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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싫다던 막둥이, 발 아프다며 투덜대더니…

결국 7km 완주!....내포문화숲길 배지 받고 “매년 하자”고.

by byspirit

주말 아침, 막둥이는 이불을 끝까지 덮어쓰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전날 밤 “내일 비 온대? 걷는 거 귀찮아…”라는 말이 자꾸만 맴돌아 나도 반쯤은 포기한 채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배낭을 챙기고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더니,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엄마 혼자 가는 거야?”

“너 안 간다며.”

“비옷 줘. 갈게.”


그 한마디에 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건넨 노랑 비옷을 받아 입고 마지못해 따라나선 아이. 그렇게 시작된 내포문화숲길 가야산 7km 걷기. 출발은 설렘보다는 투정과 꾸중, 타협의 결과였지만, 결국 우리 둘은 덕산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걷기 시작하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3키로 걸었을까? 하늘은 흐렸고, 바람엔 봄비의 기운이 살짝 스며 있었다. 바람에 실려 흐드러지는 벚꽃잎이 모자 위로 스쳐지나갔다. 사진을 담겠다는 일념하에 여러포즈를 요구했다. 결과는 100%만족.


비옷을 입은 막둥이는 뮤직비디오 속 주인공 같았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걸음이 길어질수록 막둥이의 입꼬리는 점점 아래로 향했다.


“엄마, 다리는 아프고, 배는 고프고, 발바닥은 뜨거워…”

“조금만 더 가면 저수지야. 중간 지점이야.”

“평지만 걷는다며,이게 뭐야. ‘조금’이 너무 길잖어…”


아이의 푸념이 반복될수록 나도 순간 흔들렸다. 그렇지만 오늘 걷기는 단순히 완주가 목표는 아니었다. 스마트폰을 보며 숏츠에 익숙한 막둥이가 ‘불편함’을 견디며 자연이 주는 바람과 흙을 밟고 체험하는 시간, 그리고 서로의 속도를 맞춰보는 동행의 시간이길 바랐다.


다행히 중간 지점의 체험부스는 작은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VR 고글을 쓰고 산악자전거를 체험하는 얼굴에 드디어 웃음이 피어났다. 차량방향제 꾸미기, 양말목키링 만들기, 솜사탕 하나. 그 긴줄을 서서 기다리는데도 불평불만 없이 시작했다. 그날 우리는 B코스, 7km 코스를 선택했다. 도전하듯 긴 길이었지만 아이는 어느새 나보다 먼저 내 상태를 살핀다.

“엄마 힘들어?, 내리막길이니까 조심해.”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따뜻한 물음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보다 더 건강하게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걸, 내포문화숲길에서 함께 걷는 길에서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길목을 따라 펼쳐진 흩날리는 벗꽃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엄마, 저기 봐! 진짜 영화 같아. 가야산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

“그치? 엄마 따라 다니면 모든 장면이 영화 같은 장면이야.”그러면서.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진 듯한 아이의 얼굴을 보며, 이 시간을 함께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장에 도착하자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사운드 서커스’라는 업사이클링 악기 공연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서 환경의 소중함을 자연스레 들려주었다. 초등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리듬을 탔고, 그 사이에 서 있는 고등학교 1학년 막둥이는 말했다.


“엄마, 왼쪽에 있는 아저씨가 애가 4명이래. 직장 다니면서 주말에 알바로 공영한다네?”
“우와..정말? 책임감도 있고 멋지다. 게다가 환경서커스까지...!!”


드디어 옥계저수지를 돌아 다시 덕산도립공원으로 향할 무렵, 막둥이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았다.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손은 따뜻했다.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완주 배지를 받을 때, 현이보다 내가 더 뭉클했다.

“엄마, 우리 매년 걷자!”

“그래, 꽃 구경하는데 여기만큼 좋은데가 또 있겠어? 우리의 봄은 매년 이렇게 걷자.”


벚꽃은 바람에 흩어졌지만, 내포문화숲길에서 함께 걸었던 그 길은 찬란히 피어 있었다.

비옷 너머로 비추던 아이의 얼굴, 투정부리며 시작했지만 끝까지 함께해준 막둥이의 7km.

이 모든 순간이 내게는 오래도록 마음에 머무를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진짜 봄은, 어쩌면 가야산 끝자락 위에서 조용히 우리 곁에 와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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