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깨닫기 까지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나의 첫 연애는 대학교 때 인데, 내가 생각해도 아니 생각하기도 싫은 한없이 부끄럽고 미성숙한 연애 그 자체였다. 나이가 들어서도 고질병인 연애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부터 내고 마음껏 표현하며 사랑하는 방식을 알지 못해 남자친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인가 한 듯 싶다. 당시 남자친구는 한없이 착하고 순수했던 친구이다. 어쩌면 살면서 그렇게 순수한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에게 진심이였다. 집에 거의 혼자간 적이 없을 정도였고 데이트 비용을 위해 시간을 짬내 학교 근처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에게 사랑을 주진 못할 망정 말 그대로 제멋대로 굴었다. 1년 가량 만났는데 그것도 신기한 노릇이다. 마지막은 결국 내가 이별을 통보하긴 했지만 차인느낌이였다. 내가 잘못을 해도 그 친구가 잘못을 해도 사과하는 건 그 친구였는데 헤어진 날은 그 친구도 많이 지쳤는지 미안하다는 말을 안하는 것이다. 항상 먼저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는 것이 당연한 나는 화를 냈다.
왜 미안하다고 안하냐고.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또라이 같다. 후)
그 친구는 왜 자기만 맨날 사과해야하느냐고 반박했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지기 싫은 마음에 더 크게 화를 내다 결국 홧김에 이별을 통보했다. 전화를 끊고 몇분이 흘렀을까 바로 전화가 와서는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하는데 전화가 오질 않는 것이다. 내가 전화를 걸었다.
"왜 안 붙잡아? 진짜 헤어질생각인거야?!"
"응."
"그래. 잘지내."
"응."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그의 짧은 대답에 담긴 많은 뜻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고 언제 헤어질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면서 의지할 대상은 필요했던 이기적이고 결핍된 연애를 한 것이다. 그렇게 나의 어른으로서의 첫 연애는 끝이 났다.
그리고 나서 25살 취업하기 전까지는 은둔형 외톨이로 사느라 연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취업 후 부터 나의 본격적인 연애가 시작되는데 자만추를 추구하고 소개팅을 싫어해서 어디에서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건지 늘 고민했었다. 소개팅은 아는사람이 얽히게 되고 잘안되기라도 하면 친했던 친구와도 괜히 어색해질까 두려워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친구가 어플 하나를 알려주었다.
틴더라는 어플이였는데 내가 있는 위치에서 가까운 친구를 찾아주는 어플이였다. 우리나라 어플은 아니고 소개팅 어플도 아니고 친구 만들기 어플 같은거라고 이상한거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단순한 시스템인데 사진과 소개글을 올려놓으면 근처에 사람들이 카드처럼 뜬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Like(좋아요)를 누를 수 있고 Pass(싫어요)를 누를 수도 있다. 서로 라이크를 눌렀다면 매칭이 되고 채팅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언제고 마음에 안들시 매칭해제를 할 수 있다.
사실 보통 사람들에 경우 소개팅 어플, 넷상에서 만나는 거 자체를 꺼리고 위험하다고 생각하기에 나도 그런 편견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 나는 연애를 하고 싶었고 어플을 하기 시작했다. 그 기간은 3-4년 정도.
어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할 수도 있고 범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좋은 기억도 꽤 있어서 그리고 헤어지면 혼자인게 싫어 꾸준히 해왔었다.
처음엔 상처도 많이 받고 이상한 사람들도 만나보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썰?은 나중에 긴글로 써보고싶다.)
3-4년 정도 어플을 하며 나와 매칭됐던 사람은 1000명 정도가 된다.
물론 다 만난 것도 아니고 다 대화를 한 것도 아니고 연결이 된 숫자지만 1000이라는 숫자를 봤을 때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 나도 참 징하다.'
좋았던 것은 그 곳에서 첫사랑을 만났다는 것. 안좋았던 것은 나를 가볍게 생각했던 사람들.
예를들면 나와 연애를 시작했는데 알고보니 그 어플에서 내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것, 연애를 시작하고 어플을 지우기로 약속했건만 내 뒤에서 몰래 어플을 하고있던 것 등. 상처가득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어플을 하면서 사람거르는 눈이 생기고 충분히 알아본 후에 만나기도 했지만 결국은 안좋은 것이 좋은 것보다 많았기에 지금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없다. 나름의 값진 경험이기에.
그리고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
나의 헤어짐에 맥락은 같다는 것, 헤어질 때 그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내가 찼을 때 빼고)
그때부터 조금씩 연구했던거 같다. 왜 같을까, 내 잘못일까.
사실 헤어진다는 감정 자체를 늘 힘들어해서 잘못된 방식이지만 내 마음이 뜬 상태여도 먼저 그 단어는 잘 꺼내지 않았다. 겁이 나서. 고백도 내가 먼저해서 사귄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차이면 상처받을까 처음부터 도전하지 않았다. 내가 했던 연애는 먼저 나를 좋아해주고 고백을 받아드려 시작한 것들이다. 그러나 끝은 내가 맺는게 아니라 상대방이 맺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문제점은 이러했다. 대학교 1학년 첫 연애때와 비슷한 이유지만 그때보단 조금은 나아진 정도?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낸다.
상대가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를 할때 어딘가 성에 안찬다.
상대의 카톡, SNS상 말투로 기분이 좌지우지 한다.
나보다 다른 것이 우선시 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 서운함이 크다.
