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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Dec 13. 2019

in 서울이 뭐길래

서울 살기 의지 없는 내게 들어온 딴지

                                                                                                     

믿었던 언니에게까지 배신을 당했다.

공부 잘하는 딸을 둔 친한 언니에게 내 친구들의 '서울 찬양'을 이야기했더니 묵직한 한방이 되돌아온다.

"음.. 나도 막내 동생네로 주소 옮겨서 애 학교 보내볼까 생각 중이야. 학교나 학원도 여기보다는 낫겠지"

큰 사교육 없이 6학년이 된 아이를 키우며 자신만의 육아 철학을 지켜 온 언니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책 육아의 중요성과 엄마가 함께 공부하며 아이를 제대로 키우자'를 모토로 삼은 언니였는데, 내 육아의 롤모델인 언니가 나에게 배신감을 안겨주다니.

이쯤 되니 서울에 발 담글 의지가 전혀 없는 내가 무지하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년부터 이사 가고 싶었던 마음을 겨우내 진정시키고 있던 찰나, 최근 남편의 회사 이전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경기도에 살고 있는 내가 다시 경기도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사를 가는 게 맞는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서울이었다면 결정이 쉬웠을까? 여기를 벗어나 조금 더 북적북적한 곳으로 가길 원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이사계획까지는 약 1년 정도 남은 시점. 두 명의 친구는 내게 무조건 in 서울로 가라고 했다.

아이의 초등학교 진학문제도 그렇고, 학군도 거기보다 나을 테고 사람들이 변두리 서울이라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있는 거라며 한번 떠나서는 다시 서울로 들어오기 힘들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었다.




동네 맘들과의 모임에서 인 서울에 관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꺼냈더니 지방 토박이였던 한 엄마가 방학 때면 자신도 친구들과 기차표 끊어 서울 구경했던 이야기를 해준다.

나도 고등학교 때 오렌지족이 궁금해서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구경하러 간 적이 있었다.

잡지에서만 보던 명품 로고가 즐비한 패션의 거리, 수입 문화와 처음 보는 수많은 외제차를 현실로 만나고는 로망보다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이후 낑깡족이 활기를 띄자 오렌지족이란, 내가 현실에선 쉽게 볼 수 있는 종족들이 아닌가 보다 하고는 더 이상 궁금증 해하지 않았다.

로데오의 부작용으로는 루이뷔통 짭퉁 가방을 남대문에서 산 것에 이어 이후 버버리와 프라다까지 섭렵했으나 B급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성장과정 대부분의 시절을 서울 근교나 서울에서 자랐고 첫 사회생활을 압구정동에서 시작했다.

패션이라는 업종의 특성상 강남 일대에 사무실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내가 강남에서 생활하고 자란 사람은 아니지만, 곁다리로 강남스타일을 즐기며 미혼의 시절을 보냈다. (B급 명품의 아련한 기억 탓일까.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진짜 명품 소비에 맛을 알던 원조 낑깡족의 내가 떠오른다.)

서울에 살 때에는 택시가 쉬웠고 차만 안 밀리면 내가 원하는 거리까지는 3만 원 이내로는 웬만큼은 다녔다.

마지막 회사에서 회식하고 현재 살고 있는 집까지 택시를 탄 적이 있었는데 할증 요금까지 더해지다 보니 5만 원 가까이 나와 근처에 살던 동료와 '이 정도면 양호하네요'하며 택시비를 나눠냈던 기억이 있다.

씁쓸하다. 회식비를 지원해주지 않았던 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다음날 커피를 참아야 했다는 사실이.




이태원이나 홍대를 내 손바닥 보듯 다닌 건 아니었지만, 지하철 노선은 자연스럽게 외우게 되었고 결혼 후 이왕이면 역과 연결된 백화점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편을 선호하게 되었다.

출산 직후에도 잠깐 일을 했기 때문에 주말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육아와 일 사이에 균형을 맞춘답시고 나는 열심히 서울에 갔다.

