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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은성 Oct 10. 2020

봉투

2020년, 내 나이 30살.


정확히 2009년도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10년 뒤에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생각했었다.

빠른년생이라 친구들은 31살인데, 이번년도에 30대가 된 나는 느낌이 너무 묘하고 무언가 허해서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30대 너무 이상하다고. 어디가서 나이 말하는게 낯설다고.


친구들이 말했다.

"31살 되면 더 이상해질걸? 빼도박도 못하게 30대잖아. 만으로도."

아. 그렇구나. 나는 몇개월 뒤면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30대가 되어 버리는구나.


약 봉투에 찍혀져 나오는 나이를 신경쓴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만으로 20대인 것이 기쁨이 되는 순간이 왔다.

나이 들었나봐. 맞춤법도 자꾸 틀리고, 단어도 잘 생각이 안나.

이런 말들을 요새 달고 산다. 그놈에 나이. 나이. 

그 나이가 가져다주는 조바심과 불안감 들이 물밀듯이 밀려올 때가 있다.

나름 씩씩하게 잘 살아낸다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자꾸만 작아지고 가끔씩 눈물이 난다.

특히나 우리나라 한국사회에서 30살이란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 있는 평범한 직장에 다니고 결혼을 하기위해서(누군가랑 언제 할지도 모르는데.) 어느정도 적금은 필수로 붓고, 그러다 마음 맞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 준비를 하고 아이를 낳고..

지금 대부분의 내 주변 친구들이 이렇다. 이미 결혼한 친구들도 조금 있고, 아이가 있는 친구도 있다.

카톡엔 점점 웨딩사진이 늘어가고 애기들 사진으로 누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프로필 사진이 바뀌고 있다.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동물이다. 특히 나는 남들보다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흘러가는 한국사회를 보면서 비혼을 선언했던 적도 있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때가 되면 그렇게 해야만 하는 룰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그 룰 안에서 살아가다보니, 또 따르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꼭 내가 잘못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결혼할 것 같지 않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친구 부모님의 부고를 받고 이런 상황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내가 20살 때, 친한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그날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난다. 

밤 10시 쯤에 시애틀에서 유학하고 있던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울면서.

자기 한국이라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편찮으셨던 건 알았지만 돌아가실거라고는 그 나이 나에겐 생각하지 못하는 영역 이였다.

전화를 끊고 너무 큰 충격에 소리내서 울고 있는데 아빠랑 언니가 놀라서 방으로 들어왔다.

나 지금 가봐야한다고, 친구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언니는 나를 달래주고 아빠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어떻게 해야할지, 조의금은 얼마를 내야될지, 가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머리 속이 하얬다.

그 당시 지갑에 현금 7만원이 있었다. 다 챙겨서 나오는데 아빠가 나를 불렀다.


"앞으로 이런일이 점점 더 많아질거야.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뭐가 많아진다는거지? 사람이 죽는거? 내 친구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거?

어린 나이에 와 닿지 않는 얘기였다.

근데 지금에서야 그 말이 너무 이해가 간다. 좋은 일도, 슬픈 일도 점점 더 많아지는구나.

그리고 좋은 일 뒤에 슬픈 일은 점점 더 많아질테지. 

마음이 먹먹했다. 아빠의 말을 이해하고 있는 내가, 슬픈일은 점점 더 많아질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내가.

10년 사이에 나이가 나에게 알려준 정답 이였다.


어렸을 때 아빠 책상 서랍에는 항상 흰 봉투가 무더기로 있었다.

아빠는 전화 한통을 받으시곤 검은색 정장을 꺼내 입고 그 봉투에 돈을 넣어 뒤에 이름을 적었다.

어딜가는지 우리에게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친척언니 결혼식에 갈때에도 그 서랍을 열고 봉투에 똑같이 돈을 넣고 이름을 적었다.


내가 23살 쯤 내 지인들 중에 처음 결혼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에게 축의를 하려 집에있는 아빠의 흰 봉투를 꺼내 내가 내고 싶은 만큼의 돈을 넣고, 뒷장에 편지를 적었었다. 

엄청 친하진 않았지만 1년동안 같은반 이였던 지혜를 나는 좋아했다. 그 당시 3만원 정도가 기본 축의금(이것도 사실 잘 몰랐다.)이라고 누군가에게 듣고 나는 지혜를 좋아하니까 5만원 넣어야지. 그리고 가진 못하니까 편지쓰면 보겠지? 하고 가진 못하고 친구에게 전해줬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 나의 첫 축의금이다. 

그 뒤로도 간간히 동창들이 결혼하곤 했지만 내가 마음이 가는 친구가 아니라면 참석하지 않았다. 

의미 없다고 생각해서.

근데 이제는 마음이 가는 친한 친구들이 점점 더 결혼을 한다.

그리고 저번주 금요일 다이소에서 100장이 들어있는 흰 봉투를 샀다.

정말 친한 동생 결혼식이 토요일에 있었다. 나는 예전 아빠처럼 흰 봉투를 꺼내 돈을 넣고 뒤에 이름을 적었다.

흰 봉투를 산 이유는, 이번년도에만 나의 친한 사람들 5명이 결혼을 했고, 곧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무더기로 가진 않았고 지인들 몇몇만 했었다.

나는 원래 결혼식을 잘가지 않는 타입이라 돈도 그날 뽑고 가서 우왕좌왕 봉투를 찾아서 넣고 급하게 이름을 써서 냈었는데, 이제는 정말 준비해야될 것 같았다.


혼자 방에서 아빠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니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 내가 어른이 되가고 있구나.'

20살 이면 성인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아직도 한참이나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과정 중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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