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언어

by 서담

내 글이 올라간 다음 날, 방장의 글도 게시되었다.
주제는 《안경》.


그는 자신이 안경을 써온 긴 역사를 서술했고,
라식 수술을 고민했던 시절을 풀어냈다.
하지만 부작용이 걱정돼 결국 수술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글머리에는 한 줄이 달려 있었다.
“요즘은 뭐가 옳고 그른지, 내색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 문장이 오래 남았다.


내 기억 속 그는, 줄곧 ‘내색’해온 사람이었다.
말투와 표현 속에서 그가 어떤 입장을 지지하는지,
나는 늘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선언은 낯설었다.
모두가 짐작하는 방향 위에
“나는 말하지 않겠다”는 표식을 붙이는 일.


나는 조심스럽게 댓글을 달았다.
“저도 되돌아보게 됩니다.
내색만 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건 아닌지…”


방장은 평소 모든 글에 ‘좋아요’를 누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내 댓글은 조용히 스쳐갔다.


대신 윤시화가 나타났다.
그녀는 방장의 글쓰기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칭찬을 더했고,
“방장님 안경 여전히 멋지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그 댓글들을 읽으며 문득 떠올랐다.
그들 모두, 같은 부대 출신이었다.
윤시화는 선배, 방장은 후임.


서열과 위계가 작동하는 세계.
그 안에서는 글쓰기도 전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했다.


방장이 ‘등단 시인’이라는 사실을 은근히 드러내던 말투,
대화 말미마다 “전사님, 단결!”로 맺던 인사.


그건 단순한 말버릇이 아니었다.
위계의 언어였다.


비공식적인 이 글쓰기 공간에서조차,
그들은 계급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문득,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군인들은 여자한테 폭력 안 써.

그럴 필요가 없거든.”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여자들끼리는, 어떤 방식으로 폭력이 작동하는가.


말로, 태도로, 무심한 구조로.

그 질문을 품고, 윤시화의 글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글이 올라왔다.


그녀는 ‘얼굴이 예뻤던 언니’와
그 언니의 남편을 등장시켰다.


언니는 감정 기복이 심했고,
남편은 폭력적이었다고 했다.


폭력이 시작되기 전, 남편은 말했다고 한다.
“안경 벗어.”
그 말을 들은 뒤, 언니는 맞았다고 했다.


그 앞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썼다.
“그저 못 본 척했어요.
그땐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거든요.
모든 걸 선명히 본다고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자책으로 마무리된 글의 마지막 문장은
다시 현실을 가리켰다.
“요즘은 라식도 잘 되어 있대요.”


그건 명백한 암시였다.
말하지 않아도,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 충분히 느껴졌다.
내 글의 마지막 장면—
‘안경을 벗고서도 보려는 태도’를 향한 화살처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글쓰기는 감정을 우회하는 통로였고,
타인의 감정을 경유해
자신의 자리를 정립하는 도구였다.


문학은 그녀에게 감정을 나누는 언어가 아니라,
감정을 분류하고 거리두는 체계였다.


감정을 곧장 드러내지 않는 그녀에게
감정이 진하게 담긴 글은 낯설고 불편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예측할 수 없고, 통제되지 않는 것.
그것은 종종 조용히 밀려났다.


내 글도 그랬다.


그녀는 예전부터 나를 ‘독립군’이라 불렀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농담처럼 흘렸지만, 그 말엔 거리두기가 담겨 있었다.

‘너는 우리 편이 아니야.’


그러나 나는 안다.
우리는 어쩐지 닮아 있다.


감정이 허락되지 않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왔던 사람들.


그녀는 위계 속에서,
나는 질문 속에서,
버티고 버텨, 결국 이 자리에 도달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이 만남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혹은, 오래전부터 예고된 것이었을까.


아직,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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