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사
8개월 동안 신나게 여행을 하고 돌아와 아는 분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원하는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날 필요로 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어쩌다 보니 남편도 같은 회사에서 다시 같이 근무하게 되었지만 일 년이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큰 회사의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에게 스타트업, 그것도 대표의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규모의 작은 회사는 도무지 적응이 힘들었다.
일 년 여를 근무하고 삼 개월을 다시 놀았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빈둥거리는 생활. 머릿속으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다, 재미있는 걸 해보자,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걸 하자라는 생각에 뭔가를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그것이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오빠는 다시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난 여전히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그리고 내 조건들을 저울질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중 경기도시공사에서 신혼부부들에게 전세지원금을 대출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1억이 넘는 금액을 2%의 저렴한 금리로! 나라에서 뭔가를 지원해 준다고 했을 때 우리는 가진 건 없어도 둘이 벌어들이는 금액이 적지 않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광탈하곤 했었는데, 이렇게 곤궁해진 상황이라면 뭔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차근차근 조건을 읽어보니 아슬아슬 조건에 턱걸이는 하는 수준이다. 경기도에서 거주한 기간이나 소득 수준, 재산 규모는 얼추 범위 안에 들지만 매번 가족 수에서 낮은 점수를 기록한 우리였다. 아이가 셋 있는 가정이 유리하고 둘이거나 하나라도 있는 가정에 비해 우리는 매우 단출한 둘뿐. 그래도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동사무소와 민원 24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꾸역꾸역 자료를 모았다. 이번엔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으로, 이번이 아니면 우리에겐 기회가 없다는 생각으로 기필코 도전했다.
9월 초까지 수원에 있는 경기도시공사에 서류를 보냈어야 했는데 결과 발표가 미처 나지 않은 상황에서 10월 중순쯤 신혼부부 전세자금 지원 조건 완화로 다시 재공지가 떴다. 어? 이런 조건이라면 우리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을 무렵, 신청자인 오빠 이름으로 전화가 왔다. 보낸 서류 중 집 계약서가 없으니 계약서를 다시 보내달라는 요청. 이것만 보내면 되려나? 싶어 후다닥 복사해 등기 발송을 했다. 그러나 얼마 후 공지된 1차 당첨자 명단에 우리 이름은 없었다. 뭐야… 떨어뜨릴 거면 서류는 왜 달래... 구시렁거리며 있는데, 오빠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고 한다. 이번엔 우리 재산이 기준보다 높아 탈락한다는 안내였다. 네? 재산이요? 저희 가요? 그럴 리가! 우린 가진 게 없는 게 우리의 내세울 것인 데 재산이 있다니, 하고 확인해보니 그 사이에 우리가 통신판매업을 시작하며 현재 살고 있는 우리 집을 사업소로 등록하였는데, 전세자금과 이 사업소의 임대료가 이중으로 잡혔던 것.
경기도시공사에서는 구청에 문의하라 하고 구청에서는 자신은 잘못한 게 없고 전산이 그렇게 자동으로 잡혔던 것뿐이라는 답변. 하.. 그래서 저희는 어떻게 되는 건데요? 물으니 손편지를 쓰란다. 구청의 이런 시스템 오류로 인해 우리의 서류가 심사 과정에서 탈락하였으니 재심을 요청한다는 내용의 손편지를 써서 경기도시공사에 보내면 정상 참작해주겠다는 얘기. 이게 우리 잘못도 아니고 전산 오류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내 손편지가 필요하다니… 얼마든지 써주마. 하고 꾹꾹 마음을 담아 눌러쓴 글씨로 작성해 등기 발송. 하지만 12월 발표자 명단에 우리의 이름은 없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지금 몇 번이나 연락해서 서류가 부족하다, 편지를 써 보내라, 원하는 걸 다 들어줬건만 계속해서 올라오는 수시 당첨자 명단에 우리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욕을 하고 원망하고 경기도시공사에 항의 전화를 해보려 시도해도 연결은 잘 되질 않고… 아, 탈락이구나. 지금 우리 집에서 조금 더 살라는 얘기인가 보다 하고 6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6월 어느 날,
호군에게 카톡이 왔다.
‘갱양아, 경기도시공사에 전화 왔어. 우리 당첨됐대!!!’
꺅!!! 너무 기뻤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물으니 우리는 진즉에 당첨이 되었고, 관련 서류를 보내고 전화와 문자를 끊임없이 보냈지만 우리가 응답이 없어서 우리가 이 대출을 받을 건지 확인하고자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이게 무슨 멸치 쌈 싸 먹는 소리야;; 관련해서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었기에 화를 내고 싶었지만, 마냥 화를 내기엔 너무 기뻐서 넘어가기로 했다. 우선 급한 건 요청대로 8월 말까지 계약을 하고 이사를 계획하는 것. 왜 연락이 없었느냐, 우리는 왜 이렇게 촉박하게 이사를 해야 하느냐에 대해 따져 물을 시간이 없었다. 우린 당장 이사 갈 집을 알아봐야 했고, 이 집을 내놓아야 했다. 시간이, 없다.