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에는 사실 두 명의 멤버가 더 있었다.
무지개달과 필룩스. 모임의 원년 멤버였다.
무지개달. 마흔 즈음의 나이.
방장과 윤시화보다는 조금 아래였고,
초등학생 아들과 돌 지난 쌍둥이 딸을 키우고 있었다.
오픈채팅 속 그녀는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이 없었다.
항상 누군가의 말에 조용히 응답하며 흐름을 이어갔고,
놓친 대화엔 생동감 있는 이모티콘으로 반응했다.
누군가의 고민 앞에선, 묻지 않으면서도 가장 깊이 공감했다.
나는 일찍이 그녀가 섬세하고 따뜻한 사람임을 알아챘다.
그녀의 글은 언제나 게시판 속 작은 수공예품 같았다.
포도알 같은 아기 발가락, 집 안 가득 퍼지는 밥 냄새.
그런 문장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말랑해졌다.
한 번은 내가 “홍차를 마셔본 적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는 놀라며 브랜드와 레시피를 꼼꼼히 정리해 보내왔다.
내 글에도 늘 댓글을 남겼다.
“솔직한 부분을 긁어주는 글이 너무 좋다”는,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주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고, 그녀의 글도 좋아했다.
그즈음 나는 <<가정>>이라는 글감을 쓰고 난 뒤 많이 지쳐 있었다.
윤시화의 폭력적인 댓글 때문만은 아니었다.
글쓰기가 일상의 축을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업에도, 육아에도 점점 소홀해졌고,
남편에게는 사소한 일로 날선 말이 튀어나오곤 했다.
그래서 모임을 잠시 쉬기로 마음먹었다.
오픈채팅방을 통해 쉬겠다는 뜻을 전했고, 모두의 허락도 받았다.
하필 그 주는, 무지개달이 글감을 제시할 차례였다.
아마 대화를 놓친 탓이었을까.
그녀는 “이번 주 글이 너무 기대된다”고 말했다.
나는 망설였다.
쉬겠다고 했지만, 무시할 수 없었다.
늘 내 글을 응원해주던 그녀의 말 앞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이번 주까지만 쓰고, 그만하자.’
그렇게 완성한 글이 <<안경>>이었다.
그 글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평소처럼 그녀의 댓글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으로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오픈채팅방에서도 말수가 줄어들었다.
뒤이어 올라온 방장과 윤시화의 글에도, 그녀는 침묵했다.
며칠을 기다린 끝에,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혹시,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녀는 아마도, 그저 소소한 일상을 쓰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내 글이 누군가에게 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의 침묵으로 처음 실감했다.
육아만으로도 고단했을 그녀에게
내가 감정적 부담을 얹은 건 아닐까.
<<안경>>이라는 글감을 둘러싸고,
게시판엔 팽팽한 긴장감이 떠돌고 있었다.
그녀가 그 공간에서 빠져나간 것이, 이해되었다.
침묵은 언젠가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품는다.
나는 아직 그녀에게서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지만,
그 침묵은 어쩌면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응답이었는지도 모른다.
필룩스. 그는 창밖을 보는 사람이었다.
쉰다섯 살. 1인 자영업자.
윤시화와 동갑이었고, 방장보다 나이가 위였다.
오픈채팅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의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 내부나 인테리어 사진이 익숙했지만,
그는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 바깥을 찍은 사진을 걸어두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그가 ‘밖에서 보는 사람’이라는 예감을 품었다.
그의 말투는 건조했지만 묘하게 익살스러웠다.
‘단결’을 외치던 방장과 윤시화와 달리
그는 “필승”이라는 단어를 유쾌하게 가르쳐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그가 다른 결의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생각보다 감정에 예민했다.
초기, 내가 감정을 녹여낸 글을 썼을 땐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중반, 언어를 의식하며 쓴 글엔
“정확한 단어 해석”이라며 딱 집어 평가했다.
후반, 구조를 고민하며 써낸 글들에는
칭찬도 판단도 남기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말했다.
“작가의 기본 자질은 명석한 두뇌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말이 그의 방식의 찬사임을 알아차렸다.
감정을 곧바로 드러내진 않지만 메시지는 놓치지 않는 사람.
그가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글을 계속 쓸 수 있었다.
무지개달과 필룩스.
글쓰기가 전장으로 바뀌기 전까지,
나는 그 둘과 함께 모임에 남아 있었다.
무지개달은 긴장감을 감지하자마자 조용히 물러났다.
하지만 필룩스는 침묵하지 않았다.
오히려 특유의 농담기가 살아났다.
<<안경>> 아래,
방장과 윤시화의 강한 말들이 이어지던 그 긴장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남자분, 서온님 앞에서 말 잘못 던졌다가 크게 한 방 먹었군요.”
누구의 편도 아닌 듯하면서도,
굳이 해석하자면 내 편에 가까운 말.
더 인상적이었던 건,
모두가 외면한 내 글 <<당신은 어째서 글을 쓰지 않나요?>>에 달린 댓글이었다.
“팔씨름 대회가 있어요.
기술과 훈련이 필요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마동석이 나타나서 다 쓸어버리는 거 있죠.”
처음엔 웃음이 났지만, 곧 깨달았다.
그는 이 구조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의 태도가 마치 안방극장의 관객처럼 느껴졌다.
팝콘을 든 채 구경하며 은근한 농담을 던지는 관찰자.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가 왜 ‘창밖’을 프로필로 해뒀는지.
그는 늘 바깥에 서 있었다.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른 척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을 보고 있었고, 읽고 있었고,
그러나 발을 담그지 않았다.
감정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관계의 결을 읽어내는 사람.
그는 냉정한 관망자이자,
어쩌면 가장 정직한 독자였다.
나는 그를 원망했지만,
또한 부러워했다.
그는 사라지지 않았고,
상처도 입지 않았다.
창밖에서 세상을 읽는 그의 방식.
그것은 냉소가 아니라,
살아남는 또 하나의 전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