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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Jun 29. 2023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느끼기

「인생 후르츠」, 2018


왜 나는 항상 시간을 두려워하며 지내게 되는 걸까. 늘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알 수 없는 기류에 휩싸여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나의 시간은 점점 없어져 간다. 이건 현대인의 고질적인 문제로 확장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 부부는 바쁜 현대 사회 속에서 느리게 살아가는 방식을 추구한다. 히데코 씨의 뭐든 직접 만들 수 있다면 만들어서 먹는다는 요리 철학과, 슈이치 씨의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건물의 건축 철학이 이를 보여준다. 쉽게 사 먹고,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을 먹고, 그저 같은 모양을 한 아파트에 사는 게 대다수인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나도 충격을 많이 받았다.)


계절에 맞는 채소와 과일을 마당에서 직접 재배하고, 시장에 가게 된다면 가장 최상의 품질을 지닌 것만 고른다. 그리고 시장에서 산 식재료로 식사를 한 다음에, 남편인 슈이치 씨는 귀여운 그림을 그리고, 감사의 인사를 담은 편지를 가게로 보낸다. 일회성이 아닌, 식재료를 먹게 될 때마다 보낸다. 직접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쳐본 게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디지털 기기를 가까이하지 않는다.


슈이치 씨의 건축 철학은 그 어떤 이도 생각해 낼 수 없을 정도로 창의적이고, 자연 친화적이다. 사람들을 많이 수용하기 위해, 마치 공장 같이, 아파트가 수없이 생산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이런 건축을 할 수 있었다니!' 감탄하게 된다. 물론 슈이치 씨의 건축 계획이 온전히 실행되지는 않는다. 건축 시행사에서 처음엔 그럴듯하게 진행하다 결국 계획을 뒤바꿔 공장형 아파트로 바꿔버리고, 그 이후로 슈이치 씨는 건축 설계를 하지 않았다. 슬로 라이프를 즐기던 중, 한 정신병원 의사가 건축 설계를 도와달라고 연락을 한다. 이 의사가 제안한 병원은 그동안 슈이치 씨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과 일치했다. 다시 한번 설계를 할 기회가 돌아왔다.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창과, 언제든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정원이 있다. 건축이 끝나갈 때 즈음, 아내 히데코 씨는 직접 병원에 방문하게 된다. 설계대로 이루어진 병원은 그 어디보다 아늑하며 아름답기도 하다. 그러나, 슈이치 씨는 함께할 수 없었다. 영화 촬영이 이루어지던 중, 세상을 떠나셨다. 평안하게, 밭일을 하고 들어와 낮잠을 주무시던 중 끝내 눈을 뜨지 못하셨다. 누군가는 예상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첫 글인 [아름다운 이별 배우기]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데, 나는 이별이라는 상황에 굉장히 취약하다.


이별을 마주한 후, 나는 영화에 다시 집중하다가도, 히데코 씨와 함께 슈이치 씨를 회상했다. 집안의 모든 곳에, 그리고 모든 일상에 슈이치 씨는 함께했다. 슬로 라이프의 진정한 의미는 '함께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쁜 삶을 그대로 살았다면, 슈이치 씨의 흔적을 찾기에는 너무나도 힘들었을 것이다. 슬로 라이프로 살아가는 데 만나게 된 모든 것에 흔적을 남기게 되고, 남은 사람은 그 흔적으로 추억할 수 있다.


늘 하루를 끝내기 위해 살아가게 된다. 어느 정도 되면 자각이 되지 않는다. 그런 나와 모든 이들 인생 후르츠로 일상을 느리게 회복하길. 하루를 보내기 위해 살아갈 수 있기를.


2023.6.20

[네이버 시리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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