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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Nov 26. 2019

인사왕이 다시 왕좌의 자리를 얻기위해

인사하기 위해 이웃을 기웃거리다.

                                                                                                                                                                                                                                                                                                                                                                                                                                                                                                                      

나는 어려서부터 인사를 아주 잘했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친할머니 손에 나와 동생이 크면서도 동네 사람들에게 꼬박꼬박 인사를 하며 늘 칭찬을 받았다.

딱히 잘하는 게 없고 눈에 띄는 외모나 머리도 아니니 그거라도 잘해보자라는 심산으로 어려서부터 인사에 단련되었던 것 같다.

사춘기 시절에는 인사의 횟수가 좀 줄긴 했으나 여전히 난 주위 사람에게 인사 잘하는 사람이었다.

중학교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치 사회생활 유경험자와 같은 멘트를 날리며 등교할 때마다 '좋은 아침!'을 외쳤고 반 친구들은 대부분 시큰둥하거나 웃었지만 나는 아침인사의 할당량을 꼭 지켰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때도 지금처럼 관계의 기본이 인사라고 생각했고,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는 아주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사회생활의 짬을 먹고 을에서 갑이 되자 인사를 하기보다는 받는 사람이 되었다.

후임이 생기며, 선배님에서 대리님이 되고, 팀원으로 소속감이 확실해지면서 직속 상사가 아니면 타 부서 사람들에게 딱히 인사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타 부서에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기도 했고, 단단한 팀워크를 보여주며 타 부서에 밀리지 않는 액션을 취하는 것은 뻣뻣이 고개를 들고 다니는 것이라 생각하며 묘하게 기분 좋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식당을 찾아 주문을 하고, 밥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빼면 식당에서 밥을 먹는 시간은 고작 45분 남짓인 점심시간에는 계산대 앞에서 '영수증 드릴까요'를 묻는 직원에게 시선을 마주하기보다는 무미건조한 대답으로 '아뇨' 한마디만 했고 어쩌다 영수증을 출력하는 직원 앞에서는 카드만 얌체처럼 빼들었다.

커피까지 사들고 사무실로 복귀하겠다는 다급한 마음에 인사할 겨를도 없어졌다.





출산 후에는 딱히 인사를 나누는 동네 주민이 없어 인사하는 횟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옆집 윗집에 누가 사는지 몰랐고, 아이가 어렸으니 층간소음을 걱정하며 아래층에 미리 인사하러 갈 이유가 없었다.

아이가 없을 때에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시스템에 길들여져 아파트 경비 아저씨도 청소 아줌마의 얼굴도 잘 마주치지 못했다.

택배 아저씨의 전화번호도 저장해놓고 택배문자가 오면 집 앞에 부탁한다는 사전 인사 외에는 이웃이라는 범주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인사 왕>이었던 나는 그렇게 인사할 기회를 잊고 지냈다.

솔직히 그 기회라는 게 사람들과 마주쳐야 생기는 것인데, 마주치더라도 엘리베이터 안의 적막이 싫어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그저 내 생활에만 익숙해져 있었고 오히려 엘리베이터 안의 '웃으며 이웃에게 인사해요'라는 안내문을 보면 좀 어색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가 3살쯤이었을까.

새로 이사를 한 아파트에서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를 만나거나 이웃이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다시 인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가 4살이 되면서부터는 낯가림이 심했기 때문에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인사를 했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과 자주 바뀌던 청소 아줌마에게도, 경비실 아저씨와 택배 아저씨,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던 몇몇의 이웃들에게도 말이다.

그리하여 청소 아줌마가 딸이 보내준 해외여행을 마지막으로 청소일을 끝내기로 했다는 이야기나 경비아저씨로부터 불법(?) 쓰레기 투기를 한 이웃들의 푸념을 듣거나 관리실 직원들에게 아파트 단지에 열린 감을 덤으로 더 받는 일도 생겼다.

버스나 택시를 타도 인사를 했다.

공간이 작은 마을버스나 택시에서는 내릴 때도 인사를 했다.

누군가는 받아주거나 대부분 안 받기도 했지만, 그들도 내가 잠시 인사를 멈춘 시절처럼 어떤 시기를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삐지거나 개의치 않았다.

아이에게 인사 잘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그 목표만 도달하면 되었다.





잊고 있던 내 습성을 다시 찾게 된 것도 타인에 대한 나의 감정보다는 목표지향적인 인사를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원래 인사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지랖도 너무 좋아 얼굴만 트면 꽤나 친분이 있는 사람처럼 안부를 묻곤 하는 그럼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호탕하다고 했고, 에너지가 넘친다고 자주 얘기했다.

몇몇은 내가 부담스러웠을지는 모르나, 가식 없이 상대를 대했고 가벼운 농담을 꺼내며 큰 재미랄 게 없는 일상에서 잠깐의 호흡을 나누고 싶었던, 그게 나라는 사람이었다.

우연히 보게 된 교회 자동차 광고판처럼 <인사만 잘해도 밥은 먹는다>라는 말이 인사를 잊고 지냈던 시절에 송곳처럼 다가왔다.

갑자기 인사를 하려니까 나 자신한테 너무 호들갑스러운 건 아닌가 자문하기도 했지만, 노력한 대가로 내 마음이 더 풍성해졌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한 동안 인사와 담쌓고 살았던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하고 이야기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별거 아닌 인사에 훈훈함과 어색함을 동시에 겪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어색함이 친근함이 되고, 친근함이 이웃이라는 둘레 안에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그래서 엘리베이터 안의 '웃으며 이웃에게 인사해요'라는 안내문을 보더라도 뻘쭘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노력한다.

관계의 시작이 기분 좋은 인사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인사를 하기 위해 이웃을 기웃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째 살고 있는 지금의 아파트에서 인사를 트지 않는 이웃도 있다.

그들이 나를 알아볼까 하는 억지스러운 생각과 1년 안에 이사 예정인 나의 상황들로 합의점을 찾아 하며 억지를 부려본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인사를 했는데 대면 대면한 사람이라서 인사를 멈췄다.

좋은 게 좋은 거지만 오며 가며 마주칠 이웃이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는데 나도 인사할 맛이 나야 말이지.





@bypha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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