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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도〈쇼미〉가 있다

콩쿠르를 둘러싼 논란

by corda music studio




음악은 엔터테인먼트다. 엔터테인먼트에는 빠질 수 없는 요소가 있다. ‘스타’.

클래식도 다르지 않다. 최근 국내 음악계에서는 클래식의 인기가 젊은 청중을 중심으로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고 보고된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신흥 스타 연주자들의 등장이다. 그중 조성진, 임윤찬으로 대표되는 스타 피아니스트들의 공연은 열렸다 하면 순식간에 매진되기 일쑤다.


임윤찬.jpg ⓒYTN


이러한 스타 연주자들은 어떻게 탄생할까. 방법은 다양하나, 다원화된 현재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가장 효과적인 길로 '오디션'을 꼽을 수 있다.

K-Pop 아티스트 지망생들은 대형 기획사에 선발되어 데뷔하기 위해 〈프로듀스〉 시리즈와 〈걸스플래닛〉 등에, 댄서들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 등 수많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 왔다. 이렇게 대중과 아티스트 사이 미디어 역할을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클래식에서도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바로 '콩쿠르(Concour)'다.




수많은 거장들의 등용문


서양 예술사에서 고대 그리스는 예술의 발생지다. 음악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피타고라스에 의해 처음으로 음계가 만들어졌으며 원형 극장에서 공연음악의 시초가 형성되기도 했다. 음악가들의 컴퍼티션 문화도 이미 이때부터 존재했다.


아폴론 신전.jpeg 음악 경연대회가 펼쳐졌던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 신전 ⓒNatasha Sheldon


이후로도 유럽 각지에서 음악가들을 경쟁시켜 상을 부여하는 문화는 계속하여 존재해 왔으나, 우리에게 친숙한 콩쿠르라는 이름의 컴퍼티션 문화가 우후죽순 생겨난 것은 20세기 초, 중엽이다. 세계 3대 콩쿠르라 불리는 〈쇼팽 국제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모두 각각 1927년, 1937년, 1958년에 시작되었다.

* 단,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으로부터 퇴출당한 바 있다.


이들 국제 콩쿠르는 많은 전설적 거장 연주자들을 배출해 내었다. 쇼팽 콩쿠르만 해도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등 소위 ‘한 가닥’ 하는 당대의 거장들이 입상자 명단에 밀집되어 있다. 이들은 단지 콩쿠르 입상으로 커리어를 그친 것이 아니라, 콩쿠르를 발판으로 이름을 알려 그들 자신만의 음악세계와 음악적 커리어를 대단히 공고하게 구축해 낸 당대 클래식 음악계의 주축들이었다.


쇼팽 콩쿠르.jpg 쇼팽 콩쿠르 경연장의 모습 ⓒNIFC



콩쿠르 반대’라는 생소한 시각


콩쿠르가 클래식 음악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이루기 때문에, 콩쿠르는 클래식의 불가분적인 구성 요소로 당연스럽게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콩쿠르를 바라보는 시각이 꼭 전부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자유로운 표현을 목표하는 음악예술이 경쟁에 귀속될 때 발생하는 문제는 없을까.

이에 관해 우려를 표한 대표적인 음악가로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가 있다. 저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그는 2022년,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콩쿠르 출전을 멈춰달라”음악예술은 측정이 불가능한 요소들로 이뤄진 고도의 주관적 영역이며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그는 큰 재능을 지닌 한국 연주자들이 보호되고 육성되어야 할 뿐 경쟁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며, 정명훈 지휘자의 사례를 들었다. 쉬프와 정명훈은 수십 년 전인 197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출전한 바 있다. 그리고 둘 모두 우승하지 못했지만 현재는 클래식 음악계의 거대한 산맥이 되어 있다.


안드라스 쉬프 ⓒNadia F. Romanini



별점 테러를 막을 방법이 없다


예술을 경쟁의 도마 위에 올리는 행위는 그 자체로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내포한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적합한 심사가 가능한가,라는 의문도 남는다.

1663년, 프랑스에서는 학생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 정책으로 〈로마 대상(Prix de Rome)〉을 제정하였다. 대상이나 최우수상에 선정된 예술가들에게 로마로 유학 기회를 제공하던 이 상에는 ‘작곡’ 부문도 존재했다.

그리고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이라는 젊은 작곡가가 있었다. ‘스위스 시계공’이라 불릴 정도로 세밀한 작곡적 테크닉과 빼어난 감각으로 수많은 역사적 걸작을 작곡한 이 거장 작곡가는 학생 시절 5번이나 로마 대상에 응모했다. 그런데 응모 당시 그는 이미 작품성을 높이 인정받는 작곡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1등을 놓치는가 하면, 아예 예선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라벨.jpg 모리스 라벨의 모습 ⓒWikipedia


