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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nue Jun 27. 2022

나주 보리굴비,
아름다운 남도여행의 마침표.

[전라남도 12] 전라남도 솔로 여행 : DAY 6, 하나


여행지는 목포, 진도를 중심으로 해남, 신안, 광주, 나주 등 전라남도의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여행기는 2021년 4월 말~5월 초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과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여행하였습니다.



26 |  남도여행의 마지막, 보리굴비


'나 간다~ 이따 전화할께~!'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출근을 위해 준비하던 친구는 아직 방안에 널브러져 일어날 기색이 없던 내게 짧은 한마디를 던지며 문을 나섰다. 문이 '쿵'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린 후에도 한참 동안, 난 따뜻한 이불속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아마도 어젯밤 늦게까지 잠을 설친 이유도 있을 듯한데, 막상 오늘이 이번 전라남도 여행의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뭔가 아쉽기도, 허전하기도 한 기분이 가슴을 짓누르는 듯했다.


어쨌든 눈은 떴지만 아직 일어나지는 않은, 누구나 공감할 법한 뒹굴뒹굴 '아침 좀비'의 상태를 천천히 즐기다가, 이마저도 지겨워져 견딜수 없을 때쯤 출근한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점심 뭐 할래?'

'너 사무실 다시 들어가야 하니 머.. 간단한 거 먹자'


'끝내주는 보리굴비 어때?'

'!!!!.... 사랑한다~!'


순간 난, 마치 싱싱한 먹이를 발견한 좀비가 두 눈이 뒤집혀 각성한 것 마냥, 벌떡 이부자리를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이럴 때면 본능이 몸을 지배한다는 게 진리인 듯도 싶다.


'아~! 보리굴비~!'


이름만 들어도 입안이 흥건해지는 황홀함을 느낄 수 있는, 이곳 전라남도를 대표할 수 있는 이만한 음식이 또 있을까? 순간 허전함에 소침해져 있던 마음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끝내주는 현지 보리굴비 맛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내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보리굴비를 이야기하기 전에, 굴비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굴비는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 '조기'를 염장하여 바닷바람에 말린 식품이다. 이렇게 염장하여 말린 굴비를 오랫동안 저장하기 위해서 뒤주에 통보리를 넣어 함께 보관했는데, 통보리의 껍질은 굴비 기름을 흡수하는 데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존이 가능하도록 해 주었다.


이렇게 통보리에 오랜 시간 보관된 굴비를 통칭 '보리굴비'라 불리게 되었고, 보리와 함께 숙성된 굴비는 특유의 풍미와 감칠맛이 더해져 오래전부터 임금에게 진상했었던 귀한 음식 중 하나로 알려져 왔다.


친구가 정성스레 마련해준 침구를 정리하고, 마지막 짐을 챙긴 나는 친구를 픽업하여 나주에서도 현지인들만 안다는 맛집, 그 이름도 재미있는 '삐삐'로 이동했다.


이름도 굉장히 특이한 나주 현지 맛집 '삐삐'에서는 맛집의 대명사와 같은 단일 메뉴 '굴비백반' 한 가지 음식만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 '삐삐'는 평일 점심 아주 적은 시간동안만 영업하는 곳인데다가, 근래에는 외지 관광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서두르지 않으면 아예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나주 현지 맛집이다. 사실 간판만 보면 맛집과는 거리가 느껴져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입구 디자인이지만, 가게를 들어서면서부터 보이는 유명인들의 싸인들이 이 집의 위상을 알게 해 준다.


물론 식당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유명인들의 흔적이 모든 맛집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숫자가 진도의 '신호등 식당'처럼 어마어마하게 많거나, 진정성 있는 글귀가 적힌 내용이라면 아직은 판단할 수 없는 미지의 맛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주기도 한다.


꾸밈없는 식당 안 내부의 모습은 평범했지만,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우린 자리에 앉아 이곳 식당에서 제공하는 유일한 메뉴 '굴비백반' 2인분을 주문했다.


단일 메뉴는
맛집의 대명사와도 같다.


오랜 기간 숙성된 굴비의 풍미와 너무나도 매력적인 특유의 기름진 맛이 기가 막히게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보기만 해도 그 맛이 혀끝에서 느껴질 것만 같은 깔끔하고 정성스럽게 조리된 9첩의 기본 반찬들이 차려지고, 드디어 영롱한 보리굴비를 맞이했다.


원래의 보리굴비는 염장된 굴비를 쪄서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삐삐 식당은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굴비를 일일이 손으로 찢어 먹기 좋게 손질해 제공한다. 아마도 '1인분에 1마리'의 국룰이 적용되는 듯한 양으로 보이는데, 굴비의 크기가 꽤 튼실해서 성인 남자가 먹기에도 나쁘지 않은 양이다.


