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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Dec 11. 2019

마흔이라도 좋아

지금 가지고 있는 걸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내가 마흔이래."


친구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며 내가 먼저 화두를 던진다.

80년도생인 몇몇 친구들은 빠른 81생인 나의 마흔 타령에 별 다른 감흥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마흔의 다리를 혼자 건너버린 친구들 앞에서 마흔 타령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다.

사는 모습들이 다르고, 키우는 아이들의 연령대도 달라지면서, 이제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란 연애 버라이어티나 드라마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씁쓸했다.

어쩌면 나 혼자 유난스럽게도 마흔 타령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은 늘 그래 왔던 것 같다. 감격과 감흥에 민감해하면서 조금의 기쁨과 희망에도 너무 크게 반응하며 살아왔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에는 무뎠다는 점과 부정적인 것은 형편없는 메뉴를 먹을 때도 리액션이 컸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추천하는 맛집은 친구들이 안 가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마흔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기분이 정말 이상해진다.

19살에서 20살 때, 그리고 29살에서 30살에는 내가 의도하던 대로 내 삶에서는 큰 이슈가 있었다.

무리해서라도 고집 피우지 않았더라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 같은 일들을 내가 결정하고, 욕심부려서 결국엔 얻어냈던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들과 경험이 내 삶에서 큰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까 그때는 그 나이의 내가 주인공이었다.

39살에서 40살이 되려는 지금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지금 무리해서라도 얻을 수 있는 일들이 뭐가 있을까?

기껏해야 운전면허를 등록한다던지, 방송댄스를 춰보고 싶다는 욕구에 문화강좌를 기웃거리는 정도가 전부다.

이마저도 '현실'을 생각하면 방송댄스는 직업과 연결되는 배움이 아니라 돈만 쓰는 '취미'라는 것을 알기에 머뭇거리게 된다.

1박 2일 여행 가는 건 상상으로만 생각해봤고, 어쩌다 주말에 신랑이 자유시간을 줘도 점심은 무얼 먹이면 좋을지, 아이의 마스크는 어디에 두었는지를  묻는 전화로 흐름은 깨지기 일수다.





아니다.

나는 카페에 가서 나를 위해 6천 원짜리 커피도 마실수 있고, 그러다 카페 분위기와 사장님의 친절함에 기분이 살아나 베이커리 메뉴를 추가로 주문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다 읽지도 못하는 책을 여러 권 빌려와 목차를 겨우 넘겨놓고도 죄책감이나 시간에 쫓겨 억지스러운 독서를 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집안일은 매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남편이 욕하지 않고, 어느 날은 무작정 걷고 싶어 동네를 하릴없이 배회하는 사색적인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조금 기뻐진다.

사색적이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이라는 형용사를 함께 나열하고 보니 내가 조금 괜찮아 보인다.

포장이 주는 힘이 큰 까닭이다.




마흔이 두 번째 스무 살이라는 말이 있다는 걸 몰랐다.

최지우 주연의 드라마 제목이었다는 것도 새삼 알았고, 마흔 파이브로 활동을 시작하는 개가수들의 타이들 곡이 두 번째 스무 살이라는 것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굿즈로 받은 다이어리의 2020의 숫자와 패스트푸드 점의 40주년 포스터가 나와 연결된 고리 같았다.

두 번째 스무 살, 조금 억지스럽긴 해도 스무 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기대가 불혹이라는 단어보다는 더 좋았다.

마흔 하면 늘 불혹의 나이라는 것을 쇄놰당했는데 나는 그 단어가 그냥 싫었다.

그냥 늙은 단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근 아이의 감정코칭을 다룬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걸 알았다.

말로만 듣던 전두엽이 우선순위를 결정하거나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을 해내는데, 사람에 따라 전두엽은 30대가 되어도 완성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글을 읽고 6살 난 딸에게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내 에너지만 쏟아붓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자 화낼 일도 그냥 웃으며 넘어가게 되었다.

아직도 미성숙한 내 전두엽과 전두엽도 혹시 유전적인 요소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우리 아빠를 떠올리면 불혹이라는 단어에 너무 치를 떨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제는 뜬구름을 상상하는 대신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내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걸 알았다.

지금 당장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매일을 더욱 묵묵히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1년 후의 계획보다 1주일의 계획에 더 신경 써야 하고, 내일보다 오늘을 더 기쁘게 살아야 내일을 맞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루 세끼 밥을 잘 챙겨 먹고 뒤척임 없이 푹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도 알았다.

깨달음의 순간이 타인이 아닌 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고려하면 이런 마흔의 시작도 나쁘지 않다.

여전히 나는 수줍음에 볼이 붉어지고 사소한 일에도 격한 기쁨과 과도한 리액션으로 살길 희망한다.

20대의 몸매로 돌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것보다는 내 선에서 지키기 쉬운 것들을 하고, 새로운 것들을 하기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간다.

대단히 큰 결심을 해야 이룰 수 있는 일보다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안정적이고 무난한 일들을 하는 것이 마흔 살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매일 처리해야 하는 일들의 개수를 줄이고, 마흔부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룰 수 있는 꿈 리스트를 적어보기로 한다.

아직 미성숙한 내 전두엽을 개발하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두 번째 스무 살에 나는 어떤 일에 욕심을 부릴 수 있을까 하는 설렘도 추가해본다.





@bypha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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