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패밀리 리더라는 명칭을 내걸고 움직인 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시작은 조심스러웠다. ‘내가 과연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수없이 묻던 시간. 단순한 행사가 아닌, 기도로 시작해 기도로 마무리되는 자리였기에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감사하게도 52패밀리 이지남 대표님의 따뜻한 손길과 격려가 있었고, 덕분에 나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밥은 먹었니?”라고 묻는 일을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1인 1책 프로젝트 글쓰기>로 더 촘촘히 담았다. 그 영상을 지역신문에 실었더니 반응은 정말 뜨거웠다.
어떤 이들은 개인 메시지로 묻곤 했다.
“이지남 대표가 누구야? 사업가야?”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는 의미로 ‘52패밀리’ 사단법인을 만든 분이에요. 사실, 저도 동영상으로 먼저 알게 되었는데 2년 전 겨울에 직접 뵈었죠. 참 해맑으시더라고요. 지금도 전국 아동양육시설뿐 아니라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주고 계세요.”
그 말을 전하면서 나도 깨달았다. 대한민국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전국 아동양육시설에 갈비를 후원하며 선한 영향력을 전해준 사람, 바로 러닝맨의 ‘션’이 그 선두에 서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이름 없이 누군가의 식탁에 작은 온기를 보태는 익명의 천사가 되었다. 그 일은 생각보다 벅차고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주었다.
사실 나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2023년 8월 25일부터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았던 암 환우였다. 그해 11월, 표준치료가 모두 끝났다. 직장생활만 12년째 이어오던 내가 일상생활이 이렇게 멈춰 설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휴직 기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인지 하나씩 깨닫게 되었다. 나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누군가는 묻곤 한다. “아픈 사람 맞아? 왜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여전히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느냐”고.
건강할 때는 답을 찾지 못했지만, 넘어지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삶에 작은 힘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기쁨과 따뜻한 추억을 남겨줄 수 있는 시간이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
더 놀라운 인연은 페이스북에서 이어졌다. 이설아 작가님과 친구가 된 뒤, 나는 그녀의 글을 빠짐없이 읽었다. 어떤 날은 소소한 일상, 또 어떤 날은 동네 강아지와 고양이의 이야기였다. 그 짧은 문장 속에는 서늘한 슬픔과 뜨거운 생의 의지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나는 종종 그녀의 문장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그러던 며칠 뒤, 작가님이 1박 2일 글쓰기 캠프 소식을 올렸다. 10월부터 12월까지 글쓰기 회원을 모집한다는 공지였다.
딱 8명만 선발한다는 글을 읽었을 때, 이미 45명이 지원했다는 사실에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겠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마음은 자꾸 숲속을 향해 갔다. 복직을 앞두고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누려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떨리는 손으로 지원서를 작성했다. 내 이야기를 숨김없이, 진심을 담아 써 내려갔다.
며칠 후, ‘당첨’이라는 두 글자를 마주하는 순간 벅찬 감정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평일에 떠나는 1박 2일이라는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간절함이 내게 건네준 뜻밖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보상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그 캠프에서 어떤 문장들과, 어떤 사람들과 마주하게 될지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다.
태어나 경북 영주를 가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혼자 3시간 동안 운전해 떠나는 것도 처음이다. 그래서일까, 낯설지만 마음 한켠이 두근거린다. 나 혼자만의 여행이라 더 설렌다. 초면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낯섦조차 새로운 기대감으로 다가온다. 11월이 오면, 익숙했던 일상을 잠시 벗어나 1박 2일 동안 휴대폰도 내려놓고 오롯이 글과 나만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 시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 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지만, ‘글’이라는 이름 하나로 연결되어 각자의 상처와 기쁨, 권태와 희망을 나누는 자리. 나는 그 속에서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초면이라 엉엉 울어도 괜찮을까? 아니, 차라리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과감하게 늘어놓고 싶다. 하지만 그런 자리가 아닐 수도 있으니 자중해야겠지.
오히려 낯선 문장과 낯선 시선이 내 글을 흔들어 줄 때, 나는 더 깊이 숨 쉬게 된다. 글쓰기는 완벽한 행진이 아니라, 끝까지 쓰고 싶은 이들의 고요한 발걸음이다. 흐트러져도 좋고, 눈물에 번져도 괜찮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고 계속 쓰는 일. 그 순간 나는 잔잔한 호수 위로 번져가는 물결처럼 살아 있음의 울림을 느낀다. 그 울림 하나면, 내가 글을 쓰며 걸어갈 이유는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이 길의 끝에서 무엇을 마주하든, 글을 쓰는 동안의 ‘김정아’는 언제나 강인하고 아름다울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