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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spirit Sep 09. 2024

동해보다 맑은 바다, 벌천포 해수욕장

삼남매와 함께 보낸 완벽한 하루

여름방학의 끝자락, 무더운 여름이 떠날 날이 가까워져 있어서 그런지 당일치기로 급하게 준비해 출발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가족이 다 같이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하고.     


간조, 만조 상관없이 물놀이할 수 있는 곳. 벌천포 해수욕장은 모래가 아니고 몽돌로 되어 있다. 물이 깨끗하고 왜목마을과 비슷한 조건으로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그날(일요일)은 벌천포 해수욕장에서의 들뜬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신평에서 차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벌천포는, 이미 도시의 소음을 잊게 만드는 평온함을 품고 있었다. 해수욕장이라기보다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흔한 모래 대신 바닷물에 반사되어 빛나는 몽돌이 해안을 따라 넓게 펼쳐 있다.


 바다에 몸을 담그면, 맑은 물이 주변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비추었다.  벌천포는 물때 상관없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독특한 해변이다. 만조와 간조의 차이가 크지 않아 언제나 맑은 물속에서 놀 수 있다. 돌 사이로 바닷물이 흘러들어오는 모습은 마치 자연의 숨결을 느끼게 했다. 물가에 앉아 몽돌들이 부딪히며 내는 고요한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절로 평온해졌다.     


아이들과 함께한 이날의 여행은 단순한 일상의 기록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컸다. 해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몽돌을 만지작거리며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그 순간들은 우리에게 소소한 행복을 안겨주었다. 바다 저편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그 아래로 저무는 석양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에서,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따뜻한 햇살과 석양의 마지막 빛이 어우러지며, 순간순간이 길고도 마법 같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황홀한 석양을 품은 천혜의 벌천포에서 하루가 끝나가는 아쉬움조차 온화하게 다가왔다.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진 울창한 솔밭은 또 다른 매력이었다. 자연 속에 깊이 들어가 캠핑을 즐기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솔잎 소리와 함께하는 저녁은 그 어느 도시의 밤보다 평온하고 고요했다. 해변가에 정박해 있는 작은 어선들은 마을의 옛날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했다.


한때 석화로 유명했던 벌천포는 이제 전국 각지에서 낚시꾼들이 모여드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벌천포의 진정한 매력은 자연 그 자체였다. 푸른 하늘 아래 맑은 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가 느끼는 평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바람과 파도의 리듬에 맞춰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걷다 보면, 가로림만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온다. 벌말까지 이어지는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었다. 삼남매는 각자의 이야기를 나눴다. 지나온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면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통로였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가로림만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온다.     


웅도로 가는 길도 잊을 수 없다.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바닷길은 마치 마법처럼 우리 앞에 펼쳐졌다.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길은 웅도 주민들에게는 일상의 일부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벌천포 해수욕장은 단순한 여행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도시의 번잡함을 떠나 자연과 하나 되는 이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힐링의 시간을 찾았다. 바다와 하늘,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나와 아이들을 다시 발견할 수 있는 곳. 벌천포는 그렇게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현서는 그윽한 눈으로 바다를 보며 말했다. "엄마, 우리가 해수욕장에 온 게 10년 만인 것 같아. 그런데 내 몸에 맞는 구명조끼가 없어. 내년에는 살을 빼고 다시 오자" 라며 웃어 보였다. 그 말에 나도 웃음을 터뜨리며, 우리가 바다를 찾지 못한 긴 시간을 실감했다.     

벌천포 해수욕장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니 벌써 오후 다섯 시가 되었다. 현민이는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엄마, 나 기숙사 가야 하는데 언제 출발할 거야?"라며 시계를 보며 자꾸 확인했다. 발만 담그고 있었기에 조급해 보였다. 둘째는 일요일부터 기숙사 생활을 이어가야 하니까 재촉할 수밖에.

마음의 여유를 누렸으면 좋겠는데 내 마음 같지 않았다.     


셋째 현이는 해변에서 한참을 뛰어놀다가 갑자기 걱정스러운 얼굴로 "엄마, 다음에는 원터치 텐트라도 가져와야겠어. 속상하게도 백옥 같은 내 피부가 탔어"라고 말하며 볼을 만졌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내심 웃음이 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벌천포 해수욕장에서의 그날은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함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함께한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사진으로, 글로 촘촘히 기록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진신문에서 열독률 높은 인기 기사 1위가 되었다. 무엇보다 기사 제목이나 순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 순간을, 이 소중한 기억을 우리가 함께 만들었다게 소중했다.


앞으로도 어느 상황에서든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한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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