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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마지막 퍼즐

by 뵤뵤




의사로부터 마음의 준비라는 말을 들은 지 6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이제 쾌유라는 말은 입에 담기조차 버겁다. 상태가 좋아질 거라고 희망을 품었던 때가 아득하기만 하다. 손 놓고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볼 수밖에 없으니 그야말로 속수무책인 나날들.


마음의 준비라니.


순순히 기다리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마음의 준비를 잘하는 거지. 준비를 하면 막상 그날이 왔을 때 흘릴 눈물의 양이 덜어지려나? 아버님의 빈자리로 느낄 허전함이 줄어든다는 걸까? 산산조각으로 무너질 마음이 원형을 보전한 채 귀퉁이만 바스러질 수 있는 걸까?


일상의 틈새를 비집고 떠오르는 의문들은 해답을 구하지 못하고 물음표만 더할 뿐, 여전히 내 머릿속을 떠다닌다. 우리는 대비를 아무리 단단히 한다 한들 결코 가벼워질 수 없는 슬픔을 저마다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그렇게 성큼성큼 다가올 마지막 날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40여 년 동안 주 6일을 새벽같이 출근해서 퇴근하는 삶. 가족에 대한 짙은 사랑과 책임감이 아니라면 결코 해내기 어려웠을 일이다. 근면, 성실, 정직, 사랑. 누구나 말은 쉽게 해도 변함없이 실행하긴 어려운 가치들. 아버님은 그 가치를 평생에 걸쳐 몸소 보여주셨다.


일흔을 눈앞에 두고서야 퇴직했네. 그 후에도 다시 오라고 계속 연락이 왔었어. 40년 동안 한결같이 한 직장을 다니는 게 어디 쉽나. 안 쉽지. 그만했으면 충분해. 이제는 쉬어야지. 그렇게 뜯어말려도 틈틈이 사다 놓은 낚싯대와 도구들이 한가득이야. 죄다 짱 박혀있던 것들인데 낚시할 시간이 생겼다고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렇게 좋아하던 낚시터에서 직접 낚은 생선들을 횟감, 구이용, 매운탕거리로 종류도 다양하게 먹여주곤 하셨다. 민어구이의 뼈를 발라내고 보들보들한 흰 살을 손녀의 밥숟갈에 얹어 주던 때는, 시아버지가 직접 떠준 회를 넙죽넙죽 받아먹을 때는, 미처 몰랐다. 앞으로 몇 번을 더 낚시를 하러 가실지, 몇 번을 더 잡아주신 생선을 먹게 될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냥 앞으로도 쭉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철이 없었다.


2개월 남짓 짧디 짧게 은퇴 생활을 맛보고 난 뒤, 위암 선고를 받으셨다. 그 후로 5년 동안 아버님은 암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완전히 떼어놓은 줄로 알고 기뻐했던 순간도 잠깐, 다시 찾아온 암은 지독스럽게도 손 데기 어려운 복막에 자리 잡았다.


아주버님과 남편은 교대로 고향 집과 병원을 오가며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님의 항암 치료를 도왔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신 뒤로도 간병의 형태만 달라졌을 뿐 그 정성은 변함이 없다.


가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서 못 들어간다는 데 마침 딱 자리가 났데. 지금 빨리 입원하라고 알려주더라. 의사가 그러니까, 그러라고 사인했지. 이제 어쩌겠어. 도리가 없다는데.


호스피스의 의미에 대해 무지했다. 현재를 바쁘게 살아가는 누구라도, 본인에게 닥치지 않으면 적당히 모른 체하고 넘기기 마련이니까 나 역시 다름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눈앞에 닥친 현실일 뿐이다. 아버님의 호스피스 입원은 절망, 슬픔, 착잡함을 넘어서 한 단어로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경을 안겨주었다.








마약성 진통제를 맞으신지 불과 한 달이다. 수십 번의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빈번했던 고통의 순간에 펜타닐의 도움 없이 잘도 버티셨다. 고생스러웠던 삶을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신앙으로 인내하셨기 때문인지 고통을 느끼는 역치가 높은 걸까. 고작 14년을 아버님과 함께 한 막내며느리는 더 깊은 속내에 접근하지 못하고 들어온 이야기를 통해서 짐작만 해볼 따름이다.


섬망이 찾아왔다. 매일 새벽 기도문을 외우시던 아버님의 총명이 빛을 잃어간다. 심연에 가라앉았던 기억과 단어들이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 제멋대로 튀어올라 머릿속을 마구 어지럽히나 보다. 당연한 수순처럼 사람과 호칭을 연결하는 인지능력도 제 기능을 못하기 시작했다. 어제까진 아내와 아들만은 잊지 않고 꼭 알아본다 했다가 오늘이 되자 아들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한다. 느리게 되뇌던 며느리와 손주들의 이름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을 때가 허다하다. 며칠 전에 뵙고 온 아버님은 나를 큰 손주로 여기고 키가 많이 자랐다고 하셨다.


울지 말아야지 결심하고 들어선 병실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사진 찍듯이 꼭꼭 아버님을 눈에 새겼다. 거목이 야위었다. 어깨가 뻐근해지도록 양팔을 벌려도 한 아름에 둘레를 재기 힘들 거 같았던 굵고 큰 나무. 아버님의 존재감은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이제는 너무나 가녀리고 앙상해서 꽉 붙잡았다간 산산이 부서질 것만 같다.


작은 애기라고 부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눈을 맞추더라도 나를 알아보는지 알 수 없다.




끊어진다.
마지막 퍼즐.




섬망이 의식을 지배하려던 초기에, 한숨처럼 내뱉어진 말.


지켜보신 어머님의 전화로, 남편의 말로 두 차례를 건너 전해 들을 뿐이었지만, 나는 울음을 와락 터뜨리고 말았다. 마치 내가 기억하는 아버님, 입원하기 전에 영상통화로 인사했던 아버님과는 영영 작별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매일 나빠지고 있으므로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내일이 오늘과 같다고 장담할 수 없으므로, 지금이 최선의 상태라고 여겨야 한다.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그토록 놓고 싶지 않았던 아버님의 마지막 퍼즐은 무엇이었을지. 지금쯤 아버님의 무의식 중 어느 곳에 자리하고 있을지.









근래에 자꾸만 눈물이 차오른다. 어처구니없이 불쑥 샘솟아서 당황스럽다.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윤색된 과거인가 싶어서 포장지를 벗겨내고, 필터를 빼고 보아도, 난 사랑받은 며느리가 맞다. 그 사랑이 참 따뜻하고 감사했다. 예고 없는 눈물은 앞으로도 그 사랑이 무진장 그립고 고마울 것이란 예고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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