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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여 듣지 마세요

괴짜가 예견한 BGM의 시대

by corda music studio




1909년의 에릭 사티(Erik Satie) ⓒWikipedia



사진부터 범상치 않다. 요즘 말로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맑다기에 번뜩이는 안경과 검은 중절모 아래에 숨겨진 눈빛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 그윽하다.

그렇다면 그냥 광인일까. 그의 사생활을 살펴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의 주인공은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로, 식사 시 오로지 흰 음식만 먹었으며, 옷 안에 호신용 망치를 휴대하고, 자기 집 주소로 편지를 보내거나 스스로 사이비 교회를 창설하는 등 생애 내내 대단한 기행을 펼쳤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런 기행적 면모를 통해 그려낸 작품세계가 굉장히 다채롭기도 한지라, 일단은 단지 ‘괴짜’라고 서술하겠다. 작품은 작곡가를 따라간다고, 그의 작곡물 또한 그답게 괴짜스러운 시도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시도들 중 가장 유명하면서도 선구적인 시도로 ‘가구음악’이 있다.



태생이 조연인 음악


ⓒIMSLP


악보 한 페이지가 있다. 다 연주하는 데에 7-8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악보가 이 곡의 전부라면 어떨까. 세상에, 8초짜리 곡이 있다고?

아하. 잘 보니 악보 맨 마지막에 점이 두개씩 붙은 줄 두 개가 보인다. ‘도돌이표’. 반복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얼마나 반복하느냐 하면, 이럴 수가. ‘무한히’다.

사티는 이렇게 짧은 부분을 무한히 루프시키는 곡을 다섯 곡 작곡하고 이를 〈가구 음악〉으로 명명했다. 그리고 각각의 가구를 배치할 공간을 제목에 적어놓았다. 위에 제시된 악보도 마찬가지다. 위 악보의 곡명은 〈철제 태피스트리 - 손님들의 도착을 위한 음악 (대규모 리셉션)〉으로, 현관에서 연주하도록 작성된 곡이다.


들어보기: 〈가구 음악〉 중 〈철제 태피스트리〉 - 에릭 사티

(유튜브에서 재생)


위 음원을 10초만 들어보며, 상상해보자. 당신은 마차를 타고 어느 저택의 현관에 도착했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갔더니 저택의 집사 혹은 수행인이 당신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 음악이 나지막이 흐르고 있다.


Microsoft Designer의 AI로 생성한 저택 현관 이미지


퍽 잘 어울리지 않는가. 사티가 그렸던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그로부터 100년 후의 시대에 사는 우리조차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다. 여느 요즘 게임 BGM으로 채택하여 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 침대는 귀로 누우세요


들어보기: 〈짐노페디 1번(Gymnopedie No. 1)〉 – 에릭 사티

(유튜브에서 재생)


사티의 곡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짐노페디 1번〉. 대중적인 선율과 평온한 음향으로 많은 영화들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어온 이 곡은 과거 침대 브랜드 〈시몬스 침대〉의 광고음악으로도 삽입되어 이름을 알린 바 있다.


들어보기: 〈시몬스 침대〉 광고 내 〈짐노페디 1번〉

(유튜브에서 재생)


이는 침대나 숙면을 목적으로 작곡된 곡은 아니다. 그러나 여타 클래식 곡들과는 다르게 음악적인 전개랄 것이 없고 시종일관 잔잔하다. 그래서 침대 CF에 삽입되었을 때 영상과 음악이 마치 하나처럼 잘 어우러지며 청각적 침대처럼 기능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사티가 〈짐노페디〉를 작곡하였을 당시 클래식 음악계는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거대한 음악들이 작곡되던 시기였다. 만개한 낭만주의 아래 대규모 교향곡, 교향시가 난무했으며 피아노를 위한 곡들도 수많은 기교로 점철되기 일쑤였다. 한 마디로, 당시 음악들은 ‘말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이 사티라는 힙스터는 혼자 너무나도 당당하게 별로 하는 말이 없는 음악을 발표했다. 음악을 창작하는 예술가가 음악을 조연 취급한 작품활동을 벌였다. 당시로서 너무나도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어디, 이만큼 길어도 집중할 수 있나


감상용 음악이 아닌 가구와 같은 음악이 되기 위해, 짐노페디는 미니멀한 전개와 잔잔한 음향으로 청자의 집중을 흐뜨러뜨렸다. 그런데 그럼에도 감상해보려는 청자가 있다면 그의 의욕을 더 확실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수단이 있다. 바로 아주 긴 시간.

