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유리멘탈 울보
교직원이 된 지 13일 차가 되었다.
힘든 일이 생기거나 짜증 나는 일이 생길 때면
술이나 친구들을 찾던 나였는데
이제는 이러한 감정들을 글로 한두 자씩 기록해보려고 한다.
난생처음 하는 직무이기도 하고
엑셀이나 한글, ppt를 잘하지는 못하는 나라서
자신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면접 때도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었지만
사람이 급했던 건지 어쨌든 나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앉는 자리에 계시던 선생님은
육아휴직을 가셨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받지 못하고 자리에 남겨진 두터운 책 두 권이 나를 반겼다.
처음에는 정말 할 줄 아는 게 1도 없었기 때문에
정독하는 게 일이었지만, 읽어도 해본 적 없는 거라
문서작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일은 어떻게 사이클이 돌아가는 건지 도무지 알 턱이 없었다.
개강을 앞두고 바쁜 팀장님과 선생님들 틈바귀에서
나는 덩그러니 남겨진 느낌이었고
내게 시키는 일들은 랩 하듯 빠르게 속사포처럼
남겨지고 나는 알음알음 어깨 너머 일을 완료해야 했다.
"괜찮아요. 처음인데 뭐. 근데 나는 두 번 묻는 건 안 좋아해~"
하.. 이때부터였을까.
나의 압박감이 시작하던 때가
전의 회사는 마케팅 회사이기도 하고
자유분방한 느낌에 회사였다.
나는 경력직으로 들어가서 일을 배우는데
3개월이면 충분했지만 물론 그때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내가 해본 일이기도 하며, 젊은 회사라서
나를 많이 이해해 주는 듯했다.
전회사는 음악을 빵빵하게 틀고 일하는 분위기
혹은 에어팟을 끼고 일을 하거나
본인이 하는 일만 끝내면 퇴근하는 분위기였다.
(단지 그 일이 점차 늘어나 야근이 잦았지만.)
반면, 학교라는 곳은 더욱 규칙적이고
제약도 많은 느낌이었다.
러닝을 취미로 하는 나는 전회사에서
매일 레깅스차림에 모자를 쓰고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에는 퇴근런을 뛰곤 했었는데
이곳에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 풀메를 하고
깔끔한 복장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
또한, 약 3년 만에 새로운 일에 적응하고
배우려고 하니 부담감도 컸다.
그들에게는 쉬운 문서작업 하나라도
나에게는 큰 산처럼 다가왔는데
바쁜 사람들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눈치가 보이는 거라 어느 순간 나는 눈칫밥을 먹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일을 하면서 뿌듯하다는 생각이 많았고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방학이라 조용한 교정을 심부름 삼아 걷곤 할 때 특히나 행복하다.
근데 오늘 위기가 찾아왔다.
교학팀 소속이기에 학생들의 민원이나
부모님들의 민원도 끊이질 않았다.
오늘은 졸업생이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팩스로 보내달라는 작업이 있었는데
한번 배웠던 일이라고 그래도 몇 번 잘 해냈다.
그런데 오늘 일처리를 하고 자리를 비운 사이
내가 보냈던 팩스가 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전화가 불통처럼 왔다.
다시 처리를 해주려고 하는 도중이었는데
민원인 졸업생이 전화로 나에게 따져 물었다.
"아니, 지금 여기서 20분째 기다리고 있는데 왜 처리가 안 돼요?"
"아 죄송합니다. 팩스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바로 다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하.. 오류고 뭐고 일처리를 왜 그렇게 해요? 처음부터 제대로 하셨어야죠"
"...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일 좀 똑바로 처리하세요"
뚝-
순간 아까 내가 보냈던 팩스와 전화번호가
잘못 기입되어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아니 내 잘못이 아닌 거 같은데?
그래서 전화를 끊고 옆에서 통화를 듣던 선생님이
"아니 왜 그래요? 뭐라고 해요?"
"아까 보니까 본인이 번호 잘못 입력한 거 같던데 엄청 화내네요"
"헉 진짜요? 이상한 사람이네"
그리고 몇 분 뒤,
옆자리 선생님께서
"아니 선생님 근데 뭐가 잘못된 거예요? 궁금해서요."
다시 창에 들어가 찬찬히 살펴보니 잘못된 것이 없었다.
분명 아까는 잘못돼있었는데.. 진짜 이상하다..
아무리 봐도 잘못된 점이 없어 보여서
"아 제 잘못인 거 같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리는데
괜히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거 같았다.
평소 같은 말투가 아닌 정적으로 화가 섞인 말이어서
옆자리 선생님도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눈물을 보일까 싶어 서둘러 자리를 떴다.
화장실에서 창문을 열어두고 심호흡을 하는데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그 눈물은 민원인 때문 많은 아니라는 것을
빠르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작은 업무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화랄까.
그리고 내가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나는 프로그램 하나하나, 대화내용 하나하나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눈치로 알아서 나름 하고 있었는데. 서러움일 테다.
내 자신에 대한 화, 그리고 여러 가지 서러움이 뒤엉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꼭 처음 아르바이트할 때 설움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별일이 아닌데 눈물이 나는 나 자신도 싫었고
들키기도 싫었다.
멘탈이 강하지 않은 나로서는
어떠한 일이 닥치면 우선 눈물부터 난다.
울고 싶어서 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거뿐이다.
이 마음은 나와 비슷한 종족의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아닌 사람들은 뭐 욕 좀 먹을 수 있지 처음인데
지네가 해봐!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되지 못한다.
서둘러 감정을 추스르고 자리로 왔다.
내가 공황장애가 있어서인지 모르겠는데
속에서부터 목 끝까지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얼른 집에 가서 이 감정을 글로 털어버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컴퓨터를 켰다.
일한 지 13일 만에 처음으로 위기가 찾아왔지만
퇴근길에 생각을 했다.
그래도 나 많이 성장했구나.
예전 같으면 감정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들켜버렸다던지, 기분이 좋지 않아 술을 한잔 했을 것이다. 무사히 집으로 와서 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개운하게 씻고 이렇게 내 감정을 적어 내려가고 있는 나를 위로해 본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두면 또 하나의 해프닝으로 남겠지. 그런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봄은 언제 올까? 여름은 또 언제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