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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Jul 03. 2023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난다면

「가재가 노래하는 곳」, 2022


2021년 국어 시간, 선생님이 서재에서 가져오신 여러 책들을 읽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끌린 듯이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골랐다. 책과 나 사이의 작은 인연의 시작이었다. 50분이라는 시간은 책을 다 읽기에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고, 결국 나는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책을 빌렸다. 쉬는 시간이 되면 서랍의 책부터 꺼내 읽기 시작했고, 읽는 속도가 조금 빨랐던 나는 금세 다 읽을 수 있었다.


책의 여운은 꽤나 오래 남았다. 카야가 사는 습지를 계속 머릿속으로 그렸고, 카야가 사랑하게 된 남자는 어떤 모습인지, 카야는 어떤 모습일지 …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궁금증은 넘쳤지만, 해결할 수 없었다.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은 이런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잠시 책을 기억 저 편에 넣어뒀을 즈음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무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영화로 개봉한다는 소식이었다! 드디어 나의 궁금증을 확인할 수 있게 되다니... 너무나도 꿈같았다. 스케줄을 천천히 맞춰보며 드디어 친구와 보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속 표현된 습지는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주인공 카야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소통하고, 깊게 연구한다. 하지만 카야의 가족 관계는 화목하지 못했다. 엄마는 집을 떠났고, 형제자매들도 집을 떠났으며, 폭력적인 아버지만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카야는 꿋꿋하게, 세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


늘 혼자였던 카야에게 새로운 친구가 찾아온다. 테이트는 그녀에게 조금씩 마음을 고백하고, 나는 이 마음을 고백하는 과정이 아직도 생각에 깊게 남는다. 카야가 모으는 깃털들을 둘의 장소에 하나씩 올려두고 가고, 글자를 알려주기도 한다. 카야가 세상에 나설 수 있는 용기를 간접적으로 전해줬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테이트는 떠난다. 연구를 위해 떠나야만 했다. 카야의 실망한 마음은 체이스라는 인물로 다시금 흔들린다. 테이트와는 느낌이 다르다. 그는 카야를 배려하는 듯 하지만, 본인을 위해 맞춰보려는 듯 보이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사람이다. 그리고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 생긴다. 체이스가 죽었다. 카야의 습지에서. 결국 카야는 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나 또한 카야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모든 정황이 카야가 범인인 듯 흘러갔고, 세상 모두가 카야가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카야는 범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범인이었다. 테이트와 결혼 후, 시간이 많이 흘러 카야가 떠났을 때 발견한 책 속에서 증거가 나왔다. 테이트는 이를 발견하고도 습지에 흘려보낸다. 완전한 소멸이었다.


많은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습지 속 아름답지 못한 사건들. 세상과 떨어져 자연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던 카야가 많은 이들을 만나며 아름답지 못한 일들을 더 많이 마주하게 된다. 카야의 증거가 완전히 소멸된 것이, 부디 카야가 아름다운 습지에 드디어 다시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기를.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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