
202305_1_f.jpg
정지찬, 원모어 찬스, 주식회사의 앨범 표지들


일렉트로닉 피아노의 잔잔한 선율과 스트링 그리고 묵묵히 깔리는 어쿠스틱 기타까지 어쩌면 2000년대를 상장하는 웰메이드 발라드 공식과 같은 전주가 시작되고 이전 HUE의 '힘내요'를 소개할 때도 그랬지만, 그가 그토록 존경했던 유재하와 가장 닮은 목소리, 비음과 탁성이 적절히 묻어나는 '정지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커져간 나의 모습이 어느덧 시간의 덧없음과 무관심에 점점 그 존재가 희미해져 버리는, 한번 쯤 우리 모두가 겪었던 그 사랑 이야기를 감성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시간이 가면 난 사라져요
나는 점점 녹아만 가요


그 때, 그 아이의 마음도 그랬을 테다.


언제가 녹아 없어질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기에, 어쩌면 더 애처로운 눈으로 나의 마음이 자신에게 스쳐 닿기를 기다리고 또 갈망했을지 모르고 그녀가 그렇게 사라진 후에야 나는 그 존재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깨닿게 되는 어리석음의 되돌이표를 반복하며 살아왔을 테다.


지난 몇일 새 어느새 성큼 우리의 곁으로 다가온 봄의 기운과 거리에 활짝 핀 벚꽃.

그리고 오늘 이상하리만큼 전국에 쏟아진 눈.


https://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248783#rs


혹시 나도 모르는 내 곁에, 서서히 사라지기 싫어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나의 눈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눈사람

정지찬, 1집 One Man - 2006


작사 : 정지찬

작곡 : 정지찬

편곡 : 정지찬

노래 : 정지찬


나는 그대 만나기 전엔 그저 하얀 눈이었죠

작은 눈이 점점 더 커져가듯이 나의 사랑도 커져만 가죠


그대가 그려준 눈으로 나는 이제 볼 수가 있죠

온 세상은 하얗게 눈부시군요 그대가 만든 나의 사랑처럼


눈사람 그대가 만들어놓은 나는 눈사람 언제나 그대 곁에 머물고 싶은

그대 사랑으로 언제나 그대 앞에 하얗게 서있는 사람


시간이 가면 난 사라져요 나는 점점 녹아만 가요

온 세상이 하얗게 사라져가도 우리의 기억만은 녹지 않기를


눈사람 그대가 만들어놓은 나는 눈사람 언제나 그대 곁에 머물고 싶은

그대 사랑으로 언제나 그대 앞에 하얗게 서있는 사람


나는 점점 사라지고~ 나의 몸은 녹아 가도


눈사람 그대가 만들어놓은 나는 눈사람 언제나 그대 곁에 머물고 싶은

그대 사랑으로 언제나 그대 앞에 하얗게 서있는 사람


모든 것이 녹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그대 사람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t3Ge-eoi_bs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숨은 K-Pop 명곡 II, 백서른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