서운한 감정이 한번 들기 시작하면 계속 곱씹는다.
이것들의 기본은 '서운함' 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는 것은 정말 1차원적인 미성숙함 이기에 저것은 금방 캐치해서 나아질 수는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것들은 서운함이 왜 큰지 의문만 있지 마음이 잘 나아지진않았다.
조금 성장했다고 생각해도 연애를 시작하면 그놈의 서운함 때문에 또 티격태격 싸움을 일으키곤 했다.
나도 남들처럼 그냥 쿨하게 넘어가고싶고 이해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일을 못할 정도로 감정이 요동치는 건지 나도 답답했다. 해결방법 조차 알지 못했다.
헤어지고 나서 깨달음은 늘 있고 물론 조금씩 성장하긴했지만 확 달라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비슷한 맥락으로 헤어지다보니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아 나는 연애를 하면 안되는 사람인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건가. 친구들에게 푸념하곤 했는데 한 친구가 해줬던 말이 많은 위로가 됐다.
"아직 너가 진짜 잘 맞는 사람을 못만난거 뿐이야. 너무 자책하지마."
저렇게 위안을 삼으니 자책은 멈추게 됐다.
퇴사 후에 어플을 자주 하지는 않았고 가끔 심심하거나 대화상대가 없을 때 깔아서 종종 하곤했다.
왜 끊어내지 못한 것인지는 나중에 알았지만 공허함 일테지.
마지막으로 한 연애도 틴더에서 만난거였는데 내 나름의 최선을 다했던 연애라 후회는 없다.
이것만으로도 나름 대견스럽다. 성장했다는 이유니까.
헤어짐이 있고 나서는 늘 후회하고 자책하고 미안해했다. 지나고 나면 생각이 드는 것. 더 잘해줄걸, 이해할걸, 표현할걸. 좋은 것들만 기억에 남기에 아쉬움이 컸다. 나를 거쳐간 사람들에게는 항상 그렇다. (나쁜놈들 빼고)
그렇지만 이번 연애에서도 나는 그놈의 서운함 때문에 연애를 오래 하진 못했다.
나만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내가 많이 만들었으니 나 때문이라고 생각도 든다. 나 때문이라기 보다
정확히는 나의 마음 때문.
나는 연애할 여유와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도 고민하는 인생의 갈림길에 놓여있기에 불안정적인 마음으로 하루 하루 살아내고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끊임없이 연애를 한 이유도 어쩌면 불안정한 생활 속에 안정적인 무엇인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나에게는 연애, 남자친구였던거 같다. 3년 정도는 늘 남자친구가 있었으니.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직업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모두 갈팡질팡인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애정을 주기란 쉽지 않았던 것. 어렸을 때 부터 독립적이던 내가 안정성을 위해 사람에게 의지하다니.
그것에 대한 결과는 상처, 헤어짐, 자책 이였다.
내 마음 때문에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들을 알지 못하고 계속 연애를 해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연애를 하고 서운함은 더욱 증폭되고 내 인생에 한 사람이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 하다보니 내 인생을 돌볼 시간과 마음이 없던 것이다.
무엇인가 도전을 하거나 배우거나 시작을 하려 해도 남자친구와의 만남과 연락때문에 미루곤 했다.
그 시간에 남자친구랑 노는 것, 남자친구 선물을 사는 것이 나에겐 더 행복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의 계발을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싶은 것을 도전하고 나아가야 하는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행위인 것 이다. 연애도 일도 병행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 사람들이 태반이니까.
그들과 내가 다른 것은 그들은 기반이 단단하다는 것이다. 일을 하며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계약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연애를 할 때는 행복했다. 그치만 한편으론 불안했다.
그때 내가 다이어리에 썼던 몇개의 글을 적어본다.
이 풋풋하고도 풋풋한 마음은 언제가 끝일까
풋풋함 대신 올 단어들은 어떤류의 단어들일까
자존심? 서운함, 소홀함, 당연함 vs 편안함, 안정감, 좋은의미에 당연함
얼마나 부질이 없고 미련한 미련이었는지도 헤어지고 한참이 흐른 뒤에야 알까 말까다.
나의 실속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연애할 때는 싸울 때도 슬플 때도 행복할 때도 삶 전체가 휘청거리고 아무것도 남지않는 그런 허망함만이 존재한다.
내가 이 친구를 계속 만나는 것이 만날 수 있단 것이 괜찮은 걸까.
내 마음이나 환경들에 온전히 괜찮을까.
혹여나 다치진 않을까, 혹여나 또 실망하게 되진 않을까 하고...
좋은 것들도 많았고 사랑하기도 했지만 결국 4개월만에 이별을 하게 됐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를 잘 몰랐던 것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거기에서 오는 미성숙한 대처들.
상대방에게 주는 상처들, 감싸안을수 있는 에너지가 없었던 것.
나는 혼자여야했다.
마지막도 결국은 그 친구가 끊어냈지만 내가 할 수 없었던 끊음을 대신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좋은 기억이고, 감사한다. (물론 그 순간에는 질질짜며 붙잡고 가지말라며 애걸복걸했지만)
자, 이제 나는 성취를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상황들이 주어졌을 때에도 내 마음에게 묻기 시작했다. 좋은 것이 무엇인지, 어떤 감정이 드는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아주 작은 것 부터 큰 것 까지 진심을 다해 내면을 바라보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