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보내는 나의 20대

단순하게 · 단단하게 · 단아하게 이어가는 오늘.

by byspirit

멈췄다가 다시 걷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세상은 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향해 박수를 보내지만, 김서빈 작가의 이야기는 잠시 멈춰 서 있었던 시간에도 분명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빛처럼 스치는 미소로 증명된다. <너에게 보내는 나의 20대>는 그래서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다.


강연장에서 만난 김서빈 작가의 이야기는 과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했다. 출간을 준비하며 최대한 단순한 디자인을 지향했고, 폰트까지 직접 제작했다.

김 작가는 자신의 시간을 타인의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남기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 역시 꾸미지 않았다. 솔직했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라기보다, 스스로를 버티기 위해 써 내려간 기록처럼 느껴졌달까.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글로 정리해 왔다고 말했다. 왜 마음이 불편한지, 무엇이 자신을 화나게 했는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잔여를 문장으로 옮기며 스스로를 이해해 왔다. 억울함과 분노조차 기록 속에서 흘려보내며 정리해 왔다는 말은, 글쓰기가 단순한 취미나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살아내는 방식’이었음을 보여준다. 감정이 언어가 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조금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김 작가의 20대는 우리가 쉽게 말하는 ‘성장’이라는 단어 안에 다 담기지 않는 시간이었다. 흔들림과 정체,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에 맞추지 못한다는 불안이 반복되던 시간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할 만큼 깊은 우울 속에 머물렀던 시기, 방향을 잃고 멈춰 서 있어야 했던 날들, 그리고 타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재단해야 했던 순간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며 그녀는 삶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흘러가야 할 시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익숙한 변화는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오래 버텨낸 사람만이 알게 되는 이해였을지도 모른다.


형식 없이 쌓아두었던 기록들은 어느 순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김 작가는 구글 메모에 그날의 감정과 생각을 남기며 스스로를 붙잡아 왔다. 그리고 2025년 3월, 배지영 작가와 함께한 ‘1인 1책 에세이 글쓰기 프로젝트’를 통해 흩어져 있던 문장들을 다시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시간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던 순간, 김 작가의 20대는 비로소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삶이 반드시 직선으로만 이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강연을 통해 알려준 <너에게 보내는 나의 20대>는 과거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였다. 스무 살의 불안,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조급함까지 숨김없이 담겨 있다. 특히 강연에서 오래 마음에 남았던 것은 ‘멈췄던 꿈’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때 등산 콘텐츠로 유튜브 활동을 했지만,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며 멈춰야 했던 시간. 그러나 김 작가는 그 시간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았다.

“다시 시작할 마음이 남아 있다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진로 역시 하나의 방향으로만 이어지지 않았다. 피부미용 전공, 손목 통증으로 인한 중단, 비전공 분야였던 마케팅과 웹디자인 업무, 그리고 다시 전공을 살린 피부과 상담 업무까지. 관찰자 입장에서 보면 돌아가는 길처럼 보였던 시간들은 결국 자신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미래의 나에게 긍정의 말을 전하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리고 나는, 오늘의 나를 조금은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하고.


사회초년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불안과 정체 속에서, 김 작가는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기 신뢰를 확인했다.


현재, 피부과 상담 업무를 이어가며 자신의 시간을 호쾌하게 쌓아가고 있다.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첫 취업을 했던 당시 사수에게 들었던 말은 지금도 그의 기준으로 남아 있다.

“너는 어제보다 오늘 0.1% 더 나아지고, 오늘보다 내일 0.1% 더 발전하는 사람이야.”

강연의 마지막, 그녀가 남긴 말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삶은 경쟁이 아니라 이어지는 시간이고, 성장은 도약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이는 과정이며, 희망은 거창한 미래가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에 있다는 것.


우리는 때때로 멈춰 서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멈춤은 어쩌면 실패가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김 작가의 이야기는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시간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조금 느려도 괜찮고, 돌아가도 괜찮고,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말. 그리고 다시 걸어갈 마음만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

“10년 후, 마흔 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기특하고 자랑스럽게 바라봐 주면 좋겠다”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충분히 어두워야 별을 본다, 내 삶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