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6주차, 이번 주 글감은 《안경》이었다.
제시자는 무지개별.
아마 지난 회차에 내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뤘던 걸 의식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안경’이라 하면 자연스럽게 ‘색안경’이 떠올랐고,
그 단어는 곧 나와 남편의 연애 시절을 소환했다.
우리는 아홉 살 차였다.
내가 20대 초반, 남편은 서른을 넘긴 나이.
그 시절, 사람들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형, 여자친구 예쁘다. 살아있다!”
“서른 넘은 남자? 역시 뭘 좀 아네~”
나는 그 말들 앞에서 오래 멈췄다.
감탄인가, 평가인가.
연령과 외모의 거래인가, 감각의 착각인가.
이번 글에서는 그런 문장들의 속살을 벗기고 싶었다.
‘색안경’은 곧 시선의 권력, 말의 프레임이었다.
나는 그 주제를 감각으로, 경험으로, 언어로 풀어냈다.
픽션으로 거리를 둘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경험’과 ‘서사’의 경계를 타자화하지 못한 채,
1인칭과 2인칭을 넘나들며 ‘나’와 ‘너’를 대화시켰다.
오픈채팅방에서 나는 모임의 ‘성실한 멤버’였다.
스몰토크에도 반응했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갔다.
그렇게 평소처럼 대화하던 날,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회차, 방장과 윤시화와의 1:1 대화 중 실수로 내 프로필 사진이 노출되었다.
단정한 얼굴이 담긴 사진이었다.
그리고 마침 그날, 오픈채팅방에서도 외모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윤시화와 방장은 나를 두고 말했다.
“예쁘다.”
“참하게 생겼다.”
나는 웃으며 “고마워요”라고 답했다.
부끄러움과 인사치레 사이 어딘가에서, 흔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같은 날, 나는 글을 썼다.
“예쁘다”, “살아있다”, “능력 있다” 같은 표현 속에 깃든
권력의 서사를 분석하며,
그것이 얼마나 무심하게 반복되는 구조인지 고발했다.
그 말을 낱낱이 해체하며, 문장으로 해부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간극이 스스로도 낯설다.
오픈채팅에서는 웃으며 받아쳤고,
게시판에서는 그 말들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외모 평가에 웃으며 응답한 나’와
‘외모 평가를 분석하며 해체한 나’.
그 둘 사이의 모순을,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감정의 결을 구조로 엮으며 글을 완성했지만,
내 몸은 여전히 관계의 틀에 붙들려 있었다.
그렇게 숨을 토해내듯, 6주차 원고를 마무리했다.
마감일은 일요일이었지만, 목요일에 이미 업로드를 마쳤다.
살 것 같았다.
첫 번째 댓글은 방장이었다.
“서온 씨 예쁘던데요. 뿔테도 잘 어울릴 듯.
경상도 남자들은 ‘살아있네~’를 많이 해요ㅎㅎ”
나는 다시 멈췄다.
방금 쓴 글이, 또다시 외모의 평가로 응답되었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문학? 피드백?
나의 글을 구조로 읽어주는 사람?
정중히 답글을 달았다.
‘살아있네’라는 표현이 ‘감각이 살아있다’는 뜻이라는 점을 설명했고,
그 말이 외모로 오독될 수 있는 함정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미, 나는 혼란 속에 있었다.
내가 먼저 웃으며 응수한 말에,
왜 이제 와서 분석과 비판을 붙이고 있는 걸까.
내가 놓친 건 무엇이고,
나는 무엇에 사로잡혀 있었을까.
잠잠하던 댓글란에, 윤시화가 등장했다.
“예쁜 것들은 예쁘다 해줘도 논리로 조목조목 멕인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괄호 밖 여성들에겐 아무 말도 안 하는 남자들이 더 무례하지 않나요?”
‘것’, ‘것’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었다.
나는 불편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특수부대 출신 여군이었다고 말했었다.
그녀가 지나온 시간과 자리 —
군 복무 시절, 감정보다 위계가 우선인 세계,
억제와 복종이 생존 전략이었던 구조 —
그것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댓글에 답했다.
이 글은 어린 시절 자의식의 투영이며,
지금의 내가 아님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알 수 있었다.
애써 봉합하려던 마음은 곧 터질 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지개별이 사라졌다.
이번 글감의 제시자였고,
오픈채팅과 게시판 어디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폭풍 전야의 정적.
나는 직감했다.
곧 윤시화가 움직일 것이다.
그 움직임이 어떤 방식일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바랄 뿐이었다.
그것이 문학을 더럽히는 방식이 아니기를.
내가 애써 지켜낸 문장을 향한 돌이 아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