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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nue Jun 22. 2022

길을 잃은 솔로 여행,
나주 풍천장어가 준 교훈

[전라남도 11] 전라남도 솔로 여행 : DAY 5, 넷


여행지는 목포, 진도를 중심으로 해남, 신안, 광주, 나주 등 전라남도의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여행기는 2021년 4월 말~5월 초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과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여행하였습니다.



24 | 솔로 여행, 길을 잃다.


사실, 우리나라의 땅끝을 가보자는 게 미리 생각해 둔 이번 여행의 마지막 계획이었다. 그다음은 그때 가서 결정하기로 한 것인데, 때론 무계획이 만들어 내는 묘한 긴장감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설사 너무나도 변덕스러운 마음의 변화로 여행 스케줄이 꼬이거나 뒤죽박죽이 되더라도 가끔은 대책 없이 저지르고 보는 게 ‘솔로 여행’의 매력 중 하나일 테니…


그런데, 대흥사를 나오면서부터 난 길을 잃었다.


대흥사를 걸어 나오며 다음 여행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난 길을 잃은 것이다.


이건 꽤나 아이러니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대흥사가 준 위로와 치유로 받은 '마음의 평온'이 오히려 여행의 동기부여나 에너지를 빼앗아 갔다고 할까?


어쨌든 논리적으로 설명이 쉽지는 않지만, 어쩌면 난 이번 여행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갈증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나니 길을 잃은 것이다.


'훗.. 사람 참 간사하네.'


별 수없는 초라한 인간이라는 생각에 어쭙잖은 미소를 머금은 나는 터벅터벅 대흥사를 걸어 나오며, 다음 여행지가 어디가 될지 고민했다.


'이대로 동쪽으로 이동하여 아직 가보지 못한 완도, 장흥을 여행할까?'

'아님 좋아하는 여행지 중에 하나인 하동으로 가볼까?'

'여기 해남, 강진을 좀 더 여행할까?'

'목포로 돌아가 아쉬웠던 맛집 탐방을 더 할까?'

'올라가는 길에 군산을 여행해 볼까?'


'아니면, 여행을 여기서 끝마쳐야 하나?'


솔로 여행의 가장 큰 위기는
갈 곳을 잃어 두려울 때다.


주차장에 도착한 나는 뒷좌석에 무심히 던져놓은 해남 고구마빵 봉지를 발견했다.

'아니 저걸 누가 다 먹는다고 한 박스씩이나 샀던 거지?' 


애꿎은 고구마빵에게 나의 우유부단함과 결정장애에 대한 화풀이를 하다 보니 문득 며칠 전 목포 떡갈비와 광주 육전을 물물교환(?) 했던 나주에 있는 친구가 생각났다. 


https://brunch.co.kr/@bynue/43


'어디냐?'

'집. 재택근무~'


'뭐 하는데?'

'재택근무라니까. 넌 뭐하는데?'


'어... 난.. 해남'

'이제 어디로 갈 건데?'


'몰라 임마'

'일루 와.. 장어나 먹자'


'어?? 장어? 급 땡기는데?? 가면 재워주냐?'

'아 놔 맨날 그 소리. 전화해!'


난 여행의 새로운 길,
그리고 마지막 여정을 찾은 듯했다.


좀 더 솔직해보자면 해남 고구마빵을 본 순간 난 친구가 보고 싶어 졌던 것도 같다. 그리고 이미 마음은 나주로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5 | 언제나 든든한 이유, 나주 풍천장어 


'어디로 가면 돼?'


사실 '장어가 급 땡긴다'는 말은 본능적으로 날 감추기 위해 튀어나온 거짓말이었다. 어쩌면 '장어나 먹자'던 친구의 말도 흔들리는 내 목소리에서 찾은 그의 멋스러운 배려였을 수도 있다.


친구란 그런 거다.
알면서도 모른 척, 모르면서도 다 아는 척...


대흥사에서 나주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는 꽤나 긴 거리였지만, 한결 가벼워진 마음이었던지 나주 현지인 친구가 강추하는 맛집 '불수성 풍천장어'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풍천장어의 '풍천'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을 일반적으로 일컫는 말이라는 설과 전라남도 선운산 밑 특정 지역 이름이라는 설이 있는데, 근래에는 일반명사화된 '풍천'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혹시 풍천장어가 지역 이름이 아니라라고 으시대는 사람이 있거들랑, 지역이라는 설도 있다고 맞장구를 쳐도 무방하다. 확실한 진실은 저 산너머 어디엔가 있을 테니...


