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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Dec 17. 2019

아침의 포효

악랄하고 나쁜 것

                                                                                                                                                                                                                                                                                                  

마지막으로 마주하길 바랬다.

아니 마지막이길 원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도 나를 부르는 소리를 놓칠까 귀를 세웠다.

네가 나를 불렀다.

내가 너를 찾았다.

비릿하고도 혼란스러운 내, 익숙하게 받아들이던 많은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 생, 아니 오늘을 끝으로 절대 다시 만나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손을 잡았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회오리를 깊게 경험하고 나니 긴장했던 내 어깨가 편안히 내려앉는다.

어이가 없어 마지못해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래 이게 너였어.











그래 이게 너였다고.

지독한 커피, 라테.

아 괴롭다. 정말 울부짖고 싶다.

어제 아침에 먹은 라테 한잔에 내 하룻밤이 날아가 버렸다.

두 달 넘게 커피 끊기를 지속하고 있었다.

최근 카페에서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잡고 있던 끈을 놓아버렸다.

다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커피라는 주제로는 할 말이 너무 많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나는 믹스 커피를 27살이 되어서 처음 마셨다.

그 뒤로 믹스커피와 블랙커피도 모자라 더치커피와 고급 커피를 마시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서른 살, 일본에서의 긴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의 제안에 그곳에서 커피를 배우기도 했다.

왜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할 일도 없었고, 카페에 대한 로망이 있던 내가 커피를 배우면 뭐 하나라도 얻어가겠지 싶어 시작했다.

에스프레소 꼼빠냐에 도전해보기도 하고, 오픈 시간에 맞춰 혼자 내려마시는 진한 커피에 내 서른 살의 풍미도 깊어져만 갔다.

친구는 이민을 가면서 내가 그 카페를 맡아주길 원했지만 나는 다시 회사로 취직을 했다.




어렸을 때는 공부를 안 했으니 밤을 새우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일이 없었고, 무엇보다 내게 커피는 나쁜 음식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었기 때문에 찾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희귀종 대하듯 했고, 그때도 내 소신에 대해 흔들림이 없었다.

스타벅스 벤티만 마시던 내 오랜 친구는 내게 시트콤 여주인공의 말을 인용하며 커피맛도 모르는 게 어른인 척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네가 커피를 마시게 된다면 아메리카노는 반드시 핫으로 먹어야 진짜라고 귀띔해줬다.




스트레스의 서막이 시작된 어느 브랜드에서의 사회생활이 내게 믹스커피 폭주를 불러왔고 나는 정녕 커피맛을 몰랐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믹스커피를 내 몸에 쏟아부었다.

출근할 때, 미팅을 할 때도, 점심을 먹고 나서도, 야근을 할 때도 늘 마셨다.

에브리데이. 에브리 나잇. 오 마이 갓.

믹스커피는 코 끝이 시리도록 추운 날 마셔야 진짜 제맛이라 날씨와 커피를 믹스 매치하며 기분에 따라 다양한 커피를 즐겼다.

카페의 중심에서 핫초코를 외치던 나는 그렇게 만난 커피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을 애증의 관계로 살고 있다.




술도 못 마시는 내게 커피는 일종의 치유제 같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시고, 친구와 고민이 있을 때 맥주 500cc보다 더 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날 때 함께 했고, 혼자 있을 때도 내 곁에 늘 있었다.

눈 뜨면 커피부터 찾았고, 집중할 일이 있으면 의식처럼 커피를 먼저 사 왔다.

초록로고의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하는 커피는 나를 세련된 도시 여자처럼  보이게 해주는 것 같았다.

남들이 보던 말던 나 스스로에게 취할 수 있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큰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수단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잠깐 커피를 끊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정신이 맑았던 기억이 너무 또렷하고 상쾌한 기분을 느껴봤기 때문이다.

건강 탓도 있지만 카페인으로 인해 깊은 잠을 잘 수 없는 점, 그리고 중독으로부터 좀 벗어나고 싶었다.




내 인생의 모토를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이 건강한 삶으로 새긴 이후로는 더더욱 그랬다.

잠을 못 자게 되니 아침 시간이 날아가버리고, 비몽사몽 한 채로 다시 커피를 찾으면 헛헛한 생활이 계속 반복되었다.

커피는 내게 건강 그 이상의 것을 빼앗아 갔다.

시간이었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면 내게 시간을 가져갔다.

아침이 무너지고 남은 시간을 흘려보내기에 바쁜 일정으로 채웠다.

내 동생은 에스프레소를 음료수 마시듯이 마셔도 머리만 대면 잠만 잘 자던데 나는 달랐다.

그래서 끊어야만 했다. 조금 슬프더라도.




어젯밤에 역시나 잠들지 못했다.

3시에 잠을 청하고 다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잠이 들었는지 분별을 못한 채 6시가 못돼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이를 갈았다. 스트레칭을 하면서도 커피의 악랄함만을 생각했다.

내 소중한 잠을 빼앗아간 나쁜 것, 앞으로는 내 잠과 절대 바꾸지 않을 거야.

아침에 모임이 있지만 나는 너를 외면하고, 무시할 거야.

부드럽고 고소하고, 달달한 풍미가 느껴지는 너 따위한테 절대 흔들리지 않아.

아메리카노로 리필이 되지만 나는 절대 안 마신다. 안 마신다. 안 마신다. 마신다.

마신다. 마신다. 마신다.

커피에 대한 잡념을 잊기 위해 블라인드를 연다.

날씨가 흐리다. 다시 네가 생각난다.

너 때문에 진짜 짜증 난다.





@bypha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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