음악적 성향이 아주 보수적이었던 당대 심사위원들은 라벨의 곡을 ‘너무 진보적’이라 판단하고 저평가하거나, 심사 대상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이에 마지막 응모에서도 라벨은 아예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심지어 결선에 오른 작곡가 6명이 전부 심사위원 한 명의 제자들이었다. 이에 심사의 적합성에 대한 파문이 일어 주최기관인 파리음악원의 원장이 라벨의 스승인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e)로 교체되어 버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는 음악의 우수성을 가르는 판단기준이 완벽히 객관화, 정량화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태생적 문제다. 많은 심사위원들의 견해가 일치하는 음악적 판단기준도 분명히 존재하나, 심사위원들의 주관적 판단 또한 심사에 큰 영향을 행사한다. 결국엔 그들의 자발적 양심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이러한 심사위원의 양심과 소신에 의한 평가방식은 이따금씩 큰 논란거리를 불러일으킨다. 2015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그는 빼어난 음악성과 기량으로 압도적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심사위원만은 9점10점으로 가득한 그의 평가지에 1점 만을 남겨 논란을 일으켰다. 조성진이 재학 중이었던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의 교수, 필립 앙트르몽이었다. 그는 우승자인 조성진에게만 최하점을 주었다.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러한 극히 주관적이며 원인 모를 심사가 반복된다면 과연 콩쿠르가 좋은 아티스트 조명의 창구가 될 수 있을지는 점점 의문스러워질 것이다.


조성진 채점표.jpg 2015년 쇼팽 콩쿠르 당시 조성진의 채점표 일부 ⓒNIFC (이데일리 편집)



아티스트보다도 씬을 위한 등용문


음악이라는 예술을 경쟁 구도 위에 올렸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들은 비단 클래식 음악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힙합에서의 〈쇼미 더머니〉 시리즈가 그랬다. 사람들이 쇼미에 열광하던 시기, 정작 씬에서는 많은 래퍼들이 쇼미에 반대 의사를 표출하기도 했다. 그들은 힙합 문화에 기반하여 래퍼 간 계급화에 반대했고, 쇼미 경연곡의 획일화에 반대하였으며 힙합 시장보다 커져가는 쇼미라는 시스템에 반발했다. 그렇게 쇼미에 반대하며 더 나아가 쇼미에 참가한 래퍼들을 공개적으로 디스 하는 래퍼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들조차도 하나둘씩 쇼미에 합류하는 행보를 보여 의문을 자아냈다. 이에 관해 사람들이 보는 시각은 제각기 다르다. 단, 그들이 단지 변절했다기보다는 양질의 곡을 발표해 놓고 영향력 없는 마케팅으로 묻힐 바에 미디어의 힘을 빌려 스스로를 알리기 위한 등용문으로 사용하고자 하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루피.jpg 쇼미를 비판한 바 있으나 〈쇼미 더머니 777〉에 참가한 래퍼 루피(하)와 대치하는 래퍼 스윙스(상) ⓒMnet (경인일보 편집)


예술 분야에서 미디어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먼 장르일수록 미디어의 조명이 요구된다. 쇼미 시리즈의 지속적 흥행으로 한때 한국 음원시장의 대표 장르가 되었던 힙합마저도 당시 쇼미에 지속적으로 의존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그보다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클래식은 오디션의 도움 없이 온전하게 스타를 배출할 수 있을까.

등용문이란 어쩌면 아티스트 개인보다는 장르와 씬을 위한 것이다. 씬을 살려나갈 스타를 계속해서 배출해 나가는, 씬의 지속성을 위한 장치. 20세기에 수많은 콩쿠르가 개설된 이후 배출된 수많은 우승자들 중 거장 연주자로 자리매김한 사례가 다수 존재하듯이, 콩쿠르로 배출된 스타들은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실제로 씬에 크게 기여해 왔다.



경쟁과 우승 이후에 오는 것은


한때 언더그라운드였던 힙합을 한국의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린 쇼미는 이제 수명을 다해 사실상 종영 절차를 밟았다. 그러자 스타를 꾸준히 배출해 내던 거대한 중앙집권적 미디어를 잃은 힙합 씬은 메인스트림으로부터 조금 멀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쇼미 이전보다는 훨씬 성장한’ 씬을 토대로 쇼미 시기에 비해 양질의 음악활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아티스트도 리스너도 거대한 미디어의 틀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져 힙합이라는 음악 자체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클래식은 쇼미 방영 시기의 힙합과는 약간 양상이 다르다. 콩쿠르를 통해 배출된 신예 스타에 의해 계속하여 새로운 맥박이 제공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기도 하다. 스타 연주자들이 배출되어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클래식 씬을 더욱 키우고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더없이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국내 클래식 음악 씬 또한 언젠가 커진 씬을 콩쿠르에 의존하지 않고 자생적으로 발전시켜 갈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콩쿠르 입상 출신 스타 연주자들이 대거 등장하고 그들로 인해 클래식 리스너 수가 증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히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콩쿠르는 노벨상이 아니며, 음악가들의 목적지가 아닌 진정한 시작점에 가깝다. 연주자들이 콩쿠르 입상으로 받는 주목만큼이나, 그들이 콩쿠르 외 음악적 행보로도 알려질 다음 수단 또한 적극적으로 고민되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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