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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Nov 28. 2019

그녀들은 나를 모른다

기억력이 사라지면 좋은 것들

                                                                                                                                                               

매주 월요일, 나는 우리 집 건너편의 아파트 노인정에 그림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하러 간다.

재작년부터 도서관에서 그림책 지도사 수업 과정을 듣고 2,3급 자격증을 취득 후,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그림책 동아리를 결성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지금까지 봉사로 이어져 매주 어르신들을 만난다.

도서관에서는 지역사회 일환으로 이 노인정을 관리하는 중이었고, 마침 선배맘들의 종이접기 수업이 2년 동안 진행되다 멈춘 상태라 호기로운 우리 동아리가 '우리도 한번 해보자'하며 팔을 걷어붙였다.




모임에서는 '누구 엄마'대신 '쌤' 이나 '선생님'으로 호칭을 부르는데 나는 그 외에 도서관에서 만난 모든 엄마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

누구 엄마로 부르면 동네 모임 같이 너무 편해질 것 같고, 누구누구 씨를 부르면 상사가 부르는 것 같아 듣는 나도 어색하다.

도서관에서 만난 엄마들은 모두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엄마들이라고 나 스스로 생각하며 선생님을 외치면 다들 좋아한다.

간혹, 우리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는 나의 소신을 사람들 앞에서 입 밖으로 꺼내면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수긍하는 표정이 보인다.

사실은 나도 그런 여자로 보이길 바라는 것이고, 동네 주민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나만의 방식이기도 하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어색하더니, 노인정 봉사를 갈 때 내가 메인 선생님이 되면 아이에게 "오늘 엄마가 선생님이야"하며 들떠 말하기도 했다.




매주 만나는 어르신들 중 고 연령자는 95세 할머님이고, 가장 나이가 어리신 분은 83세로 평균 연령이 꽤나 높은 그룹이다.

84세의 할아버지는 내가 왜 할아버지냐, 본인은 학생이다라며 성화를 내시는데 나이가 들어도 세월을 받아들이는 게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들은 아닌가 보다 생각한다.

책을 읽어드리고 난 뒤에는 간단한 독후 활동을 하는데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어르신들에게는 5~6세용의 만들기나 그리기가 적합하다는 걸 깨달았다.





노인정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정문으로 나오면 마주하는 건너편 아파트이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다 동네 주민분들이다.

어느 여름쯤,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데 몇 발자국 앞에서 한  할머니가 헉헉 거리며 내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가쁘고 거친 숨소리와 다소 둔한 걸음걸이가 눈에 들어오자 노인정에서 뵀던 분인걸 알았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인사를 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누.. 구.. 시더라.."

"아.. 저 월요일마다 책 읽어드리러 가잖아요!"

".... 어... 그래요! 내가 이렇게 못 알아본다오. 허허허 인사해줘서 고마워요"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까 그럴 수 있었겠다 싶었는데 며칠 전 다른 할머님을 또 만났다.

"할머니! 어디 가세요"

"어?... 뉘... 시.. 요?"

"저 책 읽어드리잖아요. 월요일에 뵀는데"

"... 나 지금 안과 가요. 약 받으러.."

"아.. 그러세요? 살펴가세요"

"응 그래요. 인사해줘서 고마워요"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동안, 내내 얼굴을 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몇 번인가 맛깔나게 차려주신 밥상 앞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기도 했는데 왜 못 알아보실까? 혹시 치매 초기는 아니시겠지? 그러면 알려드려야 하나? 누구에게 알려드리지? 하는 여러 생각들로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었다.

그 다음 주 봉사를 하러 갔을 때도 언제나와 같이 환하게 반겨주시는 할머니들을 뵈면서, 모든 것을 다 지우고 사는 게 아니라면 잠깐씩 어떤 지점에서는 기억력을 리셋시키는 능력을 갖고 계신 게 아닐까 생각했다.

당신이 귀가 안 들린다는 사실을 잊고 자식 앞에서 자식 욕을 할 때, 그래서 왜 그런 말 하시냐고 여쭈면 모르쇠로 일관하는 우리 외할머니의 억지스러운 기억력과는 다른 능력이라면 늘 그렇게 새로운 사람 대하듯 반갑게 인사하면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올해는 노인정과 연계하여 재료비를 담당하던 도서관이 리뉴얼될 예정이라 봉사활동은 12월이면 끝이 난다.

나는 얼마 전 모임에서 도서관과 상관없이 계속하고 싶은 사람들은 봉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매주 만나는 어르신들이 무심코 털어놓는 옛날이야기, 살아온 이야기들이 재미있어 실은 내가 더 이야기보따리를 열어본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대가 없이 퍼주는 게 진짜 봉사라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도서관으로부터 점수를 받고 있었다.

봉사시간에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 추려졌고 잠정적으로 4명이 남아 내년도 이끌어갈 예정이다.

나를 못 알아보시는 몇몇의 당신들 덕분에 나는 매주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봉사활동에 임한다.

여전히 서투르지만 처음이라 생각하며 이해해주실 테고, 매주 새로운 선생님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그녀들도 나를 기다리겠지?





@bypha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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