위에서 제시되었던 〈가구 음악〉 중 〈철제 태피스트리〉의 무한 반복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보다 상당히 더 악질적인…… 아니, 재미있는 곡이 있다. 사티의 〈짜증(Vexation)〉이라는 곡이다.


들어보기: 〈짜증(Vexation)〉 - 에릭 사티

(유튜브에서 재생)


이 곡은 느릿하게 주제 멜로디를 제시해주고, 그 위에 정신을 어지럽히는 불안정한 화음을 쌓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같은 멜로디를 제시해주고, 또 다시 그 위에 불안한 화음을 쌓는다. 여기까지 약 1분 40초가 넘는다. 그런데 이 불안한 음들의 반복을 무려, 840번 진행한다.* 결과적으로 곡이 완전히 끝나기까지는 십수 시간, 혹은 연주자에 따라 수십 시간까지 걸린다. 단적으로 ‘짜증나는 음악’이다.

*심지어 해석에 따라, 이 840도 정말 있는 그대로의 숫자가 아닌 영원을 상징하는 사티의 은유라는 의견도 있다.

곡이 이렇게나 극단적으로 길면, 심지어 연주 내내 아주 느린 템포와 매우 많은 반복만이 들린다면 그 누구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이 곡을 감상할 수 없다. 사람인 이상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스스로도 괴팍한 곡이라 생각했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사티는 살아생전에 이 곡을 발표하지 않았다. 〈짜증〉을 후대에 발굴하여 처음 연주시킨 이는 현대 클래식의 만만찮은 괴짜,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였다. 음을 하나도 연주하지 않는 곡인 〈4분 33초〉로 유명한 그는 10여 명의 피아니스트들과 교대해가며 이 기나긴 곡을 연주했다.

연주자들에게도 청중에게도 크나큰 고행이었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졸린 눈을 비비면서 집에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적어도 음악회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당시 뉴욕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연주가 끝난 직후 “앵콜을 외친 어느 사도-마조히스트*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해설: 연주자들에게는 사디스트, 청중인 본인에게는 마조히스트


초연 당시를 묘사한 뉴욕 타임스 기사문(중앙) ⓒNYT



제대로 된 ‘배경음악’으로 기능하려면


과거 100년도 더 전, BGM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에 사티가 작곡한 가구음악은 그야말로 공간에 맞추어 제작된 맞춤형 배경음악이었다. 이에 지시된 공간에서 지시된 악보를 연주하면 공간의 성격과 굉장히 잘 맞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후 현대의 우리는 어떤가.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는 뉴욕의 단골 일식 레스토랑의 배경음악이 마음에 안 들은 나머지 셰프에게 직접 편지를 써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한 바 있다. 해당 식당 이름을 따 ‘〈카지츠(Kajitsu)〉 플레이리스트’라고 불리는 이 플레이리스트는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즐기기에 적당한 곡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스포티파이, 애플 뮤직, 유튜브 등에서도 검색으로 찾을 수 있다.


ⓒYoutube

(유튜브에서 재생)


현재 음악은 스트리밍의 시대다. 멜론에는 약 4천만 개의 음원이 등록되어 있으며,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인 스포티파이에 등록된 음원의 수는 무려 1억 개가 넘는다. 심지어 그 모든 음원을 버튼 하나로 재생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 시공간을 초월한 인프라를 보유한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음악을 공간에 알맞게, 잘 틀고 있는가. 단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이유만으로, 대부분의 카페, 식당, 옷가게가 어울리지 않는 차트음악만을 동일하게 틀고 있지는 않은가.

카페에서 너무 요란한 음악에 대화를 방해받은 적이 있었다면, 혹은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그렇지 못한 음악으로 아쉬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면, 그동안 너무 많은 매장들이 ‘아무 음악이나 틀어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때다. 반대로 공간에 이미지가 잘 맞는 음악을 배치하면 공간의 분위기는 배로 증폭된다. 사람들이 음악을 잘 흘려듣게 하려면, 선곡은 오히려 고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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