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될 사람’이 정해져 있는 일은 없다.
내가 은유 작가나, 이슬아 작가나, 김영하 작가같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품을 써내는
작가가 될 수 있는 확률은?
1%? 0.1%? 0.000000001%?
어쩌면 그보다 낮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확률 0%가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에 가능성 0%에 수렴하는 일은
없는 법이니까.
확률은 자주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든다.
확률은 설명이지, 예언이 아닌데도 말이다.
성공 확률 0.000000001%.
출간 가능성 희박.
세상에 이미 좋은 글은 넘쳐남.
확률이 가리키는 숫자들은 "너는 안돼"라는 경고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 마라.”
“여기까지다.”
“너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일을 이미 끝난 일처럼 접어 두기 십상이다.
확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확률이 0이 아닌 일 가운데, 애초에 ‘될 사람’이 정해져 있는 일은 없다.
0.000000001%는 누군가의 몫이다.
그 누군가는 예외 없이 '이름 없는 사람'에서 시작한다.
확률은 통계의 언어다.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숫자는 평균을 말하지만, 삶은 언제나 예외로 움직인다.
책이 한 권 나오는 일.
사람의 하루를 조금 바꾸는 문장이 쓰이는 일.
누군가가 오래 품고 살아갈 글을 만나는 일.
이 모든 일의 확률이 매우 낮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낮다는 말은, 불가능하다는 말과는 다르다.
확률은 나중에 세어지는 숫자다.
이미 일어난 일들을 정리한 결과표다.
반면 가능성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이야기이다.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 아직 펼치지 않은 페이지를 향해 열려있다.
너무 낮은 확률 앞에 서면 움츠러들게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떠올려 보는 생각이 있다.
'해보지 않은 후회'와 '해보다 실패한 후회'는 다르다.
전자는 평생 따라다니고, 후자는 생각보다 빨리 잊힌다.
나는 빨리 잊히는 쪽의 후회를 택하기로 했다.
확률이 낮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내가 특별하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에 대해
나를 미리 배제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확률은 통계에 맡기자.
가능성은 내가 가져가자.
시도하는 쪽에 내 이름을 올려두는 일,
그건 아직 누구도 막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