적당한 염장으로 먹기 좋게 간이 밴 보리굴비는 굽기의 장인이 마법을 부린 듯이 '겉은 바삭 속은 촉촉'의 행복한 식감을 전달해 주는데, 오랜 기간 숙성된 굴비의 풍미와 너무나도 매력적인 특유의 기름진 맛이 기가 막히게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그 아무리 수십년째 집나가 방황하고 있던 입맛이라도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보리굴비의 맛.


흔히 보리굴비를 입맛 없을 때 먹는 '특효약' 음식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은은한 녹차 국물에 밥을 말아 목 넘김의 준비가 끝난 깔끔한 흰쌀밥, 그리고 그 위에 보리굴비 한 점을 올려 먹으면 그 아무리 수십 년째 집 나가 방황하고 있던 입맛이라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집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애호박 찌개'는 찌게라기보다는 국에 가까웠고, 보통의 남도의 맛에 비해 굉장히 삼삼한 맛이었는데, 보리굴비의 맛을 해치지 않는 수준이어서 세심한 식당의 배려와 고민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남도의 마지막 맛으로도 충분할 듯해


아마도 친구는 여행의 마지막,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나의 에너지를 가득 채워주고 싶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친구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고도 남았다.



27 |  아쉬움은 또 다른 시작이 된다.


시원한 녹차밥에 잘 구워진 생선살을 올려 먹는다는 것은 굳이 보리굴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한 그릇 뚝딱'인 음식이기에 식사를 마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쉽냐?'


친구는 식당을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 내게 물었다.


'응..... 근데 아쉬워야 또 오지 않겠어?'

'그래, 또와라...  제발 미리 좀 연락 좀 하고!'


'건강해라, 이제 좀 여친도 사귀고 임마'

'미친놈...너나 잘해 임마'


우린 이십여 년 전 그때나, 중년의 나이가 된 지금이나 농담과 진담이 섞인 묘한 아쉬움을 서로에게 투닥거리며 짧은 인사말과 함께 헤어졌다.


친구는 마지막으로 이곳 나주에서 꼭 방문해야 할 커피집이 있다며 '헤일로 로스터스'를 들려 맛있는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서울로 올라가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자기의 인생 커피집, TOP3안에 드는 멋진 곳이라고도 했다.


헤일로 로스터스는 나주의 지역 브랜드 커피인데, 해외와 국내 로스팅 대회를 두루 석권한 이곳의 주인장께서 자신 있게 오픈한 가게이다. 본점과 2호점은 그리 멀지 않은 블록 내에 위치해 있어 어디를 방문해도 좋다.


친구는 2호점을 '스타벅스' 바로 옆에 낼 정도로 커피 맛에 자부심이 높은 가게라며, 추천과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스타벅스' 바로 옆에 낼 정도로 커피 맛에 자부심이 높은 가게인 헤일로로스터즈 2호점

모던한 인테리어와 예쁜 액자들이 눈을 사로잡는 카페 안에 들어서면 이곳 헤일로 로스터스만의 커다란 메뉴판을 볼 수 있는데, 그 이름도 예쁜 시부(시간의 일부분), 운도(구름이 지나가는 길)로 구분되는 원두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뭔가 고르기 힘든 결정장애가 있다면 친절한 직원분께서 자신에게 맞는 커피를 고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니, 굳이 커피 전문가인 듯 코스프레를 할 필요도 없다.


커피 중에서도 적당한 산미를 좋아하는 나는 따뜻한 시부 원두의 커피와 군침이 돌아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던 피낭시에들을 종류별로 골라 테이크 아웃하였다.


헤일로로스터즈의 커피는, 친구의 말대로 인생 커피라 할 만큼, 그리고 TOP3안에 든다는 것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질만큼의 훌륭한 풍미와 맛을 전해줬다. 아마도 언젠가 이 근처를 다시 지나게 된다면 꼭 들려 보다 여유롭게 이 아름다운 커피를 음미하고 싶을 정도의 맛이라고 평하고 싶다.


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커피 진짜 제대론데? 고맙다 친구야'

'다음엔 같이 먹자, 조심히 올라가'


완벽한 여행이란 없다.


모든 여행엔 조금씩의 아쉬움이 남기 마련인데, 이런 아쉬움에 미련을 두지 말자. 굳이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먼 훗날 언젠가 문득 우리의 마음속에서 슬며시 자라나 또 다른 심장의 두근거림으로 이곳에 다시 머무르도록 할 테니...




그동안 [전라남도 솔로 여행]에 보여주신
과분한 관심과 사랑에 행복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이전 이야기)

https://brunch.co.kr/@bynue/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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