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와중에도, 나는 내심 무지개달이 신경 쓰였다.
그녀가 불편해하며 모임을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걱정스러웠다.
며칠 뒤,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고 글쓰기 게시판에 접속했다.
그리고 모니터 속 무지개달을 보고서야, 내 쓸데없는 걱정을 후회했다.
그녀는 가장 먼저 글을 올렸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가 제시한 **<<소소한 일상>>**이라는 글감을 품고 그 자리 그대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그녀의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를.
그 순간 느껴진 건 안도도, 배신도 아닌—이상한 소외감이었다.
그녀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나의 흔적이 사라졌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 위로 필룩스의 글도 보였다.
두 사람의 글은 마치 보자기처럼, 윤시화의 조롱글 위를 조심스레 덮어버렸다.
그 순간, 내 존재는 너무나 쉽게 지워졌다.
준엄했던 전장도, 비열했던 윤시화도, 끝까지 펜으로 저항했던 나 역시—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미 무너졌다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더 철저하게 부서졌다.
왜 분노하는지도 모른 채,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존재의 소거.’
현실 속 내 존재가 소거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다시 펜을 들어야 했다.
쉬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처음엔 분노뿐이었다.
그 감정을 오래 껴안을 수는 없었다.
왜 나는 그렇게까지 무너졌는가.
왜 그들은 아무 일 없이 돌아올 수 있었는가.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무지개달과 필룩스는 내가 생각한 만큼 비겁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임이라는 구조가 무너지지 않도록,
균형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외면하고,
누군가는 정제하며,
누군가는 감정을 기민하게 포착해 서사의 힘으로 환원한다.
그 역할은 모임의 결을 이루는 **‘필요한 군상’**이었다.
그들의 글은 날카롭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영향력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감정을 쓰는 글이 어떻게 힘을 가지는지.
왜 어떤 감정은 공감을 낳고,
어떤 감정은 배척을 불러오는지를.
그리고 내 자신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너무 정면으로 돌진했고,
너무 많은 것을 믿었으며,
너무 진심이어서 불편했던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 감정들을 통과한 나는 더 단단해졌고,
이제 정말로, 날것의 진심을 품은 작가가 되고 싶다.
나는 이제야 안다.
날것의 품위도, 문학이라는 말도,
결국은 그저 ‘존재를 감당하기 위한 언어’였다는 것을.
지워진 나를, 내가 다시 불러내기 위한 유일한 방식—
그게 나에게는 글쓰기였다.
정제된 진심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서사와 감정을 가진 존재 자체로 기세를 가지는 곳.
짓밟히고 소거된 존재를 복원하고, 동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
그곳은 문학뿐이며,
내가 작가가 되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