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이 쉰이 되면 인생이 한결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적당한 거리에서, 인생 후반전을 걷는다.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by byspirit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가 바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이치이다. 관계가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균형이 깨지고, 너무 멀어지면 결국 끊어지게 된다.


사회적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어렵지 않다. 우리가 찾는 최적의 거리이고, 그 거리에서만이 대인 관계를 건강하게 이어갈 수 있다.


내 인생을 꼬집어 보자면 지난해보다 바깥 활동 비중은 줄었지만, 삼남매에게 마음을 쏟느라 더 바쁘게 지내고 있다.


평일에는 새벽 일찍 일어나 첫째 대학교 통학 차량까지 데려다주고, 둘째, 셋째는 매주 금요일마다 당진에서 예산을 거쳐 합덕으로, 일요일에는 다시 합덕을 거쳐 예산을 지나 당진으로 돌아온다.


뭘 딱히 한 것도 없는데 한 주가 지나가고, 또 한 주가 시작된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벌써 4월 말이라니. 그러고 보니, 어느새 반백 년을 살아왔다. 이제 남은 반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내린 답은 간단하다.


누군가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 관계를 흐트러뜨리지도, 너무 멀어져 끊어지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그 거리가 바로 내가 범접할 수 있는 온기의 한계선이다.


마치 모닥불처럼, 난로처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서 나의 삶을 이어간달까?


작년 이맘때를 떠올려본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투고하기까지 하루의 절반 이상을 앉아 보내곤 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연락을 받고 취재 현장에 나갔다.


인터뷰가 길어지면 2시간. 집에 돌아오면 사진 정리와 글쓰기로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봉사 활동 취재를 갈 때는 사진을 100장 넘게 편집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뛰어다녔다. 숨은 보석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가 찾아냈다는 기쁨으로. 그들의 빛나는 순간을 글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원고료를 받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값진 보상이 있었다. 바로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의 한 조각이 되어 퍼져나가는 순간이었다.


사각지대에서 아무도 모르게 헌신했던 삶의 조각들을 듣고, 글로 기록하고, 마침내 활자로 새겨졌을 때, 그들은 빛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에서 빛나는 순간을 글로 남겼다는 사실이 내게는 가장 큰 보상이었다. 이런 이유로, 유방암을 진단받았지만 진단 전보다 지금이 행복하다. 생각해보면 잘 산다는 건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 이유 없이, 가끔은 못난 표현에도 3남매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하루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더 나아지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다.


나는 마흔아홉에서 쉰으로 한 걸음 내디디면 인생이 한결 가벼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겨울의 끝자락에 서 보니, 가벼운게 아니라 단단함이 더해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세상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들, 그리고 허울뿐인 매거진들,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는 것들.


정치권과 대기업의 정경유착처럼, 이건 아마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 유착의 가장 큰 문제는,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거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모든 일에는 균형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관계도, 일도, 삶의 속도도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너무 가까워 무너지는 것도, 너무 멀어 소원해지지 않도록, 나에게 꼭 맞는 거리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는 것.


그래서 나는 또 한 걸음 내디딘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가볍게 뛰면서.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며,

내 인생의 후반전이 단단하게 빛나기를 바라면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부, 실손보험 개편 추진… 가입자 반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