'왔냐?'


시크함이 원래 체질인 듯, 아님 우리만의 컨셉인 듯, 친구의 무뚝뚝한 인사에 고개를 잠깐 끄덕이며 우린 입구에서부터 기분 좋은 구이 냄새가 퍼져 나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장어집으로 들어갔다. 


현지인이 강추하는 나주 맛집 불수성 풍천장어, 입구부터 맛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장어는 생각보다 조리하는 사람, 조리 방법에 따라 미묘하지만 굉장히 큰 차이가 있는 맛을 제공해 주는 음식 중에 하나다. 우선 말할 것도 없는 장어의 신선함은 물론이고, 작은 것은 흐물흐물하고 큰 것은 느끼하거나 비리기에 적당한 크기의 장어를 골라 조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손질과 굽는 방법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고기의 식감이 살기도 하고, 흙 냄새와 같은 불호의 요소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도 하며, 어떤 재료로 불을 피우는지에 따라 향이나 풍미가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장어는 지방질이 많은 식재료이기에, 이를 적절히 해소해 줄 곁들임 음식이나 소스 등도 장어를 진정으로 즐기기에 간과할 수 없는 것들 이기도 하다.


안으로 들어선 식당 안의 풍경은 여느 일반 식당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내부였지만, 저녁 식사하기엔 이른 시간인 지금부터 꼭꼭 사람들로 차있는 테이블들을 보니 더 이상의 큰 의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친구는 이곳이 너무 유명해져 예약 없이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도 했다.


굉장한 맛과 풍미를 전해 줬던 불수성 풍천장어, 생각만 해도 군침이 그리고 벌써부터 기운 나고 든든해진 느낌이다.

모든 구이류의 음식은 특별한 재료의 특성이 있지 않는 한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소금구이가 정석인데 당연히 장어구이에도 이 공식은 해당한다. 친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슬쩍 내 얼굴을 한번 보더니, 소금구이 2인분을 주문했다.


단순하고 꾸밈이 없었지만 입맛을 돋구는데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던 부추무침, 그리고 굉장히 공을 들여 만든듯한 담백한 장어 소스, 이곳 장어가 맛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닫게 해 준 질 좋은 참숯이 차려졌다.


구이는 굽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오랫동안 동일한 화력을 제공해 주는 숯의 역할도 꽤나 중요한데, 은은하게 올라오는 참숯의 향이 느껴지는 걸 보니 난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미 끝났네,
맛이 없을 수가 없겠네!


이곳 불수성 풍천장어의 두툼한 장어 한 점을 천천히 입에 넣으면, 입안 가득 쫀득한 장어의 육질과 육즙이 함께 터져 즐겁다. 그리고 서서히 입안을 맴도는 참숯향을 느끼다가 보면 어느새 입안의 장어는 사라지고 만다.


'괜찮냐? 어때.. 든든하지?'


친구는 무심히 '툭' 그렇게 내게 말을 던졌다.

장어는 언제 먹어도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 음식이다.
마치 오래된 친구와도 같이...


식사를 마친 우리는 간단히 커피 한잔을 하러 나주 남평 강변에 있는 카페 이스텔로 이동했는데, 이곳은 낮에 오면 지석강과 무등산이 보이는 멋진 풍경을 보며 차 한잔을 할 수 있는 멋진 곳이다.


따뜻한 강릉 테사로사 원두커피와 해남 피낭시에에서 공수해온 고구마빵을 친구와 함께 먹으니, 이제야 오늘 복잡했었던 마음이 모두 풀리는 듯했고 이번 여행의 마무리가 이렇게 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고구마빵 주려고 온 거야?'

'아니 임마 니가 장어 먹자고 해서 온거지..'


'머... 고구마빵 맛나네..'


나주 남평 강변에 위치한 카페 이스텔은 지석강과 무등산이 함께 보이는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친구의 집에 도착한 나는 나를 위해 곱게 준비해 놓은 이부자리를 발견했는데, 그 순간 친구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 울컥해졌다. 이는 5성급 호텔보다 아름다웠고 편안했으며 내겐 평생 누려보지 못할 너무나도 큰 사치와도 같았던 황홀한 순간이었다.


야! 수건 색 좀 비슷하게 맞추지...
색깔이 안 맞잖아!


나가 임마!!!!!!!

그렇게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은 친구와 함께 저물고 있었다.

친구가 준비해준 5성급 호텔보다 훌륭했던 이부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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