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끌어다 놓았으니 산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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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산 너머 산, 그 산 너머의 산,
아득히 먼 곳으로 해가 진다.
누가 미처 다 태우지도 못할 불을 지펴둔 걸까.
한때 푸르르고 아름다운 것들로 소란했던 숲은
시커먼 재가 되어 흩날리다 내려앉고,
저마다 다른 농도와 밀도로 기억의 산을 만들었다.
산, 산 너머 산, 그 산 너머의 산,
그러나 아득히 먼 산언저리에는
바람에 나부끼고 비에 스러지면서도
기어이 반짝이는 어떤 것들이 아직 살아있어
나는 홀로 서 있어도 춥지 않다.
아득히 먼 곳, 미처 다 타오르지 못한 산 속에서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새 한 마리 훌쩍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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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줄인용 이병률 <기억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