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감정의 전달의 행복
좋아하는 것이 있었지만 시도하지 못했고 또 다른 좋아하는 것을 찾았지만 비주류로 인정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무뚝뚝한 58년생, 62년생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란 평범한 인문계 학생이였지만 꿈과 재능은 다른 쪽에 있었다. 이뤄내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과 나의 두려움 때문에 놓아버렸다.
퇴사 후에 여의도 쪽에서 일하는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11시가 넘으니 그 거대한 빌딩숲 안에서목에 사원증을 건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친구도 그 중 한명이였는데 놀라서 물으니 이 시간쯤 되면 이렇게 장사진을 친다고 한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삭막한 길거리로 변한다고.
대한민국의 80%정도는 회사원이지 않을까?
그 중 몇퍼센트나 원하는 직종에서 일을 사랑하며 살고있을까.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대학지원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아무런 관심도 없는 과를 점수에 맞춰서 혹은 대학이름 때문에 지원 한다고 했다. 나의 머리로는 이해가 가질 않아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런 우리나라의 교육방식을 어렸을 때 부터 싫어했다. 지금은 시대가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스트릿댄서들은 세계적인 꿈의 무대에도 몇번이고 수상하고 나라의 위상을 펼치고 돌아오지만 아무런 대우도 받질 못한다. 오히려 다른나라에서 한국의 스트릿댄서다 라고 말할 시 더욱 알아준다.
댄서들의 올림픽이라고 불리우는 프랑스의 Juste Debout이라는 대회는 그 나라의 축제처럼, 스포츠처럼 많은 사람들에 관심을 받는다. 대회가 끝난 후 누가 이겼냐며 서로 묻기도 하고 단체로 관람을 가기도 한다.
이런 큰 대회에서 우리나라 댄서들의 수상경력은 화려하지만 고작 인터넷 뉴스 몇개의 기사밖에 나지 않는다.
댄서 선배들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세계대회에서 1등을 하고 태극기를 휘날리고 애국심에 불타올라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조용하더라고.
아무도 관심없고 알지도 못한다고.
결국 연습실로 돌아가 연습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한다는 것이다.
지금에서야 조금씩 노출 되고있고 방송에서 인정해주는 분위기지만 예전 댄서들은 이용당하기 십상이였다.
말도 안되는 재능기부를 강요당하고 댄서주제에 라는 말을 일삼기도 했다고 한다.
선구자는 외롭다는 말이 있지만 내가 안타까운 것은 10년이 지나 춤이 너무 추고싶어 학원을 찾았을 때
레슨비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댄서들이 업으로 살아가면서 단지 댄서로서의 수익활동만 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내가 춤을 췄을 때 활동했던 친구들 중 지금 댄서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은 몇 안된다.
나도 저런 이유 때문에 포기한 것도 있으니까.
예나 지금이나 어린 댄서들의 고민 중 하나일 것이다.
나도 대학교 때 교수님께 여쭤 봤었다. 춤으로 돈을 벌 수 있느냐고.
질문에 대한 답은 두가지였다. 잘하면 되고 오래 버티면 된다고.
나는 결국 둘 다 이루지 못한채 그만 뒀다. 어쩌면 자라나는 과정 중이였지만 오래 버틸 자신은 없었달까.
예전에는 춤을 그만두게 한 아빠를 원망했었지만 한편으론 내 마음의 확신도 없었던거 같다.
내가 재능이 있는 것인지 이런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것인지. 앞이 안보이는 미래를 걸어가기에 많은 점이 나약했다.
어쩌면 그 마음은 우리나라의 교육방식과 환경에 따른 탓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모두 다 어릴 적 꿈이 있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 크기가 작으나 크나 마음 속에 각자 한가지씩 있다. 그래서 나는 눈은 동태처럼 퀭 하고 어깨에 삶의 무게를 잔뜩 진 사람들을 보면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들 마음 속에도 분명히 넣어둔 꿈들이 있을테니.
누군가는 넣어둔 채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테고 누군가는 나처럼 끄집어내 실행에 옮길수도 있다.
나는 이 지구에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생각해 온 것이다. 모두 다 힘들지 않고 웃고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렇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건
계속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을 계속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크고 작은 행복들을 모두가 놓치지 않고 누렸으면 좋겠다.
하루를 살 때 스쳐지나가는 행복들을 붙잡길 바란다. 잠시나마 웃을 수 있게.
장담컨대 어느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다.
나에게 무슨 행복이야, 이 상황에 빌어먹을.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아니다.
분명히 있다.
느끼지 못했을 뿐, 찾지 못했을 뿐.
조금만 귀 기울이고 하늘을 높게 올려다 보고 찾고자하면 보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꿈 꿀 자유가 있으며 그 꿈을 이룰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