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간에 백수생활을 끝내고
새로 입사한 회사에 가져갈 티코스터를 찾으려
서랍을 뒤적거리다 하얀 봉투를 발견했다.
얼마나 꾹 꾹 눌러 담았는지,
글씨가 많이 뭉개져 있었다.
짧다면 짧을 인생에 더없이 갚진 6개월 동안,
나에게 남긴 짤막한 편지 같은 느낌도 들었다.
글이라는 것은 쓰면 쓸수록 어렵지만
내 마음을 글에 완전히 녹여낼 때의 희열은 매우 짜릿하다. 춤 배틀에 나가서 처음으로 예선 통과할 때의 느낌이랄까?
새로 시작한 업무도 글에 관련된 일이다.
내 인생에 모니터 앞에 장시간 앉아있고 심지어 그런 일로 돈을 번다는 게 상상 안될 일이지만.
내년에는 어떤 삶이 펼쳐질까.
이렇게 또 나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그 누구에게 사랑받는 것보다
나 자신에게 사랑받는 느낌이다.
이 감정은 그 어떤 사랑보다 힘이 많다.
잘 안다고 생각했다.
계속 단단하게 변하지 않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물어볼 새도 없이 순간의 감정으로 선택해왔고,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늘 선택지에 놓여있기 마련이다.
그 선택이 작든 크든 본인의 마음에게 진심으로 묻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내 마음에게 질문 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을 방황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는 명목 하에
여러 가지의 마음들을 무시했다.
작고 큰 아픔이 지나고 나서야 내 마음이 어떤 상황인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질문에서 끝이 났지만
묻고 또 묻고 결론을 짓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 마음에게 미안하고, 스스로 불쌍하다고 생각됐다.
나의 내면은 끊임없이 변하고, 선택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내 마음보다는 순간적인 감정들이 삶의 주인이었다는 것.
나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라 생각했지만,
결코 아녔단 거.
최근 두 달 정도 고민하며 내린 결론이다.
아직도 과정 중에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 내면의 나와 만나려고 애쓴다.
해본 적이 없어 끊임없이 의심되지만 그것 또한 해쳐나가려 한다.
과정 중에 점점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내 삶의 주인이 내 마음이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