육아에 전념하고 동네 엄마들과의 교류가 생기면서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보다는 다음 주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집에서 남편과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가 커가고 이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누구를 만나러 간다는 채비가 세상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친구에서 가족으로 삶의 중심이 바뀌었기 때문일 테고, 각자의 삶이 다른 상황에서 무조건 서울 만남을 외치는 친구들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엔 우리 동네가 그냥 싫었다.

서울과 멀다는 이유가 가장 컸고, 동네에 백화점이나 시설이 좋은 대형마트가 없다는 것도 싫었다.

한참 불이 피어나는 시간에 "나 먼저 가야겠다"를 외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는 것도 너무 싫었다.

남들이 다 아는 핫플레이스나 바뀐 장소를 내가 알지 못하게 되면 뒤쳐지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싫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 동네에서 내가 살면서 얻는 것들이 참 많았다.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 백화점의 위치 덕분에 돈을 덜 쓰게 된 것, 핫플레이스와 명품 할인의 범주에서 벗어나 카드가 아닌 지갑에 맞는 소비를 하게 된 것, 도서관 VVIP가 된 것, (혼자 생각)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아, 강남 만남만을 외치며 우리 동네에는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친구도 정리했었지.

살다 보니 머무는 곳이 내 원래 고향인 것처럼 느껴지듯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일 거라고 생각이 든다.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교통은 조금 불편해도 주차대란이나 차 밀리는 곳 없이 여유로운 여기도 나는 괜찮아졌다. 원래 사람은 적응하기 나름 아닌가.




이사 가고 싶어 했는데 갑자기 이사 가기 싫어지려고 해서 그것 또한 걱정이다.

역세권 아파트는 아니지만 도세권(도서관)의 이름을 붙여가며 도서관 생활의 장점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데 말이다.

도서관은 내년 하반기 리뉴얼 예정이라 더 좋아질 테고, 신도시과 붙어있는 우리 동네는 낡고 오래되었지만 상권이나 맛집은 옆동네에서도 넘어올 정도로 있을 건 다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해서 이 작은 동네를 닳고 닳도록 걸어 다니고 있다.

육아 5년 차, 요새 이 동네가 정이 갈려고 한다.

그래서 큰일이다.

남편 회사와 집이 멀어 이사는 가야겠는데 초중고가 집 앞에 있고, 사교육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예민한 엄마들도 없고, 가성비가 너무 좋은 이 동네가 도서관까지 좋아진다고 하니 마음이 다시 또 울렁댄다.





이효리, 서울 서울 서울 (2017)


등 돌리며 멀리멀리 떠나왔지만 yeah

눈 감으면 다시 또 생각이 날까

그리움이 밀려올 땐 돌아보지만 yeah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아


서울 서울

서울 서울

서울 서울

서울 서울


또다시 나 너를 찾을까

아니 잊을까 아니 그리울까





글쎄, 나도 아직은 미지수다.

이효리의 노랫말처럼 내가 다시 서울을 찾게 될지, 잊을지, 그리울지 말이다.

그저 인싸가 되려고 발버둥 친 그때보다 아빠가 되어 나에게 집중하는 지금의 시간들이 충만하다고 해야 할까.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던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관계와 배려에 관심을 기울이고, 읽지 않았던 책들을 꺼내 드는 요즘이 참 즐겁다.

핫플레이스를 몰라도, 백화점이 없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문제는 그게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니라 내 마음이 소비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데에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루에 5번 운행하는 버스가 2시간마다 오는 시골에 살면서도 부모님의 표정은 말도 못 하게 달라졌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할 때 아빠와 엄마는 늘 일에 시달려있었고 미간의 주름은 깊게 파였다.

거기서는 영양크림도, 선크림도 잊고 살지만 피부가 더 생기 있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이 멀리멀리 떠나 살고 싶어 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bypha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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