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깃든 곳>

세월이 갔으나 기억은 아직 그 자리다 /소곤소곤이야기

by sogons

목이 터져라 울었다.

소리를 질러 이 기억을 잊을 수 있다면...


결혼 후 줄곳

그는 불친절했으며

그는 자신이 번 돈은 자신의 것이라 여겼고

그는 외로울 땐 여자를 찾았고

그는 매일 술을 먹었다.

그의 아버지처럼 그도 중독이었다.


가정이라는 이름의 공동체는

그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오직 나 혼자만이 지켜내려 안간힘을 써야 했고

그는 결혼 전의 모습처럼 그의 삶을 살았다.


해외 발령으로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고

아이가 생겼고

남편은 돈을 번다는 이유로 새벽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자신 마음대로 주식 투자를 했고

아파트 한 채가 넘는 돈을 잃고도 자신이 번 돈인데 무슨 상관이냐며 미안해하지 않았다.

여자 관계도 돈이 잘 벌릴 때는 끊임이 없었다.

술집 여자건 회사 동료이건 그의 양심은 신뢰는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50이 넘은 지금 까지도 그는 같은 모양으로 살고 있다.


그래도...

아이들이 잘 자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그는 아이들에게도 친절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에게 주어야 하는 신뢰를,

나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다.

그는 그의 기분이 이끄는 대로 살았다.


술을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소리를 지르고 싶으면 질렀고

외박을 하고 싶으면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

난 한 번의 사과도 받지 못했다.

아이들이 크는 동안에는 내가 이혼하지도 집을 나가지도 못할 성격이란 걸 그도 알고 있었다.



이제 아이들은 집을 떠나 자기들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잘 자라주어 너무 다행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떠난 자리, 난 아직 여기에 그와 함께 있다.


아이들이 크기를 기다렸다.

그래도 아빠가 없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가 대학 졸업하는 날,

아이들이 내게 이혼을 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아빠에게는 기대가 없다고...

엄마가 이젠 자유로와도 된다고...

학비를 낼 때면 남편은 매번 화가 났다.

첫째 때는 학비가 비싸 그렇다고 왜 장학금이 없는 학교에 보냈냐고 화를 냈고

둘째 때에는 장학금으로 학비까지 나오는데도 아이의 집세와 생활비를 낼 때가 되면

화를 내고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돈이 없을 땐 돈 때문에 화를 내며 술을 마셨고

돈에 여유가 생기면 술을 마시고 여자를 만났다.


나도

이런 조선시대 한 많은 여인이 살았을 것 같은 삶을

내가 살게 될 줄 몰랐다.

남편과 만난 다른 친구들이 술을 즐기지 않아 일찍 헤어지게 되면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다가도 혼자서라도 여자가 나오는 술집에 가서 새벽이 되도록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이유로 가출이 하고 싶을 때에는 미리 하루 이틀 전부터 화를 내고 싸움을 걸었다.

내가 참지 못하고 화를 내기를 기다렸고 화를 내면 그냥 나가서 두 달이고 세 달이고 들어오지 않았다.

해외 생활에 월세며 학비를 낼 때가 되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야겠다 생각하고 비행기표를 끊으려고 보니

나는 신용카드도 없고 내 이름으로 된 은행계좌엔 달랑 30만 원이 있었다.

그는 내 통장에 돈을 넣어두지 않았다.


화가 나다가 우울했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친정에 이런 일로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다렸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아이들은 자라 어른이 되었다.


아이들은 떠났고 나와 그 둘이 산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같은 버릇을 가지고 있다.

몇 년간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웠다.

그가 했던 일들이 모두 꼬이고 꼬여 정말 기적처럼 어려워졌다.

첫째 아이가 대학을 다닐 때여서 정말 어려웠다.

학비를 낼 때마다 구걸하듯 남편에게 이야기해야 하기에 너무나 굴욕적인 기분이 들었다.

비참했다.

내가 데려온 아이들인 것처럼 그는 아이들을 나를 대했다.

여자와 만난 게 밝혀져도 그는 미안해하지 않았다.

아무 이야기도 없이 평소처럼 살았다.


세월이 이렇게 지났는데...

지난봄에도 그는 여자를 만났다.

치매가 걸린 엄마의 요양보호사를 교체해야 했다.

내가 서울로 간 사이 그는 여자를 만나 잤고 시계를 선물했으며 모서리에 붙어 앉아

새 시계를 낀 그녀의 손을 사진으로 찍어 그녀를 소개해준 그의 지인에게 보고하듯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 지인이 우리 아파트에 집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만일 그 지인이 그날 우리 집을 보러 오지 않았다면

남편이 컴퓨터를 켜 놓은 채 그와 함께 집을 보러 나가지 않았다면

컴퓨터의 화면 속 카톡에서 내가 그녀의 사진을 보지 못했다면

난 오십이 넘은 남편이 이제는 철이 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젠 지나간 일이라 생각하며 그 깎아내듯 아픈 기억을

내 눈물로 덮고 애써 태연하려 했을 것이다.


새살이 차오르기도 전에 다시 칼로 도려내진 상처가 아프고 쓰라리다.

잊어야 살기에 잊고자 하는데 몸부림을 칠수록 상처가 쓸린다.

그에겐 하늘도 지붕도 없다.



#소곤소곤이야기20251205 #bysog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