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양성, HER2 음성. B2기라는 낯선 이름
2019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유방암 발생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된다. 2016년 유방암 진료 환자는 약 173,387명이었고, 2018년에는 205,123명으로 늘었다. 2019년 신규 진단된 여성 유방암 환자는 약 29,729명이었으며, 이후 2020년 233,840명, 2022년에는 272,129명 으로 집계됐다. 연도별 수치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전반적인 증가 흐름은 주요 통계와 언론 보도를 통해 일관되게 확인된다.
특히 2020년 약 23만 명 수준이던 유방암 진료 환자 수는 2024~2025년 기준 약 31만 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보도되며, 약 4년 만에 30% 이상 증가했다.
이는 국내 유방암 진료 부담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국제적으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2019년 전 세계 유방암 신규 진단 사례는 200만 건을 넘어섰고 2022년에는 약 230만 건 이상으로 보고됐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암연구소(IARC)는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 경우, 2050년까지 전 세계 유방암 발생률은 약 38% 증가해 연간 약 320만 건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유방암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들에게 가장 흔한 암이 된 현실이다.
그런데도 유방암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유방암은 암도 아니야", "감기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직접 듣고 나서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수술대에 오르고, 피주머니를 달고, 일주일을 병실에서 보내며, 항암치료를 견뎌야 하는 과정을 과연 그들은 상상이나 해봤을까.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전까지는 다르지 않았다. 매우 건강했다. 내 일이 아니었기에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고, 별다른 관심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내가 암환자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됐다. 표준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항암치료받고 이후의 삶은 죽을 때까지 살얼음판을 걷듯 이어진다는 사실과, 언제 어디로 어떻게 전이될지 모른다는 불안은 여전히 삶의 한가운데 남아 있다는 것을. 그런 과정들은, 암환자라면 그 누구도 쉽게 피해 갈 수 없다는 게 현실이었다.
2023년 7월 26일, 수술에 이어 암조직검사 결과를 받고, 8월 25일부터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2025년 7월 초, 뇌 전이, 뼈 전이 의심으로 12월이 되어서야 핵의학과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고.
올해는 두 번이나 뼈 스캔 검사를 받았다. 이 날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막둥이 아침밥은 간단히 계란밥으로 해두고 병원을 나서려는데, 차 키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찾다가, 잠시 멈춰 서서 호흡을 고르고 "서두르지 말자. 식탁에 있을 거야"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아! 이런. 키는 차 안에 두고 집에 들어왔던 거였다.
나만 이런 건 아니겠지, 혼자 중얼거리며 웃었다.
천안단국대학병원으로 가는 길은 가깝고도 멀게 느껴진달까. 6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 모르겠다. 복잡한 마음을 잠시라도 잊어버리자는 마음으로 글을 쓰며, 바쁜 일정들은 마무리했다. 한 달이 지났다.(2025년 12월 30일) 오늘은 뇌전이·뼈전이 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여섯 번째 받는 검사지만 여전히 유방암 검사는 묵직한 철제 불도저에 눌리는 기분이다. 숨이 막히고, 눈물이 쏙 빠진다."숨 참으세요"간호사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숨은 멈춰 있었다."아… 7월보다 더 아픈데요?"
그런데 측면으로 한 번 더 찍어야 한다며 굽은 어깨를 펴라고 말했다.
2년 6개월 전에는 분명 어깨가 반듯했는데, 내가 점점 늙어가고 있구나. 어깨가 말려 있다니. 그러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예약 시간에 맞춰 유방암
검사까지 마치고 채혈실을 지나 곧장 뛰었다.
8시 30분까지 핵의학과에 도착해야 했다.
"어? 내 심장이 튼튼해졌나?"
이렇게 뛰어도 심장이 따갑지 않았다.
비상계단으로 한 층을 더 내려갔다.
윽... 공포의 유륜수사를 맞았던 복도가 보였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핵의학과에는 여전히 암환자들이 많았다.
접수하고 기다리는 동안, 내 옆자리에 앉은 분은 항암치료를 받았는지 눈썹 위가 반짝이고 있었다.
비니 모자도 쓰지 않고 당당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얼마나 예뻐 보이던지.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나는 항암치료를 받을 때 왜 그렇게 당당하지 못했을까?' 불특정다수에게서 느껴지던 시선, 눈빛이 불쾌했던 걸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암병동 입원실에서는 담당 교수님마저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또 어떤 날은 핵의학과 대기실 구석에 앉아 비니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제발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던 나.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암환자이기에 비니 모자를 쓰고 치료를 받으며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어도 되는 날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민머리인 내가 부끄러웠다. 그런 아픔을 뒤로하고.
핵의학과에서 공포의 주사를 맞을 시간이 됐다.
"따끔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사 바늘이 들어갔다가 멈췄고, 혈관이 터졌다. 5분간 지혈하고 다시 주사를 놓겠다고 말했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주사 공포는 여전히 바늘 끝에 있었다. 울지 않으려고 발만 동동 굴렀다.
간호사가 말했다."아기가 맞는, 얇은 바늘로 바꿀게요"
그렇게 방사성 2m를 맞았고, 식염수도 함께 놓았다.
5시간이 지난 뒤, 뼈 스캔 검사가 다시 시작됐다. 7월 중순에 받았던 검사와 다르지 않았다.
움직이면 안 되는데, 눈을 감고 10분쯤 지났을까. 새벽 일찍 일어나 운전까지. 피곤했던 모양이다. 꿈을 꿨는지 순간, 고개를 들고 말았다. ‘아.. 처음부터 다시 촬영해야 되면 어쩌지?’ 검사가 끝나고서야 말했다.
"선생님… 움직여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검사는 끝났으니 귀가하시면 됩니다"
신을 신고 일어나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새벽 6시에 출발해 오후 2시 반까지 버티는 일이,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말이다.
오후 3시가 훌쩍 넘어서 심장센터로 올라갔다.
"혈압은 왜 이렇게 높아요?"다행히 피검사에서 콩팥 수치는 괜찮았다.
"복부는 초고도비만인데, 이 정도면 정상입니다. 최근에 스트레스받거나 힘든 일 있었어요?"
교수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간 수치는 3개월 전 44에서 23이나 오른 67이었다.
숫자를 보는 순간, 지난 3주가 한꺼번에 설명됐다.
11월 14일, 복직하고 쓰러지듯 잠들던 날들,
눈을 떠도 몸이 따라오지 않던 아침들. 의지는 있었지만 체력은 바닥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애써 무시한 채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었다. 사실, 몸은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연차를 쓰고도 마음이 불편했으니까.
암센터 대학병원에서 8시간 진료과정. 왕복 두 시간 운전 끝에, 초저녁에 잠들었다. 어쨌든 뇌전이·뼈전이, 유방암 검사 결과는 1월 6일이니까. 걱정은 뒤로하자고.
그런데 기다림은 늘 두렵다. 특히 결과를 알기 전의 시간은,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으니까. 그래서 하루 종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별일 없어야 하는데...."그러면서.
2026년 1월 1일 아침이 되었다.새해가 밝았다고 삶이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더라. 여느 날처럼 아침밥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어쿠스틱 콜라보 뮤직스토리를 틀어두고,삼 남매 밑반찬을 챙기고, 닭볶음탕은 두 마리 같은 세 마리 양으로 끓이며 그렇게 새해를 열었다.
무엇보다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충분히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러니 올해도 애써 달라지려 하지 말고, 지금처럼 호방하게, 호쾌하게 자기 몫의 하루를 누리시길.
새해 복은 이미 가지고 계신 만큼만
차곡차곡 더해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