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미선이 : 1집 Drifting - 1998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본 숨은 명곡은 바이누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bynue) 댓글과 이메일(bynue@daum.net)을 통해 여러 곡을 소개해 주신 엄마밴드(motherband@hanmail.net)님의 요청 리스트 중에 원래 소개하고자 했던 이 노래와는 다른 곡이지만, K-Pop 명반이라고 불리는 '미선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가 있어 겸사겸사 순서를 조금 앞당겨 소개하고자 합니다.
비록 다른 곡이지만 멋진 곡 소개해 주신 엄마밴드님께 너무나도 큰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왜...
용서가 안돼?
몇 년 전 그러니까 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하는 이야기다.
이혼을 결정한 친구는 X-Wife와 순간순간마다 변화되는 서로의 감정싸움에 위태로운 순간이 많아서 자칫 소송으로 이어질 뻔했던 위기를 겨우 넘기고 법원의 최종 결정을 받아 법적으로 이혼이 성립된 그날, 어쨌든 수고했다며 함께 술에 진탕 쩔어 수십 년 전 20대 때나 해봤을 고주망태가 된 그에게, 난 이미 사망해 버린 혀를 겨우 움직여 말을 꺼냈다.
사실 무슨 답을 했는지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다만 취기가 온몸에 퍼진 지 오래였지만, 씩씩 거리며 붉어져 있는 그의 얼굴에 서려있는 섬뜩한 눈빛에서, 그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얼마만큼인지 지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아마 용서가 안될 거다.
X-Wife는 나름 강남에서 잘 나가던 미용사였는데 운영하던 미용실 직원과 바람이 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는 그래도 가정을 지키고자 수많은 설득과 다짐을 받기도 했지만, 이미 단단히 뭉쳐져 있는 그들을 갈라놓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어제,
X-Wife랑 밥 먹었어.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요즘은 좀 어떻냐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한동안 밀려오는 배신감과 억울함에 밤잠을 설치던 그는 이젠 너무나도 맘이 편해졌고, 그녀의 앞날과 행복을 빌어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내게 건넸다.
사실 당시 내겐 그 모습이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에게도 만병통치약인 '시간'이 그를 치유하고 또 깨닫게 해 줬던 것이다.
결국 나만 망가지고 있다는 걸.
한국 모던락의
레전드 그룹이자 기념비적 앨범
오늘 소개할 백서른세번째 숨은 명곡은 1998년 발매된 그룹 '미선이'의 첫 번째 앨범에 수록되어 이별의 순간부터 치유의 시간까지를 담백하게 노래한 '시간'이라는 노래다.
그룹 미선이는 '루시드폴'이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조윤석이 베이스 이준관, 드러머 김정현과 함께 1997년 만든 그룹으로 앨범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려던 시기에 멤버 이준관은 밴드를 떠나게 되어 조윤석, 김정현 두 명이 함께 1집을 제작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노래들은 조윤석이 만들고 연주하고 또 노래했기에 그의 음악적 역량을 의심 없이 보여준 앨범이기도 하다.
참고로 조윤석은 1993년 제5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하였지만, 그해 아쉽게도 기념앨범이 제작되지 못했기에 대중에게 알려지지는 못했다.
음악을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그는 여러 가요제 등을 통해 문을 두드려 보기도 하지만 모두 입상에 실패하게 되고, 홍대 인디음악과 그 다양성의 문화를 알게 된 그가 후배들과 함께 만든 그룹이 오늘 소개할 바로 '미선이'이며 처음에는 캠퍼스 그룹으로 대학공연을 주로 다니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1998년 4월 옴니버스 앨범 'Pirate Radio(해적방송)'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홍대 인디 클럽을 중심으로 당시에도 희귀하리만큼 드물었던 모던락, 그것도 잔잔한 어쿠스틱 위주의 팝과 포크를 곁들인 독특하고 몽환적인 음악을 들려준 그들은 그해 10월 첫 번째 앨범 'Drifting'을 발매하게 되는데 이 앨범에 실린 시대적 아픔을 담은 노래 '송시'와 더불어 이후 K-Pop 모던락에 길이 남을 명반으로 회자된다.
아쉽지만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멤버들의 군입대와 더불어 그룹은 자연스레 해체가 되고, 조윤석은 루시드폴이란 예명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10년이 지난 2008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서 Re-Union을 한 그들의 완전체 모습을 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워낙 유명한 앨범이다 보니,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의구심, 즉 '과연 숨은 명곡이 맞는지'에 대해 수많은 자가 질문과 대답을 반복했지만,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모던락 장르는 소수의 아티스트만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지게 되는 현실이기에 앨범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오늘의 숨은 명곡이자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곡, 어쩌면 '미선이'시절에 지금의 루시드 폴과 가장 가깝다고도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선택했다.
몽환적인 사운드와 차분하지만 마음을 움켜쥐는 멜로디가 참 아름답기만 한 기타 연주로 시작되는 노래는 그냥 연주만으로 이렇게 마무리되어도 좋을 것만 같은 충만한 감성을 전해 준다.
아직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조윤석의 보컬은 기타의 아름다운 아르페지오와 함께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사랑의 기운이 모두 사라진 채 경멸과 아픔으로 가득한 두 눈을 담은 두 남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이 노래의 큰 매력 중의 하나는 마치 예전 LP판을 빨리 돌릴 때 들리는 것만 같은, 약간은 늘어지는 코러스의 효과를 낸 것인데, 의도적이었던 그렇지 않았든 간에 마치 시간의 태엽을 빨리 감듯, 아픈 과거로부터 이젠 빨리 벗어나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그래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죽을 것만 같았던 그때,
그 순간순간의 상처도
온몸이 부르르 떨리던,
그녀를 향한 미움도
미련 없이, 의미 없이.
먼 훗날 나도,
마치 친구의 마음처럼 그럴 수 있을까?
작사 : 조윤석
작곡 : 조윤석
편곡 : 조윤석
노래 : 미선이
눈물이 흐르는 소리 얇게 퍼져만 가네
얼굴을 파묻은 채로 흘러가는 내 사랑
두려운 그대 앞에도 아직 남아 있지만
자꾸만 굳어져가는 내 기억의 표정
내 위로 떨어져 내린 촛농 같은 시간들
멀리서 나를 부르네 날아가야 한다고
계절은 항상 이렇게 아픔 속에 오는가
한없이 늘어만 가네 내 나이의 상처
이젠 헤어졌으니 나를 이해해 줄까
사랑 없이 미움 없이
나를 좋아했다면 나를 용서하겠지
미련 없이 의미 없이
무심한 마음의 소리 어서 흘러가라고
조금 더 힘들어질 땐 편해질 수 있다고
내게는 무거웠었지 포기했던 시간들
아직 나를 기억할까 그리움 